●75년 교통사고로 기억상실 노숙자 생활…33년 걸린 귀가 ●33년전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은 채 전국을 떠돌던 50대 남자가 가족을 되찾았다. 1975년 19살 나이에 경기 시흥의 한 목장에서 일을 하던 김석주씨(52). 12남매 중 둘째인 김씨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찌감치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인 충남 공주를 떠나왔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소식이 들려왔다. 김씨는 급히 공주로 내려갔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다시 시흥으로 돌아오던 김씨는 그 길로 행방불명됐다. 돌아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그는 머리를 다쳐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말씨가 어눌해지고 거동도 불편해져 취직도 못한 채 전국을 떠도는 노숙자 신세로 전락했다.그러던 김씨는 지난 2월29일 경기 평택역 인근 경찰지구대에 나타났다. 평택역에서 노숙해온 그는 구걸해 얻은 2만원을 다른 노숙자에게 빼앗겼다며 경찰을 상대로 돈을 찾아달라고 소란을 피웠다. 그는 지구대 앞 순찰차를 걷어차는 등 행패를 부리다가 공공기물파손죄로 다음날 구속됐다. 10일 뒤 사건을 송치받은 수원지검 평택지청 허준 검사는 김씨를 조사하려 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유전자 테이핑 접착식 채취 방법 개발 선풍적 인기 ●유전공학 분야의 선두기업인 (주)진뱅크(대표 김인현 의학박사)가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 1퍼센트의 주식을 기증하는 주식 기증식이 16일 오전 10시 30분 부암동 C.C.C. 본부에서 열렸다. 주식 기증은 김인현 대표가 대학 시절, C.C.C.로부터 받은 영적, 정신적 도움에 대한 보은(報恩) 차원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진뱅크측에서는 김인현 대표를 비롯한 김용대 이사, 유용길 기획실장 등 임직원과 협력사인 시너지씨앤씨, (주)제너다인 관계자들이 참석했고, C.C.C.측에서는 김준곤 총재를 비롯, 박성민 대표, 최상림 부산 C.C.C. 대표와 본부, 서울지구 간사들이 참석했다. 이밖에 기독 언론사 기자 등 모두 40여 명이 참석했다. 기증식은 김철영 목사(C.C.C. 홍보출판부 대표)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인사말에서 박성민 목사는 하나가 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것뿐만 아니라 비전과 사명, 철학, 그리고 행동까지도 하나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이번 진뱅크의 주식 기증은 분명한 하나임을 확인하는 장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됨을 통해 진뱅크의 사업과 C.C.C.의 사역을 축복하
●예정된 만남일 뿐이에요. 저희는 사랑을 얻었어요.●차인표 신애라 부부가 또 다시 공개 입양을 선택해 2008년초 훈훈한 감동을 낳고 있다.차인표 신애라는 부부는 지난 2일 대한사회복지회를 통해 생후 100일 된 여자 아이를 입양했다. 차인표 신애라 부부의 입양은 지난 2005년 12월 예은양을 입양한 데 이어 두번째다. 신애라는 기회가 닿으면 또 한명의 생명과 가족을 꾸리리라는 약속을 지킨 것 뿐이라고 말했다.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입양한 여자아이의 이름으로 예진으로 지었다. 먼저 입양한 아이인 예은양이 26개월된 터라 세살 터울의 자매가 된 셈이다.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이로써 두 사람 사이에서 낳은 아들 정민과 예은, 예진 등 삼남매의 부모가 됐다. 신애라는 주위사람들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어요. 언젠가 알려질 줄 알았지만 알려지고 나니 과한 축하를 받는 것 같네요라고 겸손해했다.차인표 신애라 부부의 공개 입양은 팬들 사이에서 훈훈한 화제를 낳고 있다. 이들의 공개 입양 사실이 또 다시 알려지면서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들 부부의 사랑에 감동을 받았다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앞이 잘보여 좋아요…죽기 전에 소원성취 했어요●119안전센터 구급대원의 이웃사랑 선행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추운 겨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전북부소방서 궁동119안전센터 구급대원인 문정신 소방교(44.여).문 소방교는 2006년 9월 구급활동을 통해 알게 된 유성구 외삼동에 거주하는 이모씨(90·여)로부터 지날달 28일 시력이 흐려져 밥을 짓기 힘들다는 말을 직접 듣고 할머니의 시력을 회복시켜 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그동안에도 할머니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극진한 정성으로 보살펴 온 문씨는 할머니의 눈을 치료하기 위해 안과를 찾아 진단한 결과 백내장으로 판명돼 보호자를 대신해 수술절차를 밟고 수술비와 약제비를 부담하는 등 수술로 할머니의 시력을 회복시켰다.할머니 눈 수술을 맡았던 안과 원장도 문씨의 선행을 알고는 일부 진료비를 무료로 해주기도 했다. 이 할머니는 현재 지체장애가 심해 거동을 할 수 없는 조모 할머니(87)와 단둘이 살고 있지만 이 할머니에게 아들 2명과 딸 1명이 있으나 연락이 두절돼 기초생활보장수급대상 혜택도 받지 못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어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왔다.수술을 받은 이 할머니는 죽기 전에 한번 세상
●“산아, 너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라날 것이다. 나의 기술도, 나의 힘도, 나의 경험도, 나의 장비도 자라날 것이다. 나는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기어이 네 정상에 설 것이다●●위대한 산악인, 모험가, 박애주의자로 칭송 받아 세계의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세계 최초로 정복했던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Sir Edmund Hillary)이 향년 88세의 나이로 11일(한국시간) 사망했다. 1953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9차 원정대에 참가한 13명의 대원 가운데 키 큰 사나이였던 에드먼드 힐러리는 네팔의 셀파 텐징(Tenzing Norgay Sherpa)과 함께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 산(Mount Everest) 봉우리 꼭대기에 세계 처음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뉴질랜드는 20세기 위대한 모험가인 힐러리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조기(half mast)를 내걸기로 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헬렌 클라크(Helen Clark) 뉴질랜드 총리는 에드먼드 힐러리는 전설적인 산악인이자 모험가이며 박애주의자이자 뉴질랜드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며, 전형적인 뉴질랜드인(quintessential Kiwi)라면서 그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다. 클라크
●어느 70대 악사의 마지막 트럼펫 연주●전재산 대학에 기증하고 세상 떠나 “다 주고 가니 홀가분” 유언 평생을 홀로 살아온 한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나 주위를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연세대는 18일 서울 도봉구에 사는 유길열(76) 할아버지가 생전에 모은 전 재산인 26평형 아파트와 예금 1억3000만원을 연세대 신과대학 장학금으로 기증했다고 밝혔다. 사고를 당해 목발을 짚으며 독신으로 살아온 한 유 할아버지는 지난달 8일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미리 준비해 놓은 유언장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기증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유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명동 거리와 미 8군 등지에서 트럼펫을 불며 20여년 유명 악사로 활동했지만, 불의의 사고를 당해 은퇴해야 했다. 이후 유 할아버지는 한 방송국이 제작한 유언장 남기기 프로그램을 시청한 뒤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연세대 신과대학 노정선 교수에게 연락해 유언장을 남기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유 할아버지는 자신의 삼촌이 예전에 연세대를 다닌 것을 떠올리고 세상을 떠난 뒤 남은 전 재산을 연세대 학생을 위해 써달라는 뜻을 밝혔고, 연세대는 유 할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2003년 3월 기증서 전
배우 최강희가 백혈병에 걸린 생면부지의 환자에게 자신의 조혈모세포(골수)를 기증해 네티즌들 사이에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최강희는 지난 1999년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기로 서약했다. 서약 후 8년 만인 지난 17일 자신과 유전자형이 일치하는 환자가 나타나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최강희의 선행에 네티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골수 이식 소식을 접한 한 네티즌은 얼굴도 예쁘지 천사가 따로 없네요. 한 생명을 살렸으니 천사 맞네요라는 뜻을 전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저도 기증 서약한지 3년 정도 지났는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네요. 많은 사람들이 기증 서약을 하면 좋겠어요라며 선행을 이어가자는 마음을 전했다.한 네티즌은 헌혈 할 때 무서워서 헌혈도 몇 번 안했는데요 조금 부끄럽습니다. 저도 사회의 힘든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착한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며 반성의 마음을 드러냈다.최강희측은 이 일을 알려지기 원치 않았으나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를 통해 알려져 쑥스러워 하고 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최강희의 따뜻한 마음과 선행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독립투사의 후손이 500원짜리 빵한개로 끼니를 떼우고 있다.●일제강점기의 치욕에서 벗어난 1945년 8월 15일. 그 날을 위하여 수많은 독립투사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 광복 61주년을 맞은 현재, 8월 15일 즈음에는 그 날의 기쁨과 감격을 기념하며 많은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정작 독립운동가들은 지하에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들의 후손이 살아가는 비참한 모습 때문이다. ▲ 독립운동가 故 곽재기 선생 후손 비참한 삶 1893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故 곽재기 선생은 청남학교의 교사였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씻고자 1909년 청소년으로 조직된 비밀단체, 대동청년당에 합류하여 국내외에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고, 그 후로도 의열단 조직,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폭파 운동 등 독립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그의 가족들 또한 모진 고통을 당해야 했다. 늘 일본 순사들은 곽재기 선생의 집에서 잠복근무를 했고, 수시로 가족 모두를 총독부로 불러 고문을 했는데, 어린 손자 역시 그 때 받았던 전기 고문을 지금까지도 기억할 정도로 충격은 컸다. 아버지 역시 만주에
학력위주풍조가 만연하고 반대로 고학력 실업자들이 넘치는 현실은 우리 사회와 교육계에 심각한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세상에서 진정한 실력과 능력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작금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연극배우 윤석화가 학력위조 사실을 고백했다. 윤석화는 1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고백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학력위조 사실을 털어놨다. 그간 윤석화는 1974년 이화여대 생활미술과에 입학했으나 75년 민중극단 꿀맛(A Taste Of Honey)으로 무대에 오른 뒤 연극의 매력에 빠져 자퇴했다고 밝혀왔다. 그러나 윤석화는 이날 올린 글을 통해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윤석화가 밝힌 학력위조 고백 전문.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그간 안녕 하셨지요? 그 동안, 안식년을 결정하고, 1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남편이 있는 외국에서 두 아이들의 엄마로, 아내로, 교회와 집을 오가며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가능 한, 일체의 외부 활동과 지인들과의 만남도 접고 월간 객석의 살림에 제가 꼭 필요한 일만 하고 지냈습니다. 친구들의 반가운 소식도 애써 잊으려 하면서 말이지요.
●생이별 24년 부부나무 애타는 망부가 ●두류공원·경남도청에 별거…대구 합쳐 시민 명소 만들자 ●저는 대구시민들이 많이 찾는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한 모퉁이에 살고 있습니다. 금용사 입구에서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빨간 꽃나무’(사진)입니다. 두류수영장 안쪽 수영선수들의 합숙소로 쓰이는 건물 바로 앞이 제 보금자리죠. 학자들은 절더러 배롱나무라 부르기도 하고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더군요. 제 몸을 살살 긁으면 이파리가 움직인다나요.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 백일홍 나무라고도 부릅니다.경남 합천에서 대구에 온 지도 벌써 24년째네요. 그러나 그때 400여 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를 두고 왔습니다. 제 이야기는 아내를 돌려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별칭 같은 건 없었지만 제가 대구로 올 때 누군가가 제게 부부나무라고 불러주었습니다.(수영선수 합숙소 건물 앞에 뿌리 내리고 있는 배롱나무는 두 그루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부나무가 대구에 오던 1984년을 기억하는 이의 말에 따르면 두 그루처럼 보여도 하나라고 했다.)아내는 지금 경남 창원의 경남도청에 있습니다. 도청 입구 오른편에 있는 못 가에 뿌리 내리고 있죠. 1984년까지 우리 내외는 경남 합천군 봉산면 골마마을이라는
●종로 ‘딴따라’ 할아버지 부천 영화제 스타 됐네 ●백연화씨 홍보영상 출연 12일 개막한 제11회 부천 판타스틱영화제(21일까지)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사람은 누구일까. 스타 감독도, 스타 배우도 아니다. ‘무명의 배우’ 백연화(84·사진)옹이다. 백옹은 이번 영화제 ‘트레일러’ (영화제 홍보영상. 모든 출품작에 앞서 상영된다)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43초 길이의 짧은 영상이지만 부천을 찾는 시네필이라면 그를 도저히 피해갈 수 없다.백옹은 만나자마자 “네, 네. 제가 거리의 악사입니다. 경례!”라며 우렁차게 말했다. 얼굴이 비칠 정도로 번쩍번쩍 광을 낸 검정 부츠, 왼쪽 가슴의 노란 꽃 한 송이, 반짝이 장식이 가지런한 검정 코트, 선글라스에 별이 네 개나 박힌 모자까지 복장이 특이하다. 먼 발치에서도 금세 알아볼 수 있는 차림이다. “대단한 영광이죠. 하하. 사람들이 나이를 물으면 8학년 4반이라고 대답해요.”백옹은 ‘트레일러’에서 파랑새의 꿈을 좇아가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꿈은 나이와 관계없다는 메시지다. 그를 캐스팅한 용이 감독은 “백옹은 꿈을 향한 우리의 모습을 몸 전체로 보여줍니다. 나이도 나이지만 외모 자체도 판타지죠”라고 밝혔다. 감독은
●원불교 박청수교무, 퇴임후에도 사회사업 활발 ●“정년퇴임할 때는 마라톤 완주하고 결승 테이프가 가슴에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세계 55개국의 어려운 이들을 도왔지만 이제는 대안학교와 탈북청소년학교의 정착, 그리고 캄보디아 구제병원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지난 1월 원불교 강남교당을 떠난 원불교의 대표적 사회사업활동가 박청수(朴淸秀·70·사진) 교무가 여전한 현역으로 이웃을 위해 뛰고 있다. 그는 강남교당을 개척해 26년간 이끌면서 116억원어치의 현금과 물품을 국내외에 지원했다. 해외에서는 ‘마더 테레사’처럼 ‘마더 박’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지송학중학교와 헌산중학교 등 대안학교 2곳, 탈북청소년학교인 한겨레학교 등 모두 3곳의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박 교무는 은퇴 후 자신이 세운 경기도 용인시 헌산중학교 구내에 자료관 겸 거처인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을 지어 지난 6일 개관식을 가졌다. 이에 맞춰 그동안 일간신문과 원불교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마음눈이 밝아야 인생을 잘 살 수 있다’와 자신의 활동을 모은 사진집 ‘The Mother’(이상 여백출판사)도 펴냈다. 자료관에는 앨범 90권, 1만5000장 중에서 고른 사진과 신문 스크랩,
●대한산악연맹, 분향소 마련●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사고로 숨진 박영석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대의 고 오희준(37) 부대장, 이현조(35) 대원의 넋을 기리는 분향소가 마련됐다. 대한산악연맹은 17일 저녁 서울 역삼동 한국산악문화회관에 분향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기 시작했다. 네팔 카트만두 현지에는 빌라에베레스트 호텔 내에 분향소가 마련됐다. 원정대는 사고현장에서 두 대원의 시신을 수습해 17일 해발 5,360m인 베이스캠프까지 내려왔다. 시신은 18일 헬기로 카트만두까지 옮겨진 후 26일께 서울로 운구될 예정이다. 고인들의 장례는 대한산악연맹장으로 치러지나 날짜와 구체적인 절차는 결정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19일 카트만두로 날아가 장례와 보상 등 사후절차를 논의한다. 대원들의 소속사인 골드윈코리아 정상욱 상무는 유족들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 장례 절차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해교전 전사 황도현중사 아버지의 한●도현이가 살아 있었으면 카네이션도 달아주고 편지도 보내줬겠지요. 딸 못지않게 살갑게 부모를 챙겨주던 아들이었는데….어버이날인 8일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황도현 중사(당시 22세) 아버지 황은태 씨(61)는 여느 때처럼 아들 영정 앞에 놓인 꽃을 정성스럽게 갈았다. 이놈아, 어버이날인데 네가 나한테 꽃을 꽂아 줘야지, 내가 너한테 꽃을 건네주는 구나.황씨는 아들 영정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며 오늘 같은 날이면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고 말했다. 황 중사는 2002년 6월 29일 서해교전이 발생했을 때 참수리정 357호의 자동포로 북한 함정에 대응사격을 하다 사망했다. 생존자들이 발견했을 당시 황 중사는 실탄을 다 쏜 뒤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숨져 있었다고 한다. 서해교전이 벌어지고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음달 29일에는 5주년 기념 추도식이 열린다. 하지만 황씨는 아직도 가슴이 뭔가에 짓눌린 듯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부가 기념일마다 유가족들을 불러 위로할 게 아니라 진심으로 죽은 아들과 전사자들을 위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씨와 유가족들은 아직도 추모식이 정부행사가 아닌 2함대 차원에서 치러지는 것
●성균관대 울린 `토스트 할머니의 죽음●15년간 어려운 학생에 `인정 건네…추모물결● 대학교 정문 앞에서 15년간 토스트를 팔며 학생들과 각별한 정을 쌓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이 대학 재학생과 동문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앞 골목에는 오후 다섯시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조그만 리어카 한 대가 있었다. 15년간 성균관대 앞을 지키며 학생들에게 토스트를 팔던 ‘토스트 할머니’ 조화순 할머니(향년 77세)의 리어카. 주황색 포장을 걷고 백열등을 밝힌 할머니는 15년간 항상 같은 자리에서 토스트를 구으며 학생들을 기다렸다. 토스트가 다른 가게보다 두꺼워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들에게 특히 인기를 끈 조할머니는 때로는 학생들의 친구로, 선생님으로 또 어머니로 학생들을 맞았다. 술취한 학생에게는 토스트를 건네며 얼른 집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고, 실연을 당한 학생에게는 ‘연애란 그런 것’이라고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조할머니가 뇌종양에 걸린 딸 박운자씨(37)와 백혈병에 걸린 손녀를 돌보며 어렵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성대생들이 학교 안에서 토스트를 팔아 돈을 모으고 헌혈증을 모아 기증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