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공원·경남도청에 "별거"…"대구 합쳐 시민 명소 만들자" ●저는 대구시민들이 많이 찾는 대구시 달서구 두류공원 한 모퉁이에 살고 있습니다. 금용사 입구에서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빨간 꽃나무’(사진)입니다. 두류수영장 안쪽 수영선수들의 합숙소로 쓰이는 건물 바로 앞이 제 보금자리죠. 학자들은 절더러 배롱나무라 부르기도 하고 간지럼나무라고도 하더군요. 제 몸을 살살 긁으면 이파리가 움직인다나요.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 백일홍 나무라고도 부릅니다. 경남 합천에서 대구에 온 지도 벌써 24년째네요. 그러나 그때 400여 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를 두고 왔습니다. 제 이야기는 아내를 돌려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별칭 같은 건 없었지만 제가 대구로 올 때 누군가가 제게 "부부나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수영선수 합숙소 건물 앞에 뿌리 내리고 있는 배롱나무는 두 그루처럼 보인다. 하지만 부부나무가 대구에 오던 1984년을 기억하는 이의 말에 따르면 "두 그루처럼 보여도 하나"라고 했다.) 아내는 지금 경남 창원의 경남도청에 있습니다. 도청 입구 오른편에 있는 못 가에 뿌리 내리고 있죠. 1984년까지 우리 내외는 경남 합천군 봉산면 골마마을이라는 곳에 살았습니다. 마을 공동 우물가에 서있던 당산나무였습니다. 그런데 합천댐이 들어선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수몰예정지역으로 지정돼 마을이 물에 잠길 거라 했습니다. 1984년 6월쯤, 대구에서 녹지관련 부서 공무원이라는 사람(배상민 현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전 대구시 녹지과장)이 우리 내외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만져보고 하더군요. 처음엔 탄성을 지르더니 이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무를 세우더라도 6m인데 뿌리와 묻은 흙까지 포함하면 더 길겠어. 천상 눕혀서 싣고 가야하는데 14m나 되는 걸…. 마을까지 들어오는 길이 지프도 겨우 들어갈 정도던데…. 이걸 어쩌나… ." 잠시 그 사람들이 나누는 얘길 들으니 대구시장(이상희 전 대구시장)의 특명이라더군요. 400년 가까이 된 나무를 물에 잠기게 하기엔 안타까웠다나요. 반드시 저희 내외를 데려오라고 했답디다. 그때가 도시녹화 5개년 계획이 만들어진 지 1년 되던 해였다네요. 대구시 공무원들의 얼굴색이 변한 이유는 도로 사정 때문이더군요. 우리 내외의 몸집이 컸거든요. (대구시 관계자들은 마을까지 1.5km에 이르는 소로와 소로를 벗어나더라도 폭 6m 정도의 왕복 2차로 도로로는 나무를 가져오기 어렵다고 판단, 미 19지원단장의 협조를 통해 헬기수송을 결정하게 된다. 완공되지 않은 88고속국도까지만 수송해주겠다는 제한적 조건이었다.) 며칠 뒤 그 사람들이 또 왔더군요. 우리 내외를 한꺼번에 싣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던지…. 그것도 잠시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군요. "두 그루잖아."면서 말이죠. 안사람을 놔두고 저를 먼저 헬기에 싣더군요. 저는 고속국도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 대구로 왔지만 안사람은 올 기미를 보이지 않더군요. 나중에 알았지만 아내는 경남도청으로 갔다고 하더군요. (대구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84년 당시 골마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갖고 나오려던 이 나무는 경남도청에 있던 나무와 함께 대구로 이송될 예정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경남도청 신청사 준공 이후 청사 내에 전국 8도의 나무를 심고 있던 경남도가 나무를 옮겨가 400년 가까이 함께 살아온 나무가 생이별을 맞게 됐다고 한다.) "부부나무"라는 이름은 그렇게 지어졌습니다. 다시 같이 살 날이 있겠지요? 아직은 꽃도 흐드러지게 피울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니까요. 제가 피운 꽃이 한창인 8월입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피할 수 있는 진분홍꽃 그늘도 큽니다. 안사람과 함께라면 더 큰 그늘을 만들어 대구시민들의 시원한 휴식처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 아내를 돌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