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원칼럼]이어령박사의 죽음과장례②
알리는 은퇴 3년 만인 1984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병원이었다. ‘상대방을 KO시킬 뿐 아니라 눕히고 싶은 라운드를 자신이 정한다’던 알리도 죽음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 KO패였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장례를 위해 고향인 캔터키 주로 시신을 옮겨야 했다. 알리의 장례식은 밥 거널이 총괄을 맡았다. 장례감독이었다. 알리의 가족과 측근들을 태운 전용기에서 알리의 죽음을 알렸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장례 매뉴얼을 담은 ‘더 북(The Book)’에 들어있었다. 알리가 직접 계획한 것이었다. 장례의 하이라이트는 8만 8,000장의 장미꽃잎이었다. 운구차량의 레드카펫이 됐다. 이 역시 플로리스트인 매기 카사로가 기획한 ‘장례 프로젝트’의 일부였다. 한국이라면 어떨까? 장례의향서는커녕 유언도 없다. 영원히 살 것처럼 버티다 창졸간에 떠난다. 해맞이 달맞이는 있어도 죽음맞이는 없다.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는 순간 ‘죽음계획’을 세운다. 대통령의 유고상황은 국가의 재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장례는 자신을 선출해준 국민과의 마지막 대화다. 그래서 엄중하다. 나라의 품격이 담긴다. 죽음이 그 나라의 역사가 되고 유산이 된다.
- 앤딩플래너 김동원 기자
- 2022-03-07 14: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