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과 건강, 그리고 성공적인 삶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향해야 할 가장 큰 삶의 행복이자 목표로 여깁니다, 노화와 죽음은 이와 상반된 개념으로 인식하여 생명 연장과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집착하며, 죽음을 피하고 싶은 욕망으로 죽음을 터부시하게 만듭니다. 영화나 드라마, 뉴스 등 미디어와 대중문화 속에서의 죽음은 폭력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사건으로 묘사됩니다. 특히 범죄나 사고와 관련된 죽음은 공포스럽고 피해야 할 것으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또한 영원한 이별이나 비극으로 표현되고 이는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강화합니다. 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를 두려운 곳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지옥이나 불행한 사후세계에 대한 개념은 죽음을 두렵고 불안하게 여기도록 합니다. 가정에서 죽음을 언급하는 것이 불편하거나 금기시되는 경우가 많아 부정적인 선입견을 품게 되고, 교육 과정에서도 죽음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거나 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죽음은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맞닿아 있어 심리적으로 방어적인 반응을 일으킵니다. 따라서 대부분 사람은 인정하기보다는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며, 이는 죽음을 불안하고 부정적으로 느
고대로부터 다양한 문화권에서 가족과 사회의 주도권을 남성이 행사해온 가부장 제도가 시스템화되어 발전되어 왔다. 농업 사회의 형성과 함께 남성은 주로 경제적 생산과 외부 활동으로, 여성에게는 촉진적 역할로 가정 내 자녀와 가사에 집약적인 분업 구조가 형성되었고 구조적으로 남성 우위의 가부장제가 강화되어 왔다. 이 영향으로 남성들은 사회적 기대에 따라 강인해야 하고, 감정을 표현하거나 어색함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게 만들고, 여성이 담당해온 부엌은 금남의 구역으로 각인시켰다. 현대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변화의 물결은 성 평등에 대한 인식의 확산과 경제 구조의 변화, 교육 기회의 확대로 인한 남녀의 역할과 제도적 활동 영역의 확대로 커졌고 젠더 인식의 중요한 변화로 이어져 여성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 분야에 활발한 참여와 함께 누구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역할을 인정받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일부 고령의 남성들은 아직도 과거의 가부장적 관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낯선 풍습과 맞서는 어려움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다. 평생을 부인의 혹은 자녀들의 당연한 부양을 받아오던 몸에 밴 생활에서 어느 날 갑자기 혼자된 이들의 당황스런
[중략] 과연 죽음은 깜깜한 어둠이고 영원한 공허일까요? 과연 죽음은 꽉 막힌 벽일까요? 죽음을 벽으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벽에 나 있는 문이어서 문 저편의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고 여길지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이 크게 달라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굿바이 good & bye’는 죽음과 용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인 주인공은 악단이 갑자기 해체되는 바람에 실직한 후 고향에 내려가 일자리를 찾던 중, 여행 도우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사실은 ‘영원한 여행’ 도우미, 즉 시신을 염습해 입관하는 일을 하는 장례업체였죠. 보수를 후하게 줄 테니 함께 일하자는 사장의 제안을 엉겁결에 받아들인 후 염습사로서 겪게 되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유머러스하게 그려집니다. 주인공의 어릴 적 친구 어머니는, 건물을 헐고 큰 빌딩을 짓자고 떼를 쓰는 아들의 성화에도 오랜 단골손님들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며 변함없이 목욕탕을 운영해 오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주인공은 경건하고도 정성을 다한 염습을 해드리고 시신은 화장터의 화장로로 옮겨지는데, 목욕탕의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강조되면서 공동체 의식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간의 연대감이 줄어들고, 상호 신뢰와 협력이 감소하고 도덕의식의 쇠퇴를 야기하고 있는 현상이 눈에 뜨입니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태도가 부족해지면서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빈번해지고, 불신과 소외감을 초래하고 원활한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며, 이는 오해와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공공장소에서의 무질서한 행동은 사회적 규범을 약화시키고, 공동체의 안전과 안녕을 해칩니다. 도덕과 예의와 규범이 사라지면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는 행동이 늘어나고, 결국 사회의 법적 안정성을 위협하게 됩니다. 대중문화 속에서 비도덕적인 행동이 미화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모방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부추기는 경향까지 생겨납니다. 거리에는 자전거나 전동 블레이드 등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보행에 불편을 주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띄고, 건물 모퉁이나 화단 등에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가 하면 거리에 가래침을 뱉고 담배를 물고 다니는 사람들도 눈에 띕니다. 버스나 전철에서 다리를 벌리고 앉는 태도는 불편을 줍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갈등이 심화되고, 우리 사회에 질서 확립을 위한 사회운동이 활발하던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우리나라는 최근 들어서 고독사와 무연고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21년 고독사 사망자는 3,778명, 무연고 사망자는 3,795명으로 나타났다. 그 원인은 첫째, 노령인구 1천만명 시대를 맞이하여 2025년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고, 전체 가구수의 34.5%가 1인가구로서 대가족시대가 막을 내리고 핵가족시대로 변화한 사회변동에 근본원인이 있다. 무연고 사망자의 대부분이 1인가구인데, 배우자나 형제자매 등 가족이 아예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시신인수를 포기하면서 무연고사망자가 되는 경우이다. 정부에서도 2023년 3월 28일자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무연고 사망자가 사망하기 전에 본인이 서명한 문서 또는 「민법」의 유언에 관한 규정에 따른 유언의 방식으로 지정한 사람이 희망하는 경우에는 장례의식을 주관하게 할 수 있다”라는 규정을 신설하여 무연고자의 장례비용 문제를 해결하였다. 다소 늦었지만 바람직한 입법으로 평가한다. 문제는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장례식을 마치고 나서 사망현장에 남아있는 유품을 처리할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대부분이 고독사와 중복되는데 고독사 발견 후 관계기관에 신고를
■ 고독사 위험군 약 152만 5000명 지난달 18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2023~2027년)’ 내용 중 실태 조사 결과다. 이는 인구 대비 3%, 1인 가구 대비 21.3%가 ‘고독사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1년에는 3,378명이 고독사한 것으로 파악되었으며, 이는 2017년에 비해 40% 증가한 수치다. 이번에 발표한 ‘제1차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은 “사회적 고립 걱정 없는 촘촘한 연결 사회 조성”을 위해 전체 사망자 100명당 고독사 수 20% 감소와 지역 주도형 고독사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근거 기반의 고독사 예방 정책 추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여기서는 이번 기본계획이 갖는 의미를 톺아보고자 한다. ➡️사회적 고립과 연결사회 조성도 국가의 책무 ➡️삶의 문제뿐 아니라 죽음 문제도 국가의 책무 ➡️신청주의를 넘어 적극적 발굴이 국가의 책무 ■사회적 고립과 연결사회 조성도 국가의 책무 사회적 고립과 단절의 발생 원인은 다층적이다. 가구와 가족 형태의 변화, 가족 구성원의 변화, 사회문화적 요인 등이 복잡하게 서로 영향을 미친다.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스럽기만할 뿐이다. 그것은 경험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황당함에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것은 현실성과 사회성의 다른 상황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이고 관계자들이 정해놓은 규칙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된다는 편리성과 합리성을 규정해 놓은 규칙이다. 장례의 풍습은 나라와 국민성 이념과 자연의 환경 등을 통하여 발전되고 정립되어 왔다. 특히 동양권의 우리나라는 유교적 풍습과 불교적 습성이 강한 것은 불교가 약 300년 정도에 들어오면서 유교와 불교의 오랜 역사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종교 중 천주교는 약 400년이 넘었다. 기독교는 약 130년이 조금 넘는다. 관혼상제 중 상례를 가장 중요시 했던 이유는 살아서 하는 의식인 관례와 혼례는 부족하면 다른것으로 대안을 세울 수 있고 제례는 형편이 어려우면 간소하게 하고 여유가 있을 때 풍족히 하면된다. 하지만 상례는 삶속에 마지막이며 평생의 단 한번뿐인 의식이다. 관례를 잘못하면 혼례 잘 하면 되고 혼례 잘못하면 기념일 잘하면 되고 살면서 할수 있는 기회가 많다. 상례는 다시 할수 없는 생의 마지막 의식이다. 잘못하면 평생 후회하며 살아
나는 누구인가? 황혼이 찾아오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는 이야기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기에 어디로 가는가. 열심히 살아 왔는데 인생을 회고하며 삶을 돌아본다. 가지고 갈것도 없는데 많은 욕심으로 남의 것을 내것으로 만들려고 그렇게 아귀다툼을 하며 살아 왔다. 현실은 인정보다 경쟁이라는 전쟁을 치루며 살아간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결국 눈뜬 소경이며 듣는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 보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니며 듣는다고 다 진실이 아닌것 처럼, 인간의 삶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살아야 함에도 인간은 간곳이 없고 돈을 좇고 돈의 역활에 자기 자신을 팔아 먹는 슬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삶은 한시적 삶이다. 어찌보면 기회의 시간 어찌보면 시험의 무대인 것이다. 살면서 모아논 모든 것들은 남겨진 자의 몫이다. 가지고 갈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거의 삶을 가지고 간다. 좋은 것은 좋은 결과를 나쁜것은 나쁜 결과를 결국 심판이란 살아온 삶을 심판 받는다는 것이다. 죄악을 지은자는 죄의 벌로 선함을 행한자는 선함의 보상이 따른다고 종교를 떠나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현실은 돈을 믿고 돈을 좇는다. 돈이 주는 보편적 가치보다 특별한
<고인의 존엄과 존중 보장이 가장 중요한 원칙> 영국 지방정부는 관할지역에서 사망한 무연고자의 장례를 준비할 책임이 있다. 이는 영국의 「공중 보건(질병 통제)법 1984(Public Health (Control of Disease) Act 1984)」에 따라 부과된 지방정부의 책무이다. 영국에서는 사망하고 가까운 친척이 없거나, 가까운 친척·혈족 또는 친구가 장례식을 할 수 없는 경우 또는 이들이 장례 할 의사가 없다면 고인을 위해 ‘공중 보건 장례’(Public health funerals)를 지원한다. 영국의 주택·지역사회·지방정부부(Ministry for Housing, Communities and Local Government, MHCLG)는 ‘공중 보건 장례’의 모범 사례 지침(Public health funerals: good practice guidance)을 제공하고 있다. 이 지침을 통해 영국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가 어떠한 원칙에 따라 지원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고인의 존엄(dignity)과 존중(respect) 보장 원칙 영국의 지방정부는 ‘공중 보건 장례’를 지원할 때 장례에 관한 종교나 신념과 관련된 생전의사, 또는
질병관리청은 지난달 25일 코로나19를 제2급 감염병으로 하향 조정했다. 그리고 이번 달 2일부터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 완화했다. 이렇게 코로나로 인해 잃어버렸던 일상이 단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의 단계적 회복 조치들이 지난 2년 동안 코로나가 남긴 사회적 상흔을 저절로 사라지게 할 것 같지는 않다. 코로나 상황에서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자리의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면서 사람들의 관계도 단절시켰다. 이러한 단절은 가족관계뿐 아니라 이웃 관계마저도 소원해지게 했다. 이에 따라 홀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삶의 방식 자체가 더 확대되었다. 현재 사회적 고립이 고독사 등의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코로나가 초래한 단절과 고립은 향후 고독사와 무연고사망자 증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 에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언론사 기자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코로나19가 무연고사망자를 증가시켰나요?”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코로나19로 고립과 단절이 심화하였으니 무연고사망자 발생도 자연스럽게 증가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결국 이 질문에는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코로나가 무연고 사망자에게 준 상처는 죽음이 아닙니다. 자극적인 언론의 보도, 차가운 자본의 논리, 사람들의 편견, 애도받을 권리의 박탈입니다. 완연하게 피어난 봄을 맞이하며 더는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을 상처 입히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자신을 위해 어떠한 변명도, 변호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의 존엄함을 지켜주는 것은 결국 산 자들의 몫입니다. 코로나는 장례식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망자의 장례절차는 그 동안 ‘선화장 후장례’가 원칙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방역지침이 바뀌면서 장례를 모두 치르고 화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원칙에서 무연고 사망자는 예외입니다. 아직 뚜렷하고 명확한 업무 프로세스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화장 후 따로 날을 잡아 뒤늦게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치실 이용 자격: 가족, 3일장 최근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에 안치실에 대한 상담요청이 늘고 있습니다. 요양병원, 동주민센터, 경찰 모두가 안치실을 구하지 못해 힘들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충격적인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안치실을 구하지 못한 경찰이 변사자를 무연고 시신이라 주장
'이것'과 '저것'으로 구분되는 무연고 사망자 시신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르다보면 종종 듣게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과 ‘저것’ 입니다. 운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때로는 의전업체의 직원들이 고인이 모셔진 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지칭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물건이 아닙니다. 아마 가족들이 치르는 일반적인 장례였다면 제대로 된 존칭으로 지칭했을 것입니다. 코로나 탓에 자원봉사자 모집이 불가능한 요즘, 이 문제는 특히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운구를 위한 최소한의 인력이 갖춰지지 않다보니 의전업체 직원들은 현장에서 다른 운구 기사들을 섭외해야 합니다. “불쌍한 사람이고 좋은 일이니까 도와줘야지”라며 함께 관을 드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들을 움직인 시혜와 동정이 고인을 빨리 ‘처리’해야 하는 짐짝으로 만들 때 깊은 아쉬움을 느낍니다. 서울시는 다른 지자체에 비해 좀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공영장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직 보완해야할 점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근간이 되는 시스템은 갖춰진 셈입니다. 하지만 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바로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도를 따라 시민들의 인식과 의식이 바뀌는
서울시에서만 무연고 사망자 천명, 이제는 대비해야할 때 무연고 사망자의 전국 통계가 매년 증가하면서, 서울시의 통계도 마찬가지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서울시에서만 한 해에 665명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러야 했고, 2021년에는 856명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렀습니다. 1년 만에 거의 200명가량 증가한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현장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 해 동안 386명의 장례를 치렀던 2019년과 비교했을 때 인력과 공간에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수가 두 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전업체의 인력은 두 사람입니다. 공영장례가 안정적으로 안착하며 자연스레 늘어난 장례 참여자들, 무연고 사망자의 지인들과 연고자를 위한 공간도 예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제는 비좁게 느껴지는 빈소 탓에 사회적 거리두기도 어렵고, 때로는 참여자들이 교대로 빈소에 들어와 애도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는 일이 생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는 부고 안내를 놓치는 일이 생겼습니다. 1년 동안 856명의 부고를 세 사람이 챙기다 보니 예전과는 다르
죽는다는 것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의 모든 문제들을 던져버리고 훌쩍 여행 떠나듯 다른 세상으로 갈 수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획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행한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정리하고 계산 해야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과정은 자신의 삶을 빠짐없이 리뷰해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하는 것으로 까맣게 잊고 있던 찰라의 순간까지 빠짐없이 찾아내어 적나라한 화면으로 온 하늘을 다채우며 보여준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겪은 나의 체험기이다, 이상하고 별난 사람으로 바라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조차 전해져야 할 인연이 되어 밝힐 마음을 내어본다. 온갖 요상한 말로 저마다 진실인양 떠드는 혼란스런 세상이고 내키지 않을 주제이지만 절대 예외가 없이 당해야만 하는 일이니 기억했으면 좋겠다. 청소년기에 죽음을 경험했던 나의 이야기는 한때 세상에 화제거리로 잠시 알려진 적이 있다. 죽음은 예기치 못한 때에 한순간에 찾아와 눈돌릴 틈도 주지 않는다. 후에 겪을 일을 생각해서 지울 것은 지우고 다듬고 좋은 것으로 포장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한치의 오차없이 날것으로 살아온 숨소리까지 다시 보여주며 자신의 과오를 처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