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여성화장로 기사들의 자부심▶시신을 태우는 일을 하는 화장로작업기사는 흔히 화부(火夫)로도 불린다. 엄연한 직업이지만 남성들도 꺼린다. 일이 험하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적지 않은 탓이다. 이런 금녀의 영역에 20대 여성 2명이 처음 등장했다. 국내 최초의 여성 화장로작업기사 기록을 갖게 된 이해루(27), 박소연(25)씨다.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원지동 서울추모공원 내 화장로. 하루 수십 구의 시신이 한 줌의 재로 변하는 현장이다. 인턴 3개월을 거쳐 9일부터 서울추모공원의 정식 직원이 된 이씨와 박씨가 일하는 곳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시신위생처리사도 초기엔 여자는 못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많이 하지 않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우리의 시작이 여성 후배들의 진입 장벽을 허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화장로작업기사는 시신이 들어있는 관을 화장로에 넣고 화장한 뒤 수골·분골 작업을 거쳐 유골을 유골함에 담는 일까지를 맡는다. 화장로가 작동하는 100분 동안엔 밖에서 시신이 잘 타는지 지켜본다. 만약 시신이 센 화력에 밀려 화구로부터 멀어지면 길이 2m, 무게가 10㎏이 넘는 막대기 모양의 작업 도구를 이용해 시신을 다시 화구 가까이로 끌어다 놓는
▶김경순 건양대병원 장기기증 코디네이터 작년 이식 22건 성공… 복지부장관 표창도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일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 힘듭니다. 하지만 보람과 사명감 만큼은 그 어느 직업보다 높을 겁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자를 지켜보는 사람은 의사 이다. 하지만, 뇌사자의 장기기증과 이식 분야는 이와 다르다. 장기기증 코디네이터가 뇌사자와 가족, 장기수여자, 의료진 등의 연결고리 이다. 대전·충청 지역의 뇌사판정대상자관리기관(HOPO)인 건양대병원 장기이식센터 김경순(49·사진) 간호사는 지난해만 해도 벌써 22건의 장기이식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이는 전국에서 3, 4위를 차지할 만큼 건수가 많다. 2009년 5건에 비해 4배 넘게 증가했다. 김 간호사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가 주관한 2011년도 장기기증 유공자 시상식에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중환자실과 인공신장실 등에서 간호사 생활을 30년 가까이 했지만 이 업무를 맡은 1년 반 사이에 더 많은 걸 배우고 책임감도 커졌습니다. 이틀 밤을 꼬박 새며 뇌사자 발생부터 환자 이송, 보호자의 장기기증 동의,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
“지금도 간혹 꿈속에서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떠올라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서울 성동구 송정동 서울시립 게스트하우스(노숙인쉼터)에서는 29일 오랜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사회 복귀에 성공한 10명의 ‘노숙생활 선배’와 ‘현재 노숙인’인 30여명의 쉼터 입소자들이 만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행사다. 이날 노숙인 선배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길을 고백하고, 어떻게 역경을 이기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는지를 ‘후배’들에게 털어놓았다.김모(64)씨는 이날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인쇄업을 접고 빚에 시달리다 결국 거리로 나앉았다”며 “힘든 거리 생활을 하면서도 재기에 성공한 것은 나를 사랑했던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6년 노숙인 시설 입소 후 서울시에서 마련해준 일자리를 통해 꾸준히 돈을 모아 지난 2009년 LH공사의 단신자 매입임대주택을 구하며 자립에 성공했다. 김씨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재결합에도 성공했다.또 다른 발표자로 나선 이모(53)씨는 “1997년 페인트점을 운영하다 부도를 맞은 후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단돈 280원밖에 남
지난 16일 서해안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시신 한 구가 발견됐다. 시신 훼손이 심해 ‘남자’인 것만 확인됐다. 시신이 옮겨진 인천의 한 병원 관계자는 이날 서현숙씨(40)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씨가 관할 구청을 통해 보내놓은 ‘무연고자의 장례를 치러드립니다’라는 공고문을 기억했던 것이다.비영리민간단체 ‘나눔과 나눔’의 대표인 서씨는 지난 2월부터 무연고자, 일본군위안부피해 할머니, 저소득층의 장례를 치러주는 일을 시작했다. 서해에서 발견된 시신의 장례는 발견 당일 곧바로 치러졌다. 장례식장에서는 “신상을 모르니 위패를 놓지 않고 빈 상만 놓겠다”고 했다. 서씨는 “그래도 위패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고민하다 ‘무명남’이라고 위패를 써서 모셨다”고 했다. ‘이름 없는 남성’이라는 뜻이었다. ‘무명남’씨의 시신은 화장한 뒤 인천시립납골당에 안치됐다.22일 서울 동작구의 나눔과 나눔 사무실에서 서 대표를 만났다. 서씨는 홀트아동복지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에서 10년가량 일하다 결혼하며 활동을 접었다. 이후로는 10년째 금융상품 판매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직장을 얻어 물질적으로 아동단체·장애인단체들에 후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하지만 굳이
▶의료진 회생 어렵다 진단… 몽골 아버지 장기기증 결심▶지난 19일 오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3가 시립화장장. 몽골 청년 알탕바타르(19)군이 재가 돼 채 식지 않은 누나 알탕졸(24·전주대 대학원)씨 유골을 건네받으며 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는 3년여 만에 누나를 만나 함께 공부하기 위해 지난 17일 몽골 한국대사관에서 한국 입국을 위한 인터뷰를 할 예정이었다.그는 예정보다 한 달 앞당겨 지난 10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하나뿐인 누나가 물놀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전북 익산 원광대병원에서 만난 누나는 의식이 없었다. 누나는 하루 전 몽골 유학생 친구 5명과 대천해수욕장에 갔다가 깊은 물에 빠져 뇌사 상태였다. 초원만 보며 자란 누나는 늘 바다를 신기해했다.병원의 누나는 깨어나지 못하고 갈수록 상태가 나빠졌다. 11일 한국에 온 삼촌(33)과 함께 누나를 돌보며 울란바토르의 아버지와 수시로 국제 통화를 했다. 의료진은 지난 14일 회생이 어렵다는 진단과 함께 화장을 하기 전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견 엔지니어로 일찍 아내를 잃고 남매를 키운 아버지(46)는 망설임 끝에 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
▶죽은 영혼 위로해주는 일 무연고묘지 벌초김영수(81) 씨가 부모님 산소 주변의 무연고 분묘나 후손이 찾지 않는 분묘를 60여년 동안 벌초 봉사를 하고 있다. 부모님 무덤이 있는 마을 공동묘지에 무연고 분묘나 후손들이 찾지 않는 분묘들을 60여년 동안 아무 대가도 없이 말끔하게 벌초를 해 주고 있는 80대 노인이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영수(81`경산시 진량읍 부기2리) 씨. 부기1·2리 마을 공동 묘지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신 그는 20대 때부터 추석이 다가오면 부모님 산소 벌초를 하다가 주변의 연고가 없는 20여 기의 산소도 벌초를 해 주었다. 그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연고 분묘에 벌초를 해주면 부모님이 매우 기뻐하실 것 같아 벌초를 시작했다면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냐고 했다. 김 씨가 해주던 벌초 묘지 수는 초창기 20여 기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족히 200여 기를 넘는다. 예전에는 무연고 분묘를 주로 벌초해 주었으나 요즘에는 무연고 분묘뿐만 아니라 조상 산소도 벌초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 그 수가 엄청 늘어 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추석을 전후해 1개월가량 마을 공동묘지에 살다시피한다. 요즘 그는 예초기와 낫
대중음악계의 레전드 국민가수 조용필이 소록도에서 고품격의 공연을 펼쳐 한센인에게 노래 이상의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조용필은 지난 15일 전속 밴드와 함께 소록도를 찾아 1시간여 동안 ‘모나리자’, ‘단발머리’ 등 본인의 히트곡을 열창했다. 또한, 공연 과정에서 한센인을 무대로 모셔 함께 노래와 춤을 추는 등 흥겨운 장면도 연출했다. 공연을 지켜본 한센인 대표는 “연예인이 간혹 소록도를 방문, 공연을 펼친 적은 있지만, 한센인과 함께 하는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대스타의 소탈함과 진실함에 큰 감명을 받은 모습이었다. 조용필은 “작년 어린이 날 영국 필하모니아오케스트라와 소록도에서 협연한 적이 있었는데, 노래 한곡 부르고 떠나온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제대로 된 공연으로 한센인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리고 싶었다”며 소록도를 다시 찾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조용필은 자선공연 계획이 외부에 알려져, 행사의 취지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며, 소록도병원 측에 공연 계획을 철저히 비밀로 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세관장 천홍욱)에서 후원한 T셔츠 1500점과 익명의 기업인이 후원한 영양제 등 후원품 전달식도 함께 열렸다.
인간 박정희 내외분에 대한 변함없는 존경과 추모의 마음으로 이 글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 ♣춘삼월 소묘♣ 벚꽂은 지고 갈매기 너울너울 거울같은 호수에 나룻배 하나경포대 난간에 기대인 나와 영수 노송은 정정 정자는 우뚝 복숭아꽂 수를 놓아 그림이고야 여기가 경포대냐 고인도 찾더라니 거리가 동해냐 여기가 경포냐 백사장 푸른 솔밭 갈매기 날으도다. 춘삼월 긴긴날에 때가는 줄 모르도다. 바람은 솔솔 호수는 잔잔 저건너 봄사장에 갈매기떼 날아가네 우리도 노를저어 누벼 볼까나 -1951년 4월 25일 ♣영수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고♣옥과도 같이 금과도 같이 아무리 혼탁한 세속에 젖을지언정 길이 빛나고 아름다와라.착하고 어질고 위대한 그대의 여성다운 인격에 흡수되고 동화되고 정화되어 한 개 사나이의 개성으로 세련하고 완성하리. 행복에 도취한 이 한밤의 찰나가 무한한 그대의 인력으로서 인생코스가 되어 주오.그대 편안히 잠자는 모습을 보고 이 밤이 다 가도록 새날이 오도록 나는 그대 옆에서 그대를 보고 앉아 행복한 이 시간을 영원히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 1952년 7월 2일 밤 ♣한송이 목련이 봄바람에 지듯이♣상가(喪家)에는 무거운 침묵속
“약해지지 마!”돈 있고 권력 있고그럴듯해 보여도 외롭고 힘들긴 다 마찬가지다.그래서 사람에겐 저마다 위로가 필요하다.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인 올해 첫 시집『약해지지 마(くじけないで)』를 발간한 시바타 도요. 그녀의 시집은 지난 3월에 발간된 후 6개월 만에 7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가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아마도 그 작은 시집엔 ‘위로의 바이러스’ 가 묻어 있는 것 같다.그렇다.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도요의 시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위로다. 개개인만이 아니라 이 시대에 대한 위로다. 99년의 세월을 살아온 도요가 말한다.“…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1911년 도치기시에서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난 도요는 열 살 무렵, 가세가 기울어 갑자기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전통 료칸과 요리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더부살이를 했다.그런 와중에 20대에 이미 결혼과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33세에 요리사 시바타 에이키치와 다시 결혼해 이듬해 외아들 겐이치를 낳았다. 그 후 재봉일 등 부업까지 해가며 힘겹지만 정직하게 살아왔다. 1992년 남편과 사별한 후 그녀는 우쓰노미야 시내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배우 이덕화·최수종씨 등 연예인들이 25일 기부·봉사단체인 사단법인 ‘좋은 사회를 위한 100인 이사회’(이하 100인 이사회)를 설립했다. 100인 이사회는 연예인들의 재능 기부를 중심으로 사회적 기업을 후원하는 단체다.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대학생봉사단 조직 및 운영 등의 활동을 준비 중이며 대학교 순회 강연 콘서트도 마련할 예정이다.명예회장은 이덕화씨, 이사장은 최수종씨가 맡고 이순재·신영균씨 등이 고문으로 참여한다. 이 밖에 하희라, 배종옥, 이정재, 김수로, 김응석, 남능미, 임호, 남일우, 남성진, 강수연, 김병만, 김용림, 김지영, 김창렬, 변진섭, 심현섭, 오윤아, 유리상자, 유준상, 유키스, 한상진씨 등 현재 5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이덕화 명예회장은 이날 창립기념식에서 “40년 동안 방송생활을 하면서 시원하게 기부를 한 적이 없으나 마음은 있었다”며 “(이처럼) 마음은 있는데 쑥스러워 못나서는 분들을 모아서 함께 좋은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
▶중국 파견근무하던 신랑, 탈북여성과 운명적 사랑, 7년 전 약식婚 미안했는데 이번에 한 풀게 됐어요▶지난 23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필동 남산국악당 마당에 파랑·주황·초록·노랑·보라색 오색 천이 내걸렸다. 가야금·장구·해금·피리 등이 어우러진 흥겨운 국악 소리가 장내에 가득한 가운데 탐스러운 사과·배·대추 등이 놓인 전통혼례상이 차려졌다. 신랑 출(出)! 이날 전통혼례 주례를 맡은 서울시 홍보대사 탤런트 최불암씨가 소리치자 보라색 혼례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최진흥(50)씨가 당당히 입장했다.신부 출(出)! 이번에는 연지곤지 찍고 빨간 전통혼례복을 곱게 차려입은 김명순(가명·35)씨가 꽃가마를 타고 들어와 12개의 청사초롱이 걸린 길을 따라 우아하게 들어왔다. 신랑과 신부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이들은 남남북녀(南男北女) 커플로, 탈북자 출신의 신부 김씨가 한국에 온 지 7년 만에 서울시의 도움으로 정식 전통혼례를 올리게 됐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3년 김씨가 남한에 오자마자 결혼했지만, 당시는 쫓기듯이 약식으로 간단히 식을 올려 아쉬움이 남아있었다.신부 김씨는 함경남도 함흥시 흥남구역 출신이다. 2년제 간호학교에 다니던 그는 1998년 학교에 내야
▶완전 건장한 남편은 저 때문에 동반여행을 떠납니다.평생을 진실했고, 준수했고 성실했던 최고의 남편.정말 미안하고 고마워요!! ◀▶떠나는 글…저희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았습니다.그런데 2년전부터 여기저기 몸에서 경계경보가 울렸습니다. 능력에 비해서 너무 많은 일을 하다보니 밧데리가 방전된거래요.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렸고 또 한 번의 절망적인 선고. 그리고 또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이상 입원에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119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그동안 저를 신뢰해 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
장의사가 직업이 아닌데도 그 중요하고도 아름다운 일을 하며 30년 동안 봉사활동을 해온 이가 있다. 광주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한우기씨(48)다. 한씨가 최근까지 염습(殮襲)한 망자는 대충 100여명에 달한다. 장례절차가 현대화, 전문화된 탓에 한씨의 따뜻한 손을 거친 망자들은 대부분 농촌 지역의 소외된 계층이다.평생 외로웠을 망자들을 위해 한씨는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열 일을 제처두고 달려가 인생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 한씨가 염을 배운 것도 춥고 배고픈 어린시절을 이겨내기 위해서였다. 학용품을 준다기에 성당에 들렀다가 우연히 신부님이 망자를 염하는 모습을 봤다. 그 시절 염을 배우면 성당에서 오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씨와 장례일은 그렇게 인연이 돼 30년 동안 이어졌다.고향 함평을 떠나온 한씨는 어릴적 배고픈 기억을 잊지 않고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뛰어들었다.전남·북 지역의 농촌을 돌아다니며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을 보살피기 시작했다. 현재 한씨가 도움을 주고 있는 이들은 37명으로 웬만한 복지시설 인원에 달한다. 낯선 사람의 모습에 간혹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한결 같은 그의 모습에 주민들도 식구 처럼 한씨를 대하고 있
돈 맛을 너무 많이 알아버려 가시는 걸음걸음마다 돈다발 없이 결코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결코 지갑을 열지 않는 딴따라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월세방에 살면서도 버는 돈을 족족 기부해버리는 스타들도 많다.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아름다운 스타들을 ‘기부 천사’라고 압축하기엔 그들의 선행이 너무나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엄청난 액수의 기부금을 톡 내놓고 사라지는 스타보다 땀 흘리며 아기를 돌보는 스타가 더 따뜻해 보이는 건 인지상정 아닐까? ♥국민 엄마 김혜자 월드비전을 통해 아프리카 등 기아로 허덕이는 국가에 봉사활동을 하고 캠페인을 벌여온 배우 김혜자.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이 결코 아깝지 않은 그녀의 봉사활동은 사실 구호 단체와의 협약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80년대부터 오류동 모 고아원과 결연을 맺어 그곳 출신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후원해주고 있으며 지금은 성장하여 사회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를 정도라고. 뿐만 아니라 강원도 태백의 폐광촌에 공부방을 지어주었고, 베스트셀러인 의 인세는 전액 남북한 어린이 돕기 기금으로 기탁했다. ♥사랑은 몰라도 기부는 안다 문근영 그녀가 뜨면 기부금이 폭증한다? 영화나 드
♥나는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남편이 나오면 100만번 사랑한다고 말할 겁니다. 100만번.▶남미 칠레에서 33인의 기적이 일어났다. 금광이 무너져 지하 700m 속에 17일간 갇혀 있던 광부 33인이 죽음의 땅속에서 생명의 메시지를 달아 올려 보냈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월요일(23일). 남미는 물론, 북미 대륙과 온 세계가 기적이 일어났다고 흥분하고 있다. 지상의 구조대가 뚫은 지름 15㎝ 구멍으로 드릴(drill) 줄을 내려 보냈다가 끌어당기자 우리 33명은 피난처에서 무사하다고 쓴 붉은 글씨의 종이가 올라온 것이다.이틀에 참치 두 스푼과 한 모금의 우유, 그리고 비스킷 한 조각.극소량의 음식물로 견디던 광부들은 구조대가 내려 보낸 줄에 우선 생존 메시지를 보낸 뒤, 생존 광부 중 가장 연장자인 마리오 고메스(63)가 지상의 아내 릴리아나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를 매달았다. 릴리아나에게. 나는 건강하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곧 나갈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인내와 믿음을 가지세요. 나는 단 한 순간도 당신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무너진 금광 입구 임시캠프에서 돌탑을 쌓으며 가슴을 졸이던 가족들은 행복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