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푸른색이다”라는 말은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였던 유리 가가린이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로 날아올랐다가 1시간 48분 동안 우주에 체류하고 귀환한 뒤 밝힌 말이다. 지구가 푸른색을 띄는 것은 지구표면의 3/4가 물이기 때문이란다. 최근 NASA와 지구로부터 370km 상공에 있는 우주정거장이 촬영한 위성사진의 영상은 천둥번개도 보이고 지구의 대기가 발산하는 에메랄드빛 대기광과 지구로 떨어지는 혜성의 섬광까지 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구는 수많은 별 중에 푸른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지구별이다. 고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의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에서처럼 지구별은 아름답다. 삶의 과정이 좋은 소풍이었건 힘든 소풍이었건 그 소풍길이 멈추면 누구나 무덤으로 돌아간다. 고 천상병 시인도 의정부 시립묘지에 부인 고 목순옥 여사와 함께 잠들어 있다. 시인은 자식이 없어서 세월이 지나면 무연고 묘지로 흔적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후면 추석인데 성묘 오는 사람이 없을 듯 하고 황량한 공원묘지는 평소에도 주위엔 무덤들만 덩그러니 있을 뿐 적막하다. 2003년
"꿈 가득한 아이들의 눈… 르완다의 희망을 봤죠""어때, 소리가 몸을 통해 느껴지지?"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6)가 16세 르완다 소년 새뮤얼 은셍기마나의 손에 바이올린 활을 쥐여주며 말했다. "낑, 끼깅…." 소년이 조심스레 활을 켜며 소리를 만들어내자 정경화는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었다. "그래. 그거야. 조금만 더 하면 오케스트라 해도 되겠다. 내가 내는 소리를 잘 들어봐. 금방 따라올 수 있을 거야." 흙으로 벽 쌓고 나뭇가지로 지붕 얽은 낡고 침침한 집을 '연주홀' 삼아 정경화가 바이올린을 켰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거장(巨匠)의 선율이 담벼락을 타고 마을에 울려 퍼졌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동네 꼬마와 아낙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지난 25일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차로 세 시간을 달려야 닿는 산골마을 무다솜와의 주민들은 이렇게 처음으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와 만났다.1999년부터 15년간 국제구호 NGO인 '월드비전'을 통해 다달이 르완다 어린이·청소년 3명을 후원해온 정경화는 이날 사진으로만 봐온 아이들과 처음 만났다. 1994년 발생한 르완다 인종 대학살 20주기와 세계 평화의 날(9월 21일)을 맞아 월
중고생 남매가 직접 재배한 유기농 작물로 반찬을 만들어 3년째 위기 가정에 도시락을 전달해 화제다.주인공은 경기도 가평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조용하(18·고 3년)군과 경화(15·중 3년)양. 남매는 2012년 6월부터 학교 인근 빈땅 2천247㎡에 배추, 깻잎, 쪽파, 고추, 옥수수 등 35가지 작물을 직접 재배하고 있다. 홀몸노인의 고독사 뉴스를 접한 뒤 계획했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작물로 반찬을 만들고 도시락에 담아 홀몸노인과 위기 가정 등에 나눠주기로 했다. 아직 학생 신분이다 보니 텃밭 임대와 반찬 만드는 일은 부모가 도움을 줬다. 기숙사에서 생활해 학교 인근 빈땅을 빌렸고 '나눔농원'으로 이름을 붙였다. 조군의 아버지는 "전국에서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다 보니 남매의 제안에 고민이 많았다"며 "큰 애가 이곳에서 사춘기를 극복하는 등 오히려 아이들 성장에 더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친구 6명도 동참해 일종의 교내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일이 워낙 힘들다 보니 친구들은 대부분 빠져나갔고 현재는 빈자리를 부모가 채워 네 식구가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한 작물을 수확한 뒤 땅을 쉬게 하고 옆에 다른 작물을 파종하는 방식으로 농원을 운영하
세월호 침몰사고 소식에 연예 스타들의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원의 소속사는 “하지원이 MBC ‘기황후’ 막바지 촬영 중 세월호 침몰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피해자 가족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 기부를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원소속사 관계자는 “이번 사고의 피해자 대다수가 청소년이라는 소식에 하지원이 더욱 마음 아파했다”고 전했다.‘피겨여왕’ 김연아도 기부 대열에 합류했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 김연아가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전 국민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며 “1억 원의 기금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전달한다”고 전했다. 미국 LA다저스 소속 야구선수 류현진은 세월호 침몰 사고 구조 작업을 위해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한데 이어 현지에서 가진 팬사인회에서 “멀리서나마 사망자 유족과 실종자 가족 등 사고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배우 송승헌 소속사는 “송승헌 씨가 사고 소식을 접한 뒤 계속 안타까워하다가 구세군을 통해서 세월호 구조작업과 유족지원에 써달라며 1억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송승헌은 2011년 일본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구세군을 통해 거액을 기부한 바 있다.
그의 나이 82세. 최연소 졸업생보다 무려 63세나 많은 최고령 졸업생이다. 할머니는 76세가 되던 2008년 이 학교에 입학해 학구열을 불태웠다. "어려운 시절을 보내느라 배우지 못했던 설움이 항상 가슴에 남아 있었는데 오늘 그 한을 풀었습니다." 전북도립여성중고등학교 제14회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받아 든 오점녀(82) 할머니는 이내 눈물을 떨어뜨렸다. 여든이 다된 나이에 입학한 할머니는 6년간 누구보다 힘든 과정을 거쳐 고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할머니는 "처음에 학교 문턱을 넘을 때는 괜히 내가 다른 학생들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첫해 학교에 다니면서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했고 6년간 열심히 공부했다"고 입학 당시 소회를 밝혔다.그 세대 대부분이 그렇듯 할머니 역시 어려운 형편에 학업을 그만둬야만 했다. 할머니는 당시에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전주 풍남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예전에 우리 집에 아주 잘 살았다. 하지만 일제감정기와 6·25를 거치면서 오빠들이 강제노역에 끌려가고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몰락했다"면서 "한 명이라도 돈벌이를 해야 했기에 15살에 학업을 그만두고 직조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이 역대 감독 최고 대우로 재계약하면서 2억원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9일 삼성과 계약금 6억원 연봉 5억원 등 3년간 총액 21억원에 재계약한 류 감독은 계약서에 사인하며 계약 금액 중 2억원을 떼서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류 감독은 “지난 3년간 국내 최고 인기 종목의 감독으로 정상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이에 그동안 받은 팬들의 사랑을 기부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통 큰’ 결정을 내렸다. 기부처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경북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류 감독은 지난해부터 2년간 청각장애 선수들로 구성된 청주성심학교 야구부에 후원금으로 매달 100만원씩을 전달해왔다.역대 최고 감독 대우를 받게 된 만큼 기부 금액도 최고다. 역대 삼성 감독 중에서는 전임 선동열 감독(현 KIA 감독)이 고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 또 삼성 코치`감독(2004~2010년)으로 재직하면서 맺은 대구와의 인연 등으로 2011년 12월 대구대교구 100주년 기념 대성당 건립을 위해 성금 1억원을 쾌척한 적이 있다.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제2 병사묘역에서는 ‘장성묘역 대신 병사묘역에 묻히기 원한다’는 유언을 남긴 베트남전의 영웅 고(故) 채명신 장군의 삼우제가 치러졌다. 부인 문정인 여사와 아들·딸을 비롯한 유족들, 베트남전 참전 노병들이 추모 예배를 하며 고인을 기렸다. 이 자리에선 4일장으로 치러진 채 장군의 장례 기간 내내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들을 맞았던 채 장군의 동생 채모(76)씨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나흘간 밤샘하며 쌓인 피로를 걱정해 “삼우제는 직계가족만으로 치를 테니 나오지 말라”는 문정인 여사의 배려 때문이었다.그러나 동생 채씨는 채 장군이 60년 넘게 숨겨온 또 다른 미담의 주인공이다. 채씨는 채 장군이 1951년 초 강원도에서 생포한 조선노동당 제2 비서 겸 북한군 대남유격부대 총사령관(중장) 길원팔이 아들처럼 데리고 다녔던 전쟁고아였다. 당시 육군 중령이던 채 장군은 유격부대 ‘백골병단’을 이끌며 강원도 내에서 암약하던 북한군 색출작전을 펼쳤다. 채 장군에게 생포된 길원팔은 채 장군의 전향 권유를 거부하고 채 장군이 준 권총으로 자결했다. 그러면서 “전쟁 중 부모 잃은 소년을 아들처럼 키워왔다. 저기 밖에 있으니 그 소년을 남조선에 데려가 공부시켜달
충남 대천에서 배 타고 1시간 넘게 들어가는 섬, 삽시도(揷矢島). 섬 소년은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고 하반신을 못 쓰게 됐다. 혼자서는 집 밖에 나갈 수 없었고, 학교 문턱에도 못 갔다. 작은형 등에 업혀 두 달에 한 번 이발소 가는 게 소년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초가집에서 4~5m 떨어진 '뒷간' 가는 일이 고역이었다. 두 손에 신발을 끼우고 비닐 비료 포대에 앉아 팔로 마당을 짚어가며 옆으로 움직였다.소년이 열세 살 되던 해에 어머니가 울면서 말했다. "너는 어미 죽을 때까지만 살아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먹고살려면 배워야 한다.' 문맹(文盲)이던 소년은 형·누나에게 한글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한글을 깨친 뒤 영어 알파벳을 외웠다. 소리 내 영어를 읽는 게 좋았다. 소년은 대천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사촌형에게 부탁해 영어 책을 한 달에 5~6권씩 받아 굶주린 배를 채우듯 닥치는 대로 읽었다.이 삽시도 소년은 그로부터 37년 뒤, 서울시장이 주는 상을 받았다. 서울 방화동에 사는 강남국(56)씨는 15년간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무료 영어 과외를 한 공로로 2007년 '서울시 봉사상'을 받았다. 강씨는 상을 받은 뒤에도 방화 2·11복지관에
서울시는 소외된 이웃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시민에게 수여되는『2013년 서울특별시봉사상』수상자로 하태림 등 17명의 시민과 4개 단체를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봉사상 시상식은 10월 28일(월) 오전 9시 30분에 서울시 신청사 8층 다목적홀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및 21명의 수상자와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올해의『서울특별시봉사상』대상의 영예는 불의의 사고에 의한 장애를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한 후 병상에서 고통받는 사람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이레지역아동센터를 통한 어려운 지역아동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등 특별한 나눔 활동을 통해 이웃을 보살펴 온 ‘하태림(남, 47)씨’에 돌아갔다.‘하태림’씨는 1988년 불의의 추락 사고로 인하여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으나, 부단한 재활의 노력으로 극복한 후 본인과 같은 상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에게 희망을 전해주고자 1,000여명의 환자를 만나 상담하면서 아픔을 공감하고 고충을 나누는 등 심리적 위로와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었고,1991년부터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사랑의 중창단’을 결성하여 음악공연을 개최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한, 저소득층
제13회 전북 장애인복지증진대회 장애인 복지대상에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금성장례식장 성은순 대표가 선정됐다.12년 12월 28일 전주시 팔복동 아름다운컨벤션웬딩홀에서 김완주 전북도지사를 비롯 장애인과 가족, 사회단체장, 자원봉사자 등 각계인사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은순 대표는 장애인들에게 애정과 사랑을 갖고 물심양면으로 많은 지원을 해 준 공로를 인정받았다.한편 국제 로타리 3670지구의 장학금 전달식과 함께 열린 이날 행사는 전북 장애인복지문제연구소가 주최하고 국제로타리 3670지구와 전주 은하수 로타리클럽이 주관했다.
장례지도사의 정신을 올바르게 정진하고자 봉사를 하는 동아리가 있다. 바로 ‘섬김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전공동아리이다. 이 동아리는 서울시립도봉노인종합복지관과 협약을 맺고 독거노인의 장례식을 치뤄드리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순수 봉사동아리이다. ‘섬김을 아는 사람들’은 현대사회의 소외된 계층과 함께하며 자신들의 전공을 살린 봉사를 하자는 목적으로 시작한 동아리로 시립도봉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지역특성사업으로 서울시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제안기획사업으로 선정되어 ‘119긴급장례지원단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2004년 4월부터 시작된 사업에 전문봉사자로 참여를 하면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현재까지 총 47건의 장례지원을 하여 고인을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2005년과 올해 즉, 2012년의 도봉구로부터 나눔의 정신의 감사하다는 표창장을 받았다. 또한 2012년 11월 30일 시립도봉도인종합복지관과 다시 한번 산학협동 협약을 체결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에 더불어 앞으로 확장되는 시립도봉노인복지관의 장례지원단의 전문봉사자로서 더욱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예견된다. 현대의 문제시 되고 있는 고독사 등 점점 고인의 존엄성이
미국에서 활동하는 목사 김기환 씨(49)는 캘리포니아 주 부에나파크 린제이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9월 4일부터 29일까지 세라믹 작가 5명 및 다른 사진작가 3명과 함께였다. 전문 예술인은 아니지만 사진촬영과 블로그 활동에 열정적인 사실이 알려져 전시회에 초대받았다. 그는 최근 찍은 작품을 엄선해서 보냈다. 그의 블로그에는 아프고 힘든 일을 겪는 사람에게 힘을 주는 작품이 특히 많다. ‘삶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으셨나요?’라는 글에는 모진 파도로 인해 반들반들하게 닳은 자갈 사진을 함께 올려놓는 식이다. 항암치료를 받아 완치단계에 이른 30대 청년을 축하하는 사진에는 ‘하루를 호흡하며 살 수 있는 시간이 있음을 기념하며’라는 글귀를 붙였다. 김 씨가 지인들에게 보내는 메일에는 이런 문구가 담긴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그는 자신이 이렇게 삶의 소중함, 오늘의 행복을 강조하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2년 전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꾼 파티를 언급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마지막김 씨는 2010년 10월 2일 특별한 모임에 초대됐다. 그를 포함해 40여 명이 초대받았다. 이계조 전 한미문화교육원장이 준비한 자리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헌팅턴비치의 일식당에
▶“죽음은 삶의 한부분… 웰다잉 준비하면 삶이 풍성해진다”▶“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겪는 삶의 일부분입니다. 진정한 웰빙은 ‘웰다잉’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웰다잉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사람은 남은 생을 보다 가치있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3차례 암수술을 받은 후 ‘웰다잉’ 전문강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최명환(65) 단장. 그는 “죽음이란 우리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결과물”이라며 “그래서 죽음은 우리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준비해야 한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고, 삶에 대한 의지를 되찾는 것이 잘 죽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최명환 단장의 삶은 마치 한편의 영화 같다. 일류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했고, 2007년 퇴직 전까지 34년 동안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굴곡없이 평탄했던 그의 인생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은 2003년의 일이다. 건강검진 중 오른쪽 신장에서 종양이 발견돼 신장의 1/3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에는 왼쪽 신장에서도 암이 발견돼 또 한번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나니 죽음이라는
제67회 식목일을 맞아 팔순의 모범 독림가가 50년 이상 관리해 오던 시가 1000억원 대의 대규모 임야를 국가에 기증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경기도 용인에서 인근 용인.안성 지역의 산림을 경영하는 손창근(83)씨는 최근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임야 662㏊(약 200만평)를 국유림을 관리하는 산림청에 기부했다. 김대건 신부 묘역을 포함한 천주교 미리내 성지에 인접한 이 산림의 넓이는 서울 남산 총면적의 2배, 공시지가로 환산하면 400억원이 넘고 시가로는 무려 1000억원을 넘는 금액이다.여간해서는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알려진 손씨는 지난 3월 대리인을 산림청에 보내 기부의사를 밝힌 다음 실제 접촉 등 번거로운 절차나 조건 없이 소유권 이전등기까지 모두 마무리했다. 그의 아들.딸 등 가족도 손씨의 뜻에 적극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손씨가 엄청난 면적의 산림을 기부한 이유는 이 지역의 산림이 다음 세대에까지 잘 보존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대리인을 통해 “수도권 지역의 끈질긴 개발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재산을 국가에 기부하기로 결심했다”며 “이 숲이 다음 세대에까지 온전하게 잘 보호되고 관리되기 바란다”고 간곡히 당부했다.손씨는 지난 1
▶절약,목숨,부부애,선한 일... ▶우리가 같이 좋은 일 하는 거야. 당신도 알고 있지?▶27일 경기도 김포 의 A병원 중환자실. 장재은(81)氏가 산소호흡기를 끼고 누워 있는 부인 최현숙(80)氏 귀에 대고 속삭였다. 崔氏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張氏는 때때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흐르자 낡은 점퍼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張氏는 지난 21일 평소 다니던 인천 강화군 의 홍의교회를 찾아 우리부부 공동명의로 5억원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고 했다.큰 病이 없던 부인이 기도(氣道)에 음식이 걸려 갑작스레 뇌사 상태에 빠진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25일에는 장씨와, 서울에 사는 아들(54)·딸(48)이 참석한 가운데 교회에서 장학기금 봉헌식이 열렸다. 평소 장씨 부부의 돈 씀씀이를 잘 알고 있던 마을 주민들 사이에선 5억원 기부 소식이 화제가 됐다. 1956年 인천사범학교(현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평교사로 시작해, 1997年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張氏와 夫人은 마을에서 소문난 구두쇠였다. 교사 시절 월급을 받으면 100원도 허투루 쓰지 않고 꼬박꼬박 저축했다. 夫人 崔氏는 시부모를 모시고 아이를 기르면서도 밤낮으로 인삼 농사를 지어 돈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