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품어온 아내 흔적 조건 없이 병원에 맡겨▶집사람 잘 부탁합니다, 정말로▶지난 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천주교 흑석동 성당 납골당 평화의 쉼터에 말쑥한 양복 차림의 노인이 들어섰다. 4년 전 화가였던 부인 이경화(당시 70세)씨와 사별(死別)한 서상희(82)씨다. 그는 주말이면 늘 이곳을 찾아 백혈병으로 먼저 떠난 부인과 못다 한 얘기를 나눈다.이날 신씨는 평소와 달랐다. 꼭 해야 할 중요한 얘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눌러 쓴 모자를 벗는 손이 떨렸고 충혈된 눈엔 물기가 어렸다. 여보, 당신이 기뻐할 만한 일이 있다오. 부인의 유골함이 담긴 안치단을 쓰다듬으며 서씨가 속삭이듯 말했다. 병원에서 당신 그림을 다 받아주기로 했거든. 그렇게 아꼈던 당신의 분신(分身)들이잖아….서씨는 지난 4일 부인의 유작(遺作) 70여 점을 아무 조건 없이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에 기증했다. 화사한 빛깔의 꽃과 과일을 그린 정물화, 항구에 정박한 고깃배를 거친 붓 터치로 그린 풍경화 등 다양한 작품들이다. 평소 꽃을 좋아한 부인은 알록달록한 색감의 꽃 그림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추상(抽象)을 혼합한 정물화도 여러 점 보였다. 타계하기 몇 년 전부터 새롭게 시도한 그림들이다.
▶82년된 중고차 몰고 떠나… 여행의 끝? 아직 몰라요▶낳은 자녀 국적도 가지가지▶10년 전, 미국인 남편 허먼 잽(Zapp·41)과 아르헨티나인 아내 칸델라리아 쇼벳(Chovet·39)은 아르헨티나에서 자동차를 몰고 세계일주에 나섰다. 결혼 6년째였고, 아이는 없었다. 둘은 남미·북미·오세아니아 등 30개가 넘는 나라를 거쳐 뉴질랜드에서 배를 타고 최근 한국에 왔다.그 사이, 아이가 넷 생겼다. 국적이 가지가지다. 맏이 팜파(Pampa·8)는 미국에서, 둘째 테우에(Tehue·5)는 아르헨티나에서, 셋째인 외동딸 팔로마(Paloma·3)는 캐나다에서, 그리고 15개월 된 막내 왈라비(Wallaby)는 호주에서 태어났다. 단둘이던 가족이 여섯이 된 것이다.이들은 최고 시속이 불과 50㎞인, 82년이나 된 중고차를 몰고 다닌다. 차체가 길고, 타이어 휠은 나무로 된 1928년형 미국산 그레이엄 페이지다. 짐도 소박하다. 커다란 가방 두개뿐이다. 지난 28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들른 이들을 만났다.10년이나 세계여행을 했는데도 변변한 기념품 하나 없기에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부부는 살아 있는 기념품이 있는데 따로 살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 얘기다.
▶만남약속, 3주차이로 어긋나 39년 흘러▶재회했지만 각자의 가정 있어 다시 이별▶1944년 7월 21일 폴란드 남부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 나치의 SS(친위대) 복장을 한 남자가 유대인 여성 한 명을 데리고 수용소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게이트를 지키던 경비병은 의심스러웠는지 한동안 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문을 열었다. SS대원 복장의 남자는 경비병에게 당케(고맙소)라고 독일어로 말한 뒤 유대인 여성을 데리고 사라졌다.이날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발칵 뒤집혔다. 남녀 수용자 한 쌍이 버젓이 게이트를 통과해 탈출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탈출한 남자는 당시 23세였던 폴란드 청년 제르지 비엘레츠키(Bielecki), 유대인 여성은 그와 동갑인 실라 시불스카(Cybulska)였다. 비엘레츠키는 1985년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기념관으로부터 유대인을 구출한 공로로 세상의 의인(義人)들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AP통신은 20일 89세가 된 비엘레츠키를 그의 폴란드 자택에서 인터뷰했다. 죽은 뒤 화장터의 연기로만 빠져나갈 수 있다던 아우슈비츠에서 그는 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을까.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우슈비츠에서 걸어나가는 동안 등 뒤에서 총알이
▶월드비전, 수익금 전액 식수사업 후원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과 함께 아프리카 스와질랜드를 방문했던 배우 최지우 씨의 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27일~6월 30일까지 신사동 캐논플렉스에서 진행된다. 이번 사진전에는 현지 어린이들과 함께 한 최지우의 모습이 담겨 있으며, 전문사진사 외에 최지우 씨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이번 사진전에 전시되었던 사진과 엽서 판매 수익금은 전액 월드비전에 전달되어 식수사업 후원으로 쓰여진다. 최지우 씨는 물을 얻기 위해 먼 길을 맨발로 걸어다니던 아이들, 부모님을 대신해 가사를 전담하여 동생과 오빠를 돌보던 아이, 내가 준 머리핀을 달고 해맑게 웃던 아이들의 모습 등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른다며 아프리카를 다녀와서 나눔의 행복을 알게 된 것처럼 이번 사진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또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나눔에 동참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우 최지우는 지난 3월 2일부터 9일까지 월드비전 스와질랜드 마들란감피시 지역개발사업장을 방문하여 물을 얻기 위해 먼 길을 맨발로 걸어다녀야 하고 또 오염된 식수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위해 손수 핸드펌프를 설치한 바 있다. 한편, 월드비전 박종삼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말에 견딜 수 없었습니다. 세 남매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시고….”24일 오후 1시 15분경 경기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D아파트 301동 앞 노상. 살인죄로 복역 중 이날 오전 대전교도소 구외(교도소 밖) 공장에서 작업을 하다 탈주한 최모 씨(33·중국동포)는 자신을 검거하기 위해 미리 와 있던 대전교도소 이용찬 교위(48) 등 4명 앞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두 손을 내밀었다. 이 교위는 수갑 한쪽은 자신의 손목에, 다른 한쪽은 최 씨의 손목에 채웠다.중국에서 밀입국한 최 씨는 2000년 12월 서울 남구로역 앞에서 자신을 때리고 도망치는 피해자를 흉기로 때려 숨지게 한 뒤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2005년 붙잡혀 12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22일 면회 온 누나(37)와 형(40)의 표정이 이상했다. 투병 중인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말한 뒤 되돌아선 누나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 것. “중국 헤이룽장 성에서 살던 9세 때 혼자 된 아버지가 뇌중풍으로 쓰러졌어요. 이후 기적같이 일어선 뒤 ‘너희 셋 때문에 도저히 눈감을 수 없다’고 말하셨어요.”최 씨는 이날 오전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공장 철조망 3개를 넘
▶실종자가족-생존자 ‘통곡의 만남’▶8일 저녁 7시50분께, 천안함 침몰 사고 생존 장병 39명이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 정비식당 안에 도착했다. 10분 뒤 천안함 실종자 가족 59명이 이들과 마주 앉았다. 장병도 가족들도 이미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천안함 침몰 사고 14일 만에 생존 장병과 실종자 가족들이 처음 얼굴을 마주 본 순간이었다. 실종자 가족들은 병장들을 만나러 가는 길부터 흐느낌을 멈추지 못했다.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 장병들은 자신들의 사이사이에 가족들이 앉을 자리를 마련해 놓았다.“너라도 살아줘서 고맙다, 다행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아들의 마지막 체취를 느끼는 듯 동고동락했던 생존 장병들의 손을 움켜쥔 채 놓지 못했다. “너랑 같은 방에 살았다던데, 우리 아이는 어떻게 지냈니? 아픈 데 없이 잘 있었던 거지?” 가족들은 장병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통해 아들과 남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생존 장병들은 “어머니, 울지 마세요”라며 가족들을 다독이다가도, 스스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실종자 가족들과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터뜨렸다. 이날 실종자 가족과 생존 장병의 만남은 1시간40분이나 이어졌다. 생존 장병 이외의 다른 군 간부들은 참
▶그의 애창곡 그리워 못 보내는 님, 못 잊어 못 보내는 님 ▶지난 30일 정오쯤 시퍼런 서해 바다를 응시하는 그의 매서운 눈 안에 바다 속 객실에 갇혀 몸부림치는 병사들이 가득 들어왔다. 잠수복 차림으로 선상에서 급히 점심을 해결한 한주호(53) 준위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아끼던 후배인 해군 특수전여단 수중폭파대(UDT) 예비역 모임인 동지회의 유호창(52) 부단장 목소리가 들렸다. 호창아, 오늘 어떻게든 함수 객실 전부를 탐색해 실종 장병들을 구해야겠어. 형, 하루에 서너번 바다에 들어가는 건 위험하니 무리하지 마. 제발. 한 준위는 완강했다. 그는 빨리 장병들을 구조해야 해. 가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잖아. 책임지고 해낼 거야라고 말했다. 사흘째 잠수로 초췌해진 얼굴의 한 준위는 가볍게 몸을 풀고 구조보트에 몸을 실었다.오후 3시쯤 천안함 함수(艦首)가 있는 부표에 도달하자 한 준위가 후배 UDT 대원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조류가 세진다고 절대 당황하면 안 돼. 천천히 물 위로 올라오면 돼. 알았지? 후배들로부터 몸짱으로 불리던 한 준위가 가장 먼저 바다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 캄캄한 물속에서 천안함 함수를 더듬던 한 준위는 그러나 갑자기 숨조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사리를 찾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평생 ‘무소유’ 정신을 실천해 온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 전 마지막 말에서도 무소유의 가르침을 전달했다. 법정스님의 다비준비위원장을 맡은 진화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은 11일 오후브리핑에서 법정스님은 입적하기 전날 밤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해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법정스님은 머리맡에 남아 있던 책을 저서에서 약속한 대로 스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해줄 것을 상좌에게 당부하셨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법정스님은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말도 남겼다고 전했다. 진화스님은 “법정스님은 평소에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
아프리카 최빈국 에디오피아에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돌보아온 배우 김혜자의 이름을 건 복지센터가 세워졌다. 지난 2월 27일(현지 시간) 아프리카 에디오피아 아디스바바내에 에디오피아 백학마을 OBS 김혜자 센터가 개관식이 열렸다. 이곳은 에디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내의 극빈층 거주지역인 굴렐레지구의 고아 및 극빈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보호시설이다. 이 시설은 영안 모자가 15만 달러가 기금을 후원했고 국제구호개발 기구인 월드비전이 건립실무를 진행했으며 굴렐레 지역정부 및 교육청이 지원해 8개월의 공사 끝에 이 날 개관식을 갖고 3월 2일부터 어린이들을 맞이한다.굴렐레 지역에서 선발된 4~6세의 고아 및 극빈층 어린이 230명에게 급식과 잠자리 및 의약품 등을 제공하고 27명의 현지 교사 및 직원들이 상근해 도서실 급식실 취침실 등을 운영한다. OBS 관계자는 이번 시설은OBS경인TV가 개국할 당시 개국 프로그램을 진행한 김혜자 씨와 OBS 이사회 의장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함께 한 ‘나눔의 약속’을 실현한 것이다고 말했다.개관식에 직접 참석한 김혜자도 한국이 가난해서 원조를 받던 나라였으나 이제 이웃의 어려움을 돕는 나라가 된 것처럼, 에티오피아도 가난을
▶70세 할머니, 68년만에 눈물의 가족 상봉 ▶“날 버리고 재혼해 미웠는데” 뒤늦은 후회68년만에 주검이 된 어머니를 만난 애절한 사연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지난 11월 서울 혜화경찰서에는 김 모(44)씨가 “외할머니를 찾아달라”며 찾아왔다. 이젠 나이가 들어 70세가 된 어머니 김 모씨가 2살 때 헤어진 어머니를 잊지 못하고 줄곧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김씨의 어머니 최 모(90)씨는 68년 전 핏덩어리에 불과한 김씨를 버리고 재혼을 선택했다. 김씨는 자라면서 어머니가 자신을 떠난 사연을 알고 어머니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움보다는 미움과 원망이 커서 어머니를 찾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하지만 딸 김씨는 어머니 마음 깊은 곳의 그리움을 느끼고 혜화경찰서에 ‘헤어진 가족 찾기’를 신청했다. 경찰은 최씨를 찾다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딸 김씨가 외할머니를 찾아 달라며 찾아오기 불과 보름 전에 최씨가 돌아가셨던 것이다. 소식을 들은 김씨는 눈물을 흘리며 오열할 뿐이었다. ‘조금 더 일찍 어머니를 찾을 걸’하는 후회만 가득했다. 김씨는 “산소라도 찾아달라”고 경찰에 호소했다.경찰은 산소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다 최씨가 재혼해 낳은 아들
▶문인들이 기억하는 ‘아버지’…그리운 당신’ 출간 ‘사모곡’은 많지만 ‘사부곡’은 흔치 않다.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더 무겁고 힘들기 때문일까. 소설가 한강은 아버지 한승원을 두고 “오랫동안 아버지에 대한 글을 피해 도망다녔다”며 “ ‘귀밑머리 희어질 때쯤 쓰겠습니다’라는 말이 내가 정해둔 변명이었다”고 말했다. 문인들이 쓴 아버지 이야기, 문인을 아버지로 둔 이들이 쓴 이야기를 묶은 산문집 (서정시학)이 출간됐다. 황동규, 마종기, 조정래, 박범신, 정호승, 서하진, 공지영, 정지아, 김애란 등 작가들이 세대를 망라해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을 이야기한다.소설가 황순원의 아들인 시인 황동규는 거듭된 설득에 6개월 만에 청탁에 응했다. 황 시인이 숨겨둔 이야기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함께 같은 작가로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쓴 시인의 자의식이 느껴진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문학을 한다면 둘 사이에 체험 쟁탈전이 어떤 형태로든 생기게 마련”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소설 외에 잡문을 쓰지 않았던 아버지와 달리 다섯 권의 산문집을 펴낸 것, 그리고 문학 이외의 글은 읽지 않았던 아버지와 달리 역사
▶사형수의 대모 조성애 수녀 ◇30여년간 매일 사형수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느라 오른손 중지에 굳은살이 박혀 있는 조성애 수녀는 “이 편지가 외로운 사형수들에겐 지푸라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영하의 날씨로 옷소매를 여미게하는 16일 오전. 서울 산천동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에서 만난 조성애(77·쟌 마르코) 수녀는 “사형수들의 마음처럼 추운 날씨”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사형수의 대모’라고 불리는 조 수녀는 인터뷰 내내 ‘우리 애들’이라고 부르는 ‘사형수’들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조 수녀는 사형수들의 삶에 대해 알리고 싶어 최근 ‘마지막 사형수’(형설라이프)라는 책을 내놓고 가슴을 태우고 있다. 1997년 사형집행을 받은 청년 김용제의 참회글과 조 수녀의 편지를 담은 책. 자신을 일부 모델로 삼은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조차 부끄러워서 다 못 읽었다는 수녀는 사형 폐지 운동에 보탬이 된다는 주변의 설득에 못 이겨 책을 내고도 “용제야 미안하다”고 말했다.# 삶이란 외로운 이들의 지푸라기가 돼 주는 것한국은 지난 12년간 사형 집행이 없는 사실상의 사형 폐지 국가이지만 제도적으로는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형수는 60여명.
정혜영과 션 부부가 또 한번 선행 커플의 사랑을 과시했다. 정혜영은 9일 남편 션의 미니홈피를 통해 1억원을 홀트아동복지회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정혜영은 우리 닮아가나봐요라는 제목의 글에 남편을 처음 만날때만 해도 웃는걸 많이 어색해 하던 남자인데 지금은 주위에서 웃는 모습이 나하고 많이 닮았다고 해요. 사진을 보면 정말 우리가 닮아가고 있는것 같아요라고 전했다.이어 너무도 감사하게 하율이가 세상에 나온지 얼마 안되서 부부동반 CF를 찍었습니다. 롯데백화점 CF를 부부 동반으로 찍은지 3개월이 되가는데 남편이 이번 CF로 번 금액에 대해서 아무 말이 없어서 속으로는 신난다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중략)고 밝혔다.이후 정혜영은 자신의 자녀들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며 집에 들어와서 남편과 그 친구의 이야기를 하다가 살며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롯데백화점 CF 찍은 거에서 1억을 드리자고라며 기부 사실을 공개했다. 이어 제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면서 그러자고 하면서 홀트에 드려서 아이들을 위해 쓰자고 했습니다. 이제보니 남편은 3개월을 기다렸나 봅니다.자신이 매번 드리자고 하는거에 혹시라도 부담을 느낄까봐 기다
이제는 하늘나라로 간 故 장진영의 선행이 땅위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유족들은 3일 고인의 뜻을 기려 장학금 5000만원을 전주중앙여고에 기부한다. 故 장진영의 모교인 전주 중앙여고 한 관계자는 “3일 오후 1시에 고 장진영의 아버지가 학교에 와서 이용의 교장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예정이다. 뜻 깊은 자리인 만큼 전주중앙여고 학생들이 모두 강당에 모여서 함께 고인의 뜻을 기릴 것이다. 장학금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 쓰일 것이다”고 밝혔다. 故 장진영은 사망 직전에도 모교에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나눔’을 실천해 주위 사람들을 훈훈하게 한 바 있다. 고인은 병세가 악화되기 전인 지난 7월 중순 경, 힘든 투병 생활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게 직접 장학금을 모교인 전주중앙여고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지난 9월 3일 빈소가 마련된 서울 아산 병원 장례식장을 직접 찾은 전주중앙여고 교감 선생님이 직접 전달 받고 “고인이 남기고 떠난 소중한 선물을 가장 의미 있는 곳에 쓰겠노라”고 다짐했다. 고인은 생전 연예인 자선 봉사 단체인 ‘따사모(따뜻한 사람들의 모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 따듯한 모습으로 감동을 선하기
▶서울대에 20억 기부… 어머니 산소 꼭 돌봐주오▶기부한 외동딸 숨지자 학교측, 폭우 속에 제사중부 지방에 하루 동안 2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진 지난 9일, 서울대 발전기금사무처 김성윤(40) 모금총괄실장 등 서울대 직원 2명은 액센트 승용차를 몰고 오전 9시쯤 학교를 나섰다. 국도를 따라 2시간쯤 달려서 경기도 포천시 황동묘원에 들어선 김 실장 일행은 구두를 벗고 양복바지를 걷은 뒤 등산화를 신었다.40만㎡(12만평) 규모의 묘원은 적막했다. 쏟아져 내리는 흙탕물이 걱정스러워 둘러보러 나온 관리소 직원뿐이었다. 김 실장 등은 2007년 7월 9일 90세를 일기로 별세한 서기순 할머니의 묘소 앞에 전날 시장에서 장만한 사과와 배, 밤과 대추, 대구포를 차리고 절을 올렸다. 서 할머니 묘소 바로 옆에는 지난 1월 58세를 일기로 타계한 외동딸 백추현씨도 나란히 묻혀 있다.김 실장은 제사를 지낸 뒤 효성스러운 따님과 함께하시니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도 참 평화로워 보이십니다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서 할머니 묘비에는 어머니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김 실장이 폭우 속에서도 위험한 길을 달려 제사를 지내러 간 것은 20억원 상당의 재산을 서울대에 기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