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에 받은 공동연구실 저 구석 책상이다. 그래도 학교가서 앉을 자리 강의 준비 할 데가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까지 수강신청자 30명중 선생님 4분이다. 다음주 월요일까지 접수다. 학생이 있음에 다행히 선생 할 일이 있겠다. .우리나라 인구절벽 큰 문제 선생 자리도 위기다. 에티오피아 인구 1억 가깝다. 잘 못 먹는 사람이 더 많지만 먹을 게 넘쳐도 걱정이다. 자살율 1위 인구감소율 1위, 행복지수 하위 정상일까? 여기와 두달만에 내 얼굴과 체형이 많이 변했다. 곧 귀국하는 선배가 부디 아프지 말라 한다. .실은 기내 가방에 가져온 배추 두포기 호텔 룸테라스에 몰래 김치 담다 왼 팔목에 칼이 스쳐 두 세 바늘 기워야 함에도 급히 지압 지혈, 한손으로 김치담그고 또 빨래 주물리고 짰다가 결국 간호 선배단원에게 신세졌다. 세탁기 없이 손 빨래도 이제 잘 한다. 옛날 후보생때 다리다쳐 목발짚고 호남고속도로 장성고개 옆 저수지 얼음깨고 빨래 하던 청년시절 문득 생각난다. .오늘은 행복하다.비록 살 집은 못 찾았지만 내 책상이 생겼고 내 학생들이 있고 할 일이 있음이다. 좋고 나쁨보다 친절히 맞아주고 반가워 해 준다. 아직 화장실 키는 못 받았다. 그래도 옆에서 문
.악숨대학교 첫 출근다음주부터 개강 화 목 오후 4-6시까지 기초한국어 수업 공고 나갔다. 30명 한 반 접수 인원 수에 따라 반을 늘리기로 했다. 코워크는 영어학과장 내가 배울 지역언어 티그리어 선생님이다. 아베베 기데이 학장이 내 티그리어 이름 Gebra Meskel 지어 주었다. 암하라어 이름은 이찌구였다.연구실은 현지인 공동사용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학위를 묻고 동급 교수중 친절하고 호감가는 분들 방을 선택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다. .Block 72 113호실 책상 넣고 내일 사무실키, 책상키, 화장실 키 3개 줄 것을 요구하고 다시 연구실에 가니 문이 잠겼다. 다행히 느리지만 인터넷 유선은 주었다 . 익숙지 않은 생소한 일, 화장실 찾기가 힘들다. 같은방 교수가 열쇠를 들고 옆옆 건물 1층에서 열어주고 기다렸다 잠근다. 여기는 교실동과 연구실동 모두 화장실이 안 보인다. 먼저 교실만 만들고 계단은 철계단으로 옥외에 설치되어 있다. .당연히 화장실이 설계에 빠진 듯 ㅋㅋㅋ그래도 넓은 캠퍼스 숲가에 무단방뇨는 유심히 봐도 잘 안보인다.또 지난번 만난 행정담당코디가 자기 이름을 묻는다. 말해 주니 좋단다. 적어 놓아 다행이었다. .첫 출근 하루가
선생님을 둘러싸고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이야기에 잠긴 제자들의 얼굴을 한 사람 한 사람 바라보며 “아무쪼록 엽서 한 장이라도 좋으니 때때로 소식을 부탁하네. 항상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그럼 헤어지세, 건강하게들 지네게.”라고 말씀하시면서 학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는 말등에 올라타셨다. (선생님은) “Boys, be ambitious like this old man”이라고 외치시면서 채찍으로 말의 배를 후려치고는 눈으로 질퍽해진 진흙을 박차고 숲 사이로 사라져 가셨다. (*클라크의 제자이며 언어학자인 오오시마 마사타케의 저서 클라크 선생과 그의 제자들(クラーク先生とその弟子たち)중에서) ‘Boys, be ambitious!’는 영어수업 시간에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유명한 구절이다. 삿포로농학교(현재의 홋카이도 대학)에서 최초의 외국인 교감을 지낸 미국인 윌리엄 클라크가 1877년 4월 16일 삿포로 남쪽 시마마츠역에서 학생들과 작별하면서 남긴 명언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클라크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는지는 논란이 있었고 했더라도 ‘ambitious’의 정확한 뉘앙스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설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오시마 마사타케가 저서에 남김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현지교육수료후 바로 비행기로 악숨으로 왔다.새벽부터 캐리어 두개에 냉동실식품 챙겨 70키로 싸고나니 배추 두 포기가 빠져 기내가방에 넣어 왔다.코이카 에티오피아사무소장님 주관 수료식엔 각 기관장과 악숨대 아베베학장님도 오시고우리들의 퍼포먼스 티그리춤과 노래와 각자 현지어로 자기 소개를 했다.. .현지어학원 선생님들도 초청해 축하해 주었다.문화체육관광부 파견 국기원 태권도 김도진사범 겸 대경대교수님도 축하겸 안전교육후 집에서 육개장등 푸짐한 한식도 대접 받았다.. .악숨에 저녁때 도착하니 일년중 가장 큰 축제로 모든 호텔과 내가 가기로 약속한 사라게스트하우스도 방이 없단다. 길거리엔 온통 축제 참가현지인들로 북적북적이었다. 코이카 신보람선배집에 하루 신세를 졌다. 모두 너무 고마운 분들이다. .악숨에서 시작된 첫날은 침낭에서 포근하고 편안한 밤이었다.가져온 냉장고 식품도 잠시 보관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 . . . .
.에티오피아 티그리인들의 춤추고 즐겁게 사는 그림이란다.무척 흥이 많은 어깨 춤의 민족들이다. 이 나라는 개 팔자가 상 팔자다. 그냥 길 거리 개 들이다.태어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자와 당나귀 팔자란다. 평생 일만 한단다. 그러나 부자 여자들은 그렇지 않다.이 나라 부자들은 선잔국 수준으로 산다. 민초들은 딴 세상이고 당나귀와 염소가 더 안 스럽다.암하라어 선생님과 학원 꽃 키우는 분이다. 54세란다. 깜짝 놀랐다. 고생한 흔적들이다. 대한민국대사관도 구경을 했다. 재외국민이다. 30년전의 전우들 모습이다. 단체방 개설 되니 더 보고 싶어 진다.. .내 모습도 새롭다. 이제 3일후 3개월의 국내와 현지 합숙교육이 끝난다.나이들어 낯선이들과 한방에 산다는게 쉽지 않다. 살아 온 모습들이 금방 다 들어난다.어떻게 좋은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숙제다.다들 살빠진 모습이 안스럽고 내 모습도 청년때 처럼 날씬해 졌다. .몇개월 먹을 악숨에는 없는 쌀과 부식 돼지고기 등이 비행기를 기다린다. 나도 빨리 가고 싶다.작은 시골이지만 내가 2년 살 곳이다. 625전쟁때 지구 반바퀴 돌아 UN군으로 풍전등화 우리나라를 도와 준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어른들이 생각난다.. . . .
.8년 전 연평도를 기억한다. 평화롭던 섬이 북한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던 날. 내 나이 또래의 젊은 군인 둘이 전사했고, 민간인 둘이 살해당했다. 섬 위로 흩어지던 뿌연 포연처럼 섬 주민들의 삶도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휴전협정 이후 북한이 우리 영토를 직접 공격하여 민간인이 사망한 최초의 사건. 나는 군에 있었고, 전쟁을 준비했다. 8년 전 정치인들을 기억한다. 주적 북한의 만행에 분노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의 행동을 비호하던 그 사람들을 기억한다. 보수정권이 북한을 지나치게 자극한 탓이라며, 그래서 지금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이냐며, 정당한 분노를 짓누르며 다그치던 입들을 기억한다. 지옥이 된 연평도 위로 울려퍼지는 통곡을 애써 외면하던 그 눈길들을 기억한다. 뉴스에서 정치인들의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나올 동안, 영결식에 참석해 전우의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우리 군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8년 후 그 밤을 기억한다. 연평도 포격 도발의 배후로 알려진 북한 김영철이 한국 땅을 밟겠다고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참가하기 위해서. 그게 평화란다. 천안함도, 연평도도, 목함지뢰도, 아무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평화를 위해 올림
.내가 있는 악숨대학교가 위치한 티그리주 한국문화의 날 행사에 내가 준비한 한복을 서로 입고 체험하느라 인기가 아주 좋았단다. 기증해 주신 대구서문시장 한복디자이너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중 가장 이쁜 여자 저고리가 없어졌다 길래 어차피 그들에게 줄 선물이었다고 했다. 한복 입은 흑인 선남선녀 멋지다. 한국홍보에 멋진 날이었다.. . .
.현지교육 막바지에 1박2일 남부지역 국립공원과 휴양지, 넓디넓은 땅, 많은 호수지역, 선진 대단지 화훼농장 비록 외국인 회사라도 고용효과는 클 것같다. 차가 십여분 대단지 비닐하우스를 통과했다. 메마른 대지위에 원형 초가집 아이들이 관광차를 보고 달려와 손을 벌리고 돌을 깨어 갈아 장난감 차를 만들어 사라고한다. 몸이 불편한 두 목발 아이에게 조금 건넨다. 여기가 아프리카이다.호수가 부레잠풀을 먹으러 소들이 헤엄치고 광활한 농지가 있어도 수리시설이 안 보인다.당연히 상수도시설은 없다. 물동이로 물긷는 아이들이 안 스럽다.. . . .
이 글은 KOICA(한국국제봉사단) 단원으로 에티오피아 악숨대학교에서 봉사하는 도준갑 교수의 업무일지입니다. 6.25의 은인 국가 에티오피아의 열악한 환경에서 현지에 적응하며 국제봉사에 열정을 기울이는 모습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도준갑 교수는 과거 한국 장례업계에 종사하다가 중국 사천성 청두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봉사한 경력이 있습니다...2년 간 봉사할 '악숨(Axum)'지역은 에티오피아의 북부 국경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고대 도시 유적지입니다. 거대한 오벨리스크와 성채를 비롯한 악숨 왕국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198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유서깊은 곳입니다. 앞으로 악숨지역을 중심으로 현지의 유적과 주민과 문화를 심도있게 관찰하며 인류의 또 다른 모습을 함께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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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준갑의 해외봉사 일지 - 13/ 11월 17일 며칠동안 여러 집을 혼자 문 두드리고 다녀 몸살이 나도록 다녔는데 창고 같은방에 6개월치 선금요구 해온다. 돈받아 공사할 심산이다. 몸살나서 누웠는데 중개인이 연락왔다. 다 무산되어 새로 두 군데 보잔다.. .마지막집 3층에 침실 거실 1층에 단독주방, 세탁기도 코인용 공용, 눈높이를 낮추어 결정했다. 무엇보다 안정이다. 11월 30일 수도에서 돌아오는 날 부터 자기로 했다. 다행이 욕조와 테라스도 있다. 미국인이 살던 방이란다. 내가 아프리카 낯선 땅에 와서 신고를 톡톡히 한다.입맛없어 점심 저녁도 건넜는데 밤에 일어나 빨래하는 신세가 됐다.. .가져온 짐이 악숨 선배 집과 수도 유숙소 그리고 호텔로 삼분되어 낭패가 생겼으니 할 수 없다. 낮에 현지인이 주었던 과자가 화근이었다. 한국처럼 위생적이고 물 좋은 데가 없다. 옛 전우인 경남대 교수친구가 캄보디아 봉사가면서 아프리카로 옷을 보내준다 한다. 너무 고맙다.. .이 사람들 신발은 낡은 스렛빠다. 한국에서는 안 쓰는 것도 나누면 얼마나 고마워 할까 싶다. 새벽에 소 잡아 길거리에서 판다. 악숨은 냉동고기 파는데가 없다. 돼지고기는 종교관례로 못먹고 생염소와
도준갑의 해외봉사 일지 - 12/ 11월 16일 OJT 7일차 어제는 이 골목 저 골목 문 두드리고 중개인 사무소 2번 약 4시간 장대비 오는데 걸었더니 몸살인듯 온 몸이 아프다. 중개인과 12월에 와서 계약하도록 추진을 부탁하고 서늘한 호텔 방안에 쉬면서 정리를 한다. 어제 본 페트병 재 활용 화단 가리개다.. .공산품이 생산되지 않는 나라. 전량 수입이다.우리나라는 공산품 천지 아까운 줄 모른다. 중개인도 안 입는 자켓을 달라 하고 어린아이가 먹을 것을 달라한다. 내가 살고 싶은 3층 옥상계단 새 가족이다. 창문이 달리지 않아 비 피해 들어 와 알을 품고 있다.. .아침에 그 집 둘러보며 뒷골목 가다 풀숲에 자던 개가 놀라 하얀이를 들어내고 달라든다.급하니 신발로 주둥이를 차려니 물러서다 다행히 막대기를 주워 쫓고 물리지 않았다.고산병 증상인지 더 피곤하다. 내일 현지 OJT 마치고 비행기로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간다.그리고 11월 30일 돌아와서 2년간 살 곳이 여기다 .. .먹는 것이 시원찮아 입맛을 잃어 제일 좋은 호텔가서 참으로 오랫만에 먹는궁물 수프와 스테이크로 영양 보충했는데도 컨디션이 안 좋다.ㅋㅋ. . . .
도준갑의 해외봉사 일지 - 11/ 11월 15일 OJT6일차 새벽부터 살 집 찾아보려 가다가 에티오피아 정교회 기도행사와 악숨시내 대다수가 신도들이라 골목 골목 붐빈 사람들을 만났다. 아이 어른들 할 것 없이 이방인에게 관심이 많다. 정교회당을 지나 두어시간 혼자 둘러보다 중개인과 같이 문 두드린 집이 좀 마음에 든다.. .3층을 쓰고 싶다. 내부도 둘러보니 괜찮아 보인다만 집 전체를 한목에 놓는단다. 주인은 수도에 산단다. 좀 비싸다. 또 6개월치 선불을 요구한다. 그 돈으로 모든 가구를 구입해야 한단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얼굴도 빠지고 들어간 배도 고파 뜹스(고기요리)를 시켜 오른손으로 인제라에 싸 먹는다.. .오른 맨손으로만 먹는 방식이 많이 익숙해 진다 싶다. 맛도 느끼고 말이다. 현지적응이 시작 되는가 보다.. . . . . . ...
도준갑의 해외봉사 일지 - 10/ 11월 15일 OJT5일차 선배님 초대로 수도에서 비행기 타고 온 재료로 만든 저녁 한식 집밥, 때마침 정전되었지만 아프리카 온 후처음으로 맛있는 잡채 오뎅무침 북어국 시금치무침 미역무침등과 밥 후식으로 수정과 과일냉채 너무 맛있다.하루 종일 집 둘러 보느라 무거운 몸이 마음껏 먹을 수 있어 너무 행복하고 고마웠다.. 어제 본 집은 너무 멀고 주변환경이 안 좋아 학교입구 삼거리 부근을 혼자 대문 두드리며 원룸과 새로 지은집을 오전내내 찾았으나 허사였다.. .오후에 내 트렁크 두 개를 선배집에 맡기고 중개인이 소개한 집을 보니 2층에 내부 마감도 안 된 집을 월 10000비르(40만원) 그것도 6개월치 선불요구 계약후 한달반만에 완성 요구비품 넣어 주겠다고 했으나 방값 지원금을 초과하고 너무 비싸고 또 믿을 수 없고 짐마지역에서 선배가 선불주고 미이행 애를 먹은 사례가 있었다기에 포기했다.. .관광지라 외국인에게 비싸게 부르고 인근지역 공장 한국회사원이 코이카요원 살던집을 성큼 배로 올려 준 바람에 우리가 더 곤혹스럽게 되었단다. 내일 또 찾자 ㅋㅋ.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