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4주기를 앞두고 추모공원 위치를 놓고 안산시민들이 반목하고 있다. 정치권도 찬반으로 갈려 지방선거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갈등이 표면화한 것은 제종길 안산시장이 지난 2월 20일 국회에서 “화랑유원지에 봉안시설을 갖춘 추모공원을 2020년까지 조성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희생된 학생들이 자라고 뛰어 놀던 곳에 추모시설을 품어야 한다”는 유가족과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용한 결정이었다. 위성태 ‘416안산시민연대’ 사무국장은 “독일 베를린 시내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처럼 세월호 추모공원도 단원고가 바라다보이는 상징적인 곳에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치에 학살된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인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는 관을 연상시키는 2,711개의 콘크리트 비가 세워져 있다. 안산시는 61만8,000여㎡에 달하는 화랑유원지 내 2만3,000여㎡에 추모공원을 넣되, 그중 지하 660여㎡에 봉안시설을 둔다는 구상인 것으로 전해졌다. 위 국장은 “화랑유원지 전체 면적의 0.1%에 불과한 봉안시설을 두고 납골당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유언비어에 가깝다”고 안타까워했다. 시민연대는 전날(10일) 화랑유원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합동
서울 중랑구 망우산에 있는 망우리묘지공원은 격동의 근현대사 주역들이 잠들어 있는 현대사의 보고다. 한때 4만7000여 기의 묘소가 있었으나 지금은 7500여 기만 남아 있다. 망우리묘지공원은 1990년대 이후 숲을 가꾸고 산책로를 만드는 공원화 사업을 벌여 시민들이 휴식과 사색을 즐기는 곳이 되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소설가·시인·화가 등 우리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온 분들이 잠들어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만해 한용운, 위창 오세창 등 독립운동가를 비롯,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호암 문일평 등 50여 명의 애국지사 및 문화예술인들의 묘소를 만날 수 있다. 송촌 지석영, 죽산 조봉암, 가수 차중락도 이곳에 영면하고 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2012년 망우리묘지공원을 '꼭 지키고 싶은 문화유산'으로 선정해 보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독립지사 8명의 묘소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망우역사문화관'(가칭)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망우리공원의 소중한 유산이 사라지고 있다. 몇 년 전 작곡가 채동선(1901 ~1953)과 화신백화점 등을 설계한
"하늘을 사랑한 당신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F-15K 전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조종사 고(故) 최필영(29) 소령과 고(故) 박기훈(27) 대위 영결식이 7일 대구 공군 제11전투비행단에서 부대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는 유가족과 이왕근 공군참모총장, 박하식 제11전투비행단장 등 공군 장병 500여 명이 참석했다. 박하식 단장은 "조국의 하늘을 지키던 두 조종사의 산화 소식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면서"이들의 조국에 대한 희생이 절대 헛되지 않도록 조국 영공 수호의 숭고한 소명을 반드시 완수해 나가겠다"고 추도했다.. .최 소령과 공사 59기 동기인 김성석 동기회장은 추도사에서 "너의 몸을 던져 우리 조국과 하늘을 지켜줬으니 또 다른 동기인 너의 아내와 네 분신과 같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우리가 반드시 지키겠다"고 했다. 영결식이 끝난 오전 10시. 웅비관에서 부대 정문까지 차로 10여 분 거리의 도로에는 공군 장병들이 거수를 한 채 늘어섰다. 영결식에서 어린 두 딸과 현재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인 아내를 둔 최 소령과 미혼인 박 대위의 유족들이 오열하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최 소령과 박 대위는 지난 5일 오후 F-15K 전투기 훈
. 7일 오전 대구 제11전투비행단에서 F-15K 전투기 추락사고로 숨진 조종사들의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을 마치고 동료들이 운구행렬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루게릭병을 극복하고 세계적 물리학자 반열에 오른 스티븐 호킹 박사가 타계했다고 AFP,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14일 보도했다. 호킹 박사의 자녀들은 성명을 통해 부친의 별세 사실을 알리고 "그는 위대한 과학자이자 비범한 인물이었다"며 "그의 업적과 유산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1942년생인 호킹은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블랙홀과 관련한 우주론과 양자 중력 연구에 기여했으며,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로 불린다. 그는 '우주의 완전한 이해'를 목표로 삼아 대우주에 대한 상대성 이론과 소우주에 관한 양자이론을 통합하는 데 몰두했다. 1959년 17살의 나이로 옥스퍼드대에 입학한 그는 21살에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 이른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의사들은 그가 불과 몇 년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호킹은 휠체어에 의지한 채 컴퓨터 음성 재생 장치 등의 도움을 받아 연구활동을 이어왔다. 1965년 케임브리지대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뛰어난 연구성과로 연구원과 교수 등을 거쳐 1979년부터 2009년까지 케임브리지대 수학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1988년 발간한 대중 과학서 '
. 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의 '거목'이었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례식이 2일(현지시간) 고인의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애도의 물결 속에 엄수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부부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부부, 로이 쿠퍼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 각 종단 지도자 등을 포함해 그레이엄 목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운집한 각계 인사 2천여 명은 고인이 생전 남긴 족적을 회고하며 영면을 기원했다. CNN 방송 등 미언론들은 고인의 복음주의 전도활동이 '십자군운동'으로 명명됐던 것에 비교하여 이날 장례식을 "빌리 그레이엄의 마지막 십자군운동"이라고 했다.다만 가급적 정치색을 배제한 순수한 추도행사로 진행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별도의 추도사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전인 2014년 95년 생일 축하연 때 그레이엄 목사를 만난 인연이 있다. . 장례식은 샬럿의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 밖에 설치된 2만8천 평방피트(약 2천601㎡) 크기의 흰색 천막에서 진행됐다. 맑은 날씨였지만 장례식 내내 강풍이 천막을 휘감았다.이 천막은 그레이엄 목사가 목회자로서 대중적 명성을 얻는 기폭제가 된 1949년 LA 십자군운동 당시 복음 전도의 무대가 됐던 천막에서 영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원혼이 뒤늦게나마 모국의 품으로 돌아온다. 상당수의 일제 강제징용자들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노역과 침략전쟁에 동원돼 갖은 고통 속에 처참하게 희생되고도 유해마저 일본 및 태평양 군도 등에 산재, 방치돼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이사장 이지윤)은 2일 서울시립 용미리 제2묘지공원에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33위를 안치할 봉안시설을 지원한다고 1일 밝혔다. 서울시의 이번 유해안치 및 봉안시설지원은 ‘일제 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의 요청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올해 제99주년 3.1절을 맞이해 추가로 귀향하게 됐다. 시는 지난해 8월 ‘일제강제징용 희생자 유해봉환’ 행사에서 강제징용 희생자 유해 33위를 안치한 바 있으며 이번이 두 번째 안치 지원이다...일제 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위원회는 ‘내가 죽으면 고국에 묻어 달라’는 희생자들의 유언에 따라 고국인 대한민국으로 유해 봉환을 추진, 서울시에 임시 안치지원을 요청했다. 서울시는 일제 강제징용 희생자 유골 33위의 안장식을 2일 오후 2시부터 용미리 제2묘지공원에서 종교의식을 겸한 안치의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1일 오전 11시 광화문광장에서는 일제강제징용 희
그리운 당신에게 ! 당신이 천국에 간지 이제 두 달이 지난 것 같네요.저와 만나서 30년을 지내면서 아들, 딸까지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족을 위해서 수고한 것은 모두 당신의 희생 덕분이었소. 이제 좀 살만하니까 당신은 하늘나라로 먼 소풍을 가버렸네요. 당신이 떠나고 난 후 우리 가정은 큰 슬픔에 빠졌지요. 작년 추석까지 고향에 가서 어머님과 같이 부엌에서 일하던 모습이 이번 2018 설날에는 당신없이 부엌에서 일하는 어머님의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그 자리를 당신의 딸이 대신했어요. 이번 설날 가정 예배는 눈물로 드린 예배였어요. 하지만 당신은 천국에서 당신이 보고 싶어했던 당신의 부모님과 형제들을 만나서 그곳에서 기도의 향을 피우고 있겠지요. 당신이 떠나고 난 후, 아들, 딸은 나보다 이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들은 부모없이 혼자서 잠자는 법을 이미 배운 것 같지만 난 그렇지 못하네요. 하나님이 자식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신 것 같네요. 그들이 이런 상황에서 큰 슬픔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시름에 빠져 있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나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으면 큰 좌절 속에서 인생을 허비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교회
.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 사고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합동 위령제가 "의전법인 현진시닝(대표 이호성)"의 주관으로 3일 엄수됐다. 밀양시는 이날 오전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밀양문화체육관에서 화재 참사 희생자 40명에 대한 합동 위령제를 개최했다. 체육관 1·2층을 가득 채운 유가족, 시민 1천여 명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추도사에서 "불귀의 객이 되신 분들은 밀양시민이자 아버님, 어머님, 형제, 자매, 이웃이었다."며 "어려운 시절을 보내며 밀양과 대한민국을 지키고 발전시킨 분들을 지켜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다. 박 시장은 "희생자 영령을 제대로 추모하는 길은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며 "사람이 우선하는 밀양을 꼭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경호 경남지사 권한대행은 "도정 책임자로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해 죄책감을 느낀다"며 "이 땅 위에 다시는 이런 황망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고인들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안전한 경남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 . 유가족 대표로 나선 김성환 씨는 "좀 더 따뜻하게, 좀 더 곁에 오래 머물면서 해 드리고 싶은 것이 더 많았는데 그러지 못해 후회스럽
20일 송해의 아내 석옥이 씨가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올해 92세인 송해는 최근 독감으로 입원했다가 퇴원 직후 아내의 비보를 접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송해는 故 석옥이 씨와 지난 2015년 63년 만에 정식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을 선보여, 뭉클한 감동을 자아냈다. 부부는 1987년 스물두살이던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지만,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각별한 부부애를 과시한 바 있다..국민MC 송해씨는 한국전쟁 도중에 만난 부인 석옥이 여사와 결혼식도 못한 채 63년여를 살다가 2015년 KBS 2TV '나를 돌아봐'를 계기로 지각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송 씨는“혈혈단신으로 고향을 떠나온 나에게 아내는 삶의 의지였다. 아내는 그동안 연예계 일로 바쁜 나를 대신해 서운하고 아픈 일을 많이 겪고 참아야 했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라는 편지를 읽어 주위를 감동케 했다. 송해씨와 66년을 함께 했던 석 여사는지난 20일 폐렴으로 별세했다.사진=KBS 캡처 송해의 부인상 소식이 전해지자 이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는 송해가 올랐으며, 이에 일부 네티즌들은 "송해가 검색어에 오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송해 선생님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사와 학생 등 3명의 장례절차가 안산에서 진행됐다. 지난 18일 오전 9시 30분 전남 목포신항에서는 단원고 양승진 교사와 박영인·남현철 군 등 3명과 일반인 미수습자인 권재근·혁규 부자의 합동추모식이 엄수됐다. 이들의 입관식은 유해를 찾지 못해 미수습자들이 생전에 사용했거나 수색 과정에서 찾은 유품 등으로 치러졌다. 이후 양승진 교사와 박영인·남현철 군 등 3명의 유품은 같은 날 오후 3시 30분께 안산시 안산제일장례식장으로 옮겨져 장례절차를 시작했다. 참사가 발생한 지 1천313일 만이다. 이들의 빈소는 각각 장례식장 지상 1·2·3층 특실에 차려졌으며, 합동빈소는 1층 일반실에 별도로 마련됐다. 문 대통령은 안산제일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 아픔을 함께 했다. 이밖에도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보낸 조화도 눈에 띄었다. 이번 장례식에는 이낙연 국무총리와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제종길 안산시장, 전해철·김철민 국회의원, 박일도 한국장례협회장 등 각계 인사들이 직접 빈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또 안산시민들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찾
.대한민국 최대 독립유공자 집단묘역인 대구 동구 신암선열공원이 국립묘지로 승격됐다. 신암선열공원은 대구 동구 신암동 산27-1번지 일대 3만6800㎡의 규모로 독립유공자 52분(건국훈장 독립장 1명, 애국장 11명, 애족장 34명, 대통령표창 2명, 서훈 미취득 4명)이 안장되어있는 대한민국 최대 독립유공자 집단묘역이다. 이 묘역은 1955년 대구 남구 대명동 일대에 산재해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성역화를 위한 공원화 사업을 추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올해 노후화된 시설물을 적시성 있게 재정비하여 시민들의 불편사항을 해결하고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역사의식 고취와 애국선열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16억원(특별교부세 15억원, 시비 1억원)의 예산을 반영하여 묘역잔디 전면교체 및 잔디식재지 생육환경 개선, 휴게시설 및 보행로 정비, 화장실·관리사무실 리모델링 등을 추진중이며, 내년 2월경 준공할 예정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대한민국 최대 독립유공자 집단묘역인 신암선열공원의 국립묘지 승격을 위한 개정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호국보훈의 도시에 걸맞는 위상이 제고되었다”며, “향후 국가보훈처와의 이관절차에도 최선을
어느 연예인은 고 이주일씨를 표현하기를 “그를 모르는 세대, 진짜 웃음 모르는 것” 이라고 했다. 그런데 최근 15년전에 사망한 그의 묘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자세한 내막은 곧 알려 지겠지만 그가 남긴 큰 유산을 둘러싼 가족들의 사연이 아닌지 웃을 수 없는소식을 'TV조선'을 통해 알아본다. ‘코미디 황제’로 불린 개그맨 고 이주일(1940~2002년)의 유골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비석은 버려진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TV조선 ‘세7븐’은 ‘故 이주일, 사라지다’라는 제목의 방송을 통해 2002년 8월 27일 폐암으로 별세한 이주일의 춘천 묘원 묘가 사라진 모습을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이주일의 비석은 판매용 전시 공간에 버려져 있었다. 묘원 관리인은 “치워버리려다가 유명한 분이고 공인이라 처분할 수 없으니까 여기 모셔둔 것”이라고 답했다. 이주일의 여동생은 “어느날 묘원에서 관리비가 체납됐다는 연락이 왔다. 연고지 없는 묘로 취급해 묘를 옮겨버렸다고 하더라. 그럴리가 없는데”라며 “오빠와 어머니 묘를 파서 옮기고,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에 묘를 썼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5년 이상 관리비가 체납돼야
지난 11일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에서 근무하던 장례지도사 한사람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이미 보도된바 있는데 그 당사자가 김영태 장례지도사로 알려졌다. 시신은 14일(월) 오전 "대구드림병원(053-475-4444)"으로 이송돼 부검을 기친후 해당 장례식장에 안치될 예정인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기자가 전화로 확인해 본 결과 정확한 것은 당일 14일이 되어야 알 수 있겠다고 말하고 있다. 본지는 평소에 업계에서 만나고 교류하던 장례인재 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한 사실에 삼가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과거 관련 기사로 그의 명복을 빈다. “유족들 충격 딛고 일상생활 돌아오게 돕고 싶어요" (서울신문 2014년 5월 8일)국가적 재난 희생자 분향소 17년간 기획·설치·운영 김영태 씨 “하루에 조문객 4만명을 맞느라 발이 퉁퉁 붓고 피투성이가 되지만 유가족들의 고통에 비할 바 아닙니다.”1997년 대한항공 괌 추락 사고를 시작으로 2010년 천안함 침몰, 지난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까지 대형 재난 이후 설치된 합동분향소에는 늘 장례전문가 김영태(47)씨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도 예외는 아니다. 안산시와 계약을 맺은 한 상조회사 소속으로 안산 화랑유원지 합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6일, 11시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해 계신 6·25참전용사 故 이등상사 서정열님의 묘지를 참배하고, 생전에 전사자 유해발굴에 기여했던 것에 대한 감사패와 국유단과 함께 활동했던 영상을 CD로 제작하여 헌정할 계획이다. □ 故 서정열 참전용사는 6·25전쟁 당시 함께 싸운 전우들의 유해를 찾아 전국의 산을 홀로 돌아다니다가 2014년 10월 국유단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발굴팀장 류수은 중사는 3년 전 강원도 양구 백석산에서 유해발굴작전 일과 종료 후 숙소로 복귀하던 중 한 어르신이 버스가 끊긴 시간에 홀로 정류장에 계신 것을 보고 안내를 해 드리기 위해 차를 세웠다고 했다. 6·25전쟁 때 양구 백석산에서 전투를 했고 이 지역에서 부하를 많이 잃었다는 어르신의 사연을 들은 류 중사는 참전용사의 전우 분들을 찾는데 도움을 드리겠다며 약속을 했다. 이후 국유단과 함께 강원도, 경상도의 산을 오르며 참전 당시의 전투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었다. 그의 기억과 증언은 유해발굴에 큰 도움이 됐고, 실제 기억해 낸 강원도 양구 백석산 전투 현장에서 유해가 발굴되는 놀라운 결과도 있었다. 국유단이 도움을 드리겠다고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