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공직 쏠림 현상? 죽어서도 차별받기 때문. 사병 묘역에 안장된 장군은 누가 있나 봤더니 -조선이나 지금이나 사병을, 국민을 노예로 여겨. 예비역들을 통해서 이런 이슈는 확산되야 한다 –최저임금 못주는 징병 군인들에겐 위안부를 데려간 일본이나, 자신들을 끌고 온 국가는 같은 꼴 한국사회가 과도하게 공직에 쏠리는 이유가 있다. 죽어서도 차별받기 때문이다. 이번 백선엽 장군 건으로 사병 묘역에 안장된 장군이 누가 있나 찾아봤더니 채명신 장군 외에는 그런 사례가 없다. 이런 사회풍토에서 그런 결정을 한 고인의 뜻을 정말 높게 평가한다. 우리는 장군묘와 병사묘 구분을 하는데, 그런 구분은 한국에만 있다. 세계 어디에서도 죽음을 가지고 차별하는 나라는 없다, 그것도 군인을. 국가가 앞장서서 죽음을 차별하고 죽음 이후까지도 계급을 부여하니 군인들이 정치에 목을 멜 수 밖에 없다. 조선조에서 족보로 줄을 세우는 풍경을 보는 듯하다. 장군이나 고위공직자를 한 사람이 조상 중에 있으면 그 사람은 두고두고 족보에 올라가 존경을 받고 대대로 그 누구의 몇 대 손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한다. 나 보수요, 나 장군이요 하는 이들 중에서 부끄럽다며 군복 벗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운영하는 국내 최초 자살 유족 전문 유튜브 채널 얘.기.함. (얘기해요, 기억해요, 함께해요.) 이 개설되었습니다. 이 채널에서 자살 유족에게 필요한 전문정보를 전달하고, 서비스 안내와 유족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신간 서적이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세계』란 책입니다. 세계 1위의 미래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제이슨 솅커가 쓰고 박성현 번역으로 미디어숲에서 출간한 책입니다. 코로나19, 중국폐렴으로 온 세계가 몸살에 몸살을 앓고 있는 때에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 것이며 그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여야 할 것인가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있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처럼 별반 자원이 없는 처지에 코로나 같은 강풍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겨레의 사활을 좌우하는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관민상하가 연대하여 지혜롭게 대처하여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슬기로움을 발휘하여야 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가져오는 부정적인 폐해에 대하여는 새삼스레 논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번 사태가 가져오는 긍정적인 면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이번 사태로 인류가 많이 겸손하여지고 있습니다. 큰 나라도 작은 나라도 힘센 나라도 힘없는 나라도 자신들의 한계를 느끼고 많이 겸손해졌습니다. 두 번째는 모두가 가정적이 되고 가족의 소중함을 피부로 느끼게 된 점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술자리도 줄어들고 모임들도 취소되면서
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로 가기 위한 ‘가족 대신 장례’ 그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동안은 혈연관계와 법적 관계가 서류로 제시되지 않으면 삶의 동반자였던 사람이 장례를 치를 방법이 없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도, 심지어는 유언장으로 살아생전 공증을 받아 두었던 친구마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 무연고 공영장례에 참여한 사실혼 관계의 남편은 “내 아내는 무연고사망자가 아닙니다.”라며 울분을 토하고, 또 다른 분은 “처벌을 받아도 좋으니 내가 할 수 있게 해 달라” 며 간청하기도 했다. 2015년 이후 서울시 무연고 장례를 지원해 온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이러한 장례 제도의 문제점과 실태, 그리고 제대로 애도할 수 없었던 당사자의 목소리와 사례를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왔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화우공익재단과 함께 가족 대신 장례의 법적·제도적 개선을 위해 ‘사후자기결정권 국제심포지엄’ 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들이 모여 11월에는 보건복지부가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동거인과 친구 등이 치를 수 있도록 장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후속 조치의 하나로 보건복지부는 ‘2020년 장사 업무 안내
-경제활동 인구 50%만 가입. 한 푼 아쉬운 특수고용, 자영업자들에게도 보험료 내게 할 것인가 -개인사업자, 자영업자는 실업 수당을 위해 조금만 어려워지면 폐업 또는 계약해지할 공산 커져 -근로자가 고용 유사한 보호를 받는다면 기업은 고용보다 개인사업자와의 계약관계로 유도할 것 위기를 겪으면서 사회보장과 복지의 확대요구가 커지고, 아니나 다를까 여권이 군불을 피워대고 있다. 공유경제 등 특수 고용이 높으니 그들의 보호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약자 보호를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모든 규제는 이처럼 표면적으로 그럴싸한 선의로 시작한다. 우선 미국의 캘리포니아가 우버 등의 특수고용(계약관계의 개인 사업자)을 근로자로 보고 그에 준하는 보호와 수당 등을 제공하라는 규제를 가했다. 결과는 그런 고용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계약(고용)의 비용을 높이면 고용의 수요가 줄어든다는 너무 상식적인 경제학적 진리를 무시하는 정책들이 종종 가져오는 문제점이고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이 여실히 재증명한 사실이다. 온국민 고용보험을 제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나라의 경제활동 인구의 50%만이 현재의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다. 나머지 50%를 보험제도의 보호 하에 두겠다는
서울역에서 도로를 건너면 높은 건물들 사이 여인숙과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동자동쪽방촌은 주민들 스스로가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를 조직하여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과 반찬 나눔, 의료서비스 등의 지원을 모색하며 이웃들끼리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나눔과나눔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주민들 중 무연고자가 되어 돌아가시는 분이 있을 때 함께 장례를 치러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3월 중순 SNS에서 동자동사랑방의 유○○ 이사장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장례 등을 통해 뵈었던 이사장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사망소식은 황망하기만 했습니다. 연고자로 형제들이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하는 상황이라 장례가 언제 확정될지 알 수 없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랑방 활동가들은 형제분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난 4월 초 유 이사장의 장례일정이 확정되었고, 화장일에 앞서 동자동에서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모식에 조문을 왔고, 각자의 추억들을 가지고 유 이사장을 애도했습니다. 유 이사장은 생전에 아픈 주민들을 병원으로
한데 모여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어쩌다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모였을 뿐일까, 그럼에도 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끈이 있지 않을까… 전 세계가 코로나의 팬데믹에 휩싸여 있는 때에 이러한 질문을 더 골똘히 하게 된다. 마스크 너머의 불안한 눈빛, 안타깝게도 너무나 친숙한 말이 되어 버린 사회적 거리두기, 대공황 이후 최악이 될 것이라는 경기침체 전망까지 우리가 어떻게든 이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아니, 깨달음이라는 표현보다 쏟아지는 정보와 노심초사 속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전염병은 전쟁과 더불어 우리가 불가분으로 얽혀있음을 체감하도록 내모는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다. 게다가 전염병은 적과 친구를 구분하지 않고 사방에서 조여오기에 더욱 두려운 측면이 있다. 마치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는 카메라 앵글을 따라갈 때의 그 막연함과 공포처럼. 무서운 전염성 탓에 부지불식간 피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될 수 있는 현실 앞에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공포(fears of all against all).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한국 사회는 적극적인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되레 평소에는 더 살가운 연대의식을
2019년 12월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에서 취재한 무연고사망자 탐사보도 '죽음조차 가난했던 무연고 사망의 기록'은 기존 보도와는 달랐다. 무려 다섯 명의 기자(전웅빈 김유나 정현수 김판 임주언)가 40일 동안 나눔과나눔 사무실, 서울시립승화원, 그리고 무연고사망자분들이 거주하셨던 곳을 방문하면서 긴 호흡으로 무연고사망자의 삶을 추적했기 때문이다. 그 노력의 결과는 2019년 12월 16일부터 26일까지 14면의 지면에 “빈곤의 종착지 무연고 죽음 –370명의 기록”을 6회에 걸쳐 연재됐으며, 지난 2020년 2월 26일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하는 제9회 인권보도상 수상작으로도 선정됐다. .
자연장 좋지만 유족 마음 헤아려야[내 생각은/유성원] 보건복지부는 환경훼손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자연장(自然葬·화장한 유골의 뼛가루를 땅에 묻는 장례법) 이용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연장의 선호도는 45.4%로 높지만 실제 이용률은 선호도의 3분의 1 수준이다. 자연장은 환경보호 효과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자연회귀 기능으로 선호된다. 그래서 본인이 죽는다면 자연장으로 하고 싶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지만 실제 장법을 선택하는 것은 유족이다. 유족 입장에서는 자연장이 산이나 강에 뿌리는 산골(散骨)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져 불효라고 생각하기 쉽다. 대부분은 장사 뒤에도 일정 기간 유골을 모신 곳에 찾아가 돌봐야 마음이 편하다. 이 때문에 장례 후 일정 기간 봉안시설에 모시다가 자연장으로 옮겨 모셔도 동일한 비용이 드는 융합형 장묘 서비스를 개발한다면 이용이 늘 것이다. 사별의 아픔, 그리움 등 유족 정서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자연장이 능사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성원 메모리얼소싸이어티 대표
여러분은 잘 죽는 법을 아시나요? 아름다운 삶의 마침표, 웰다잉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고 삶을 품위있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어떤 정책과 준비가 필요할까요? 영상을 보고 함께 이야기 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
우한 폐렴으로 인하여 모두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온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어 세계의 근심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내가 등산길에서 만난 한 자매님이 우한 폐렴이 좋은 점들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물론 정말 좋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그나마 좋은 점도 있다는 자조(自助) 섞인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첫째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인간이 평등함을 깨닫게 되어 좋다 하였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서민들만 걸리는 병이 아니요, 돈 없고 신분이 낮은 사람들만 걸리는 병이 아니라 한 나라의 수상도 걸리고 장관도 걸리고 돈 많은 사람도 차별 없이 걸리는 병이어서 코로나19 앞에서는 인간이 평등함을 깨닫게 해 주어서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가정을 소중히 할 수 있게 하여 좋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술집도 문을 닫게 되고 사회적인 교제도 멈추게 되어 직장 일 마치고 곧바로 가정으로 들어와 가족들과 함께 지나며 가정을 지키게 되니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전염병이 끝난 후에도 가정을 소중히 하는 점은 계속 이어나가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셋째는 인생살이에 무엇이 가장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주어 좋다는 것입니다
누가 무슨 말 더 할 수 있으랴 ? 이 풍진 세상을 모르는 세대들이 숨을 죽이다... .
일부 한국 언론의 구태의연한 조선족 비하 추태로 쌓인 불감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끔 SNS에 뜨는 한국인의 연변(조선족) 덕담 동영상을 시큰둥하게 대해왔던 필자였다. 연변의 어느 으슥한 골목가게에서 양꼬치, 순두부, 온면 맛에 완전히 넋을 빼앗긴 한국 ‘미식가’ 백종원씨의 동영상을 봤던 적이 있다. “감동이다, 감동! 어― 좋아라”를 연발하며 연변음식에 몰입하는 백씨의 동영상에 조선족 네티즌들은 의외로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표적인 멋진 음식점을 놔두고 하필 초라한 골목가게를 고른 프로그람 PD의 저의를 꼬집은 것이다. 물론 프로그람 취지에 대한 해명이 뒤따랐지만 ‘초라한 골목가게’가 일부 한국 언론의 빈축거리로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불편한 심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네티즌들의 민감한 반응에 필자 또한 공감되는 바가 없지 않다. 조선족사회가 이성화돼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었다. 그런데 일전에 SNS에서 만난 ‘연변덕담타령’은 필자를 사로잡았다. 덕담내용이 날카로와서였는지 아니면 덕담을 펼치는 한국 젊은이의 느긋한 자세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순수함이 몸에 배여있는 조선족에 비기면 한국인은 싸가지가
2년 전 봄날 예순 살의 여성 시신이 앰뷸런스에 실려 장례식장에 도착하였다. 잠시 후 건장한 체구이지만 힘겨워 보이는 노인께서 장례식장에 들어섰는데 고인의 배우자인가? 하고 생각 되었다. 그런데 그 노인은 힘없이 로비의 소파에 몸을 바로 기대지 못하고 모로 기댄 채로 멍하니 천장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분께 다가가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고인과의 관계를 물어 보았는데, 고인의 아버지라 하셨다. 배우자인가? 하는 나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분께 왜 이리 힘겨워 하시냐고 물었다. 죽은 아이는 맏이인데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성 소아마비가 있어서 어려서부터 업고 다녔고, 학교에 갈 때에도, 성인이 되어서도 직접 업고 다니며 돌보느라 힘겨웠다고 말씀하셨다. 육체적인 힘겨움 보다는 마음이 더 힘들었을 것 같았다. 그분의 손을 잡아 드리고 등을 토닥여 드리며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가는데, 30~40대로 보이는 남녀 두 분이 장례식장으로 당황한 듯 급히 들어 왔다. 고인의 자녀분들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르신께서 고인의 동생들이라 하셨다. 큰 애를 낳고 장애가 있어서 돌보는데 온 힘을 기울이느라 동생들을 낳을 생각을 못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저를 봐요. 그러지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