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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간소하게 3일장 치른후 화장을 권장

북한의 장례문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으로 획일화

본지는 우리 동족의 땅 북한의 장례문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며 수시로 소개해 왔다. 사회주위 획일적 국가에서도 삶과 동시에 죽음도 일상사가 되어 있는데 장례풍습은 우리와 거의 동일하지만 사상의 획일성, 경제적  사정, 국가의 통제 등 원인으로 우리와는 다른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이하 본지가 소개한 북한의 장례사정 의 일부를 일단 인용해 본다.


◎북한의 장례문화 직파에서 인조대리석관까지 http://memorialnews.net/news/article.html?no=3943

◎북한의 묘지 사정, 묘비는 왜 사라지나 ? http://memorialnews.net/news/article.html?no=4677

◎김일성묘지 금수산기념궁전 이야기 http://memorialnews.net/news/article.html?no=1786

◎북한의 국립묘지들 http://memorialnews.net/news/article.html?no=1118


그런데 최근 김정일 사망 6주기를 맞아, 김정은의 금수산궁전 참배 기사와 동시에 중앙 미디어가 최근 북한의 장례관행을 비교적 소상히 보도하고 있어 이를 발췌, 다시 소개하기로 한다.


부고 방법


북한 주민들도 아끼는 사람이 사망했을 때 애통해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북한은 사람이 사망하면 먼저 상주와 그가 다니는 직장에 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거주지 인민반을 통해 이웃에게 알린다. 상주는 개인적으로 휴대전화나 집 전화로 가까운 사람들에게 연락한다. 이어 인근 병원 또는 진료소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아 동사무소와 인민보안성(한국의 경찰) 분주소(지구대)에 신고한다. 직장은 회의시간에 부고를 공지하고 각 부서장이 직원들에게 알린다. 한국처럼 사무실의 게시판에 부고를 붙이지는 않는다. 자강도 강계식료공장에 근무했던 탈북민 강나영씨는 “북한의 직장은 당 위원회가 승인된 선전물만 게시판에 붙이는 것을 허락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용품과 장례식 장소, 상.장 의례


수의는 한국처럼 삼베를 입히지 않고 사망자 본인이 평소에 좋아했던 옷을 입힌다. 김정일은 평소 즐겨 입던 인민복, 김양건은 양복 차림이었다. 관은 가정에서 직접 짜거나 병원이나 화장터에 문의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판자 1장 값이 북한 돈 6000원까지 하는 지역도 있다. 노동자 한 달 치 월급과 맞먹는다. 산림이 황폐화됐고 주민들이 땔감을 얻기 위해 무분별한 벌목을 해 판자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부유층들은 시멘트와 차돌을 섞어 만든 인조대리석관을 사용한다. 판자를 구하기 힘든 것도 있지만 조상을 더 잘 모시기 위해서다. 평양전동기공장에서 근무한 탈북민 박옥경씨는 “인조대리석관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이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상당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화장할 경우는 다르다. 각 직장이나 마을에 비치 중인 관에 시신을 눕히고 화장터에서는 시신만을 끌어내어 화장하고 관을 가지고 가서 다음에 사용하기도 한다.


장례식장은 대부분 사망자의 집안에서 비교적 깨끗한 곳을 골라 설치한다. 한국처럼 병원이나 일반 주민들을 위한 장례식장이 따로 없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걸려 있지 않은 벽 쪽을 향해 관이 보이지않게 병풍을 치고 상을 차린다. 상 위에는 고인의 사진과 살아있을 때 받은 표창장, 훈장 등과 음식, 술잔을 올려 놓는다. 지방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향은 피운다. 살림이 어려운 사람들은 향마저 피우지 못한다. 박옥경씨는 “상주는 평상복에 검은 완장을 두르며 여자는 머리에 흰 리본을 단다.”고 말했다. 국가 주요 인사들을 위한 별도의 장례식장은 있다.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대동강구역 중앙노동자회관·중구역 천리마문화회관 등이 대표적이다. 강석주(1939~2016) 국제담당비서·김양건 등의 장례식은 서장회관에서, 이을설(1921~2015) 원수는 중앙노동자회관에서 각각 열렸다. 만약 병원에서 지병·사고로 사망할 경우 별도의 장례식장이 없기 때문에 시신은 병원에 놔두고 장례식만 사망자의 집에서 치른다.


조문, 부의금


북한 주민들도 한국처럼 부의금을 준비한다. 형편과 친소관계에 따라 북한 돈 100~500원 정도를 한다. 상주들은 부의금보다 술·돼지고기·계란 등을 선호한다고 한다. 북한 돈은 교환가치가 떨어져 인기가 없는 반면에 이들이 오히려 손님들을 접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평양방직공장에서 근무한 탈북민 김성남씨는 “북한 노동자들의 월급이 3000~5000원 정도를 감안하면 많은 돈을 낼 수 없다”며 “직장 단체로 돼지고기 5㎏정도나 계란 꾸러미를 준비하면 상주들이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문상객은 빈소 앞에서 술잔에 술을 부은 다음 절이나 묵상을 한다. 그 후 상주에게 애도의 뜻을 전한다. 문상객은 한국처럼 상가집에 오래 앉아 있지 않는다. 상가집이 대부분 협소해 식사하기가 불편한 환경이라서다. 김성남씨는 “식사를 하더라도 다른 문상객들을 위해 오래 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부분 인사만 하고 돌아간다. 문상객들이 일찍 가는 것은 대중교통의 운행 시간도 한몫을 한다. 거리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보통 오후 10~11시까지 운행한다. 문상객 가운데는 상가집에 남아서 상주와 함께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다. 장례식장을 돌보기 위해서다. 밤샘할 때는 대개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고, 일부는 주패(카드)놀이를 하기도 하는데 경건해야 할 장소라 흔한 모습은 아니다. 밤샘을 함께한 지인들은 장지나 화장터까지 따라간다. 국가 주요 인사들의 장례식장은 조문객들이 꽃다발·조화 등을 헌화하고 바로 집으로 간다. 별도의 음식을 장만하지 않기 때문에 얘기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시신 운구, 매장과 화장


장례기일은 한국처럼 3일장을 주로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일반 주민들과 달리 모두 12일장이었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는 1일장을 하기도 했다. 발인은 보통 오전 10시쯤 한다. 시신 운구는 상주가 병원에서 장의차를 빌리거나 장의차 역할을 할 수 있는 버스를 임대해 사용한다. 지방은 소달구지나 트럭 등을 여전히 이용하고 있다. 북한 주민은 최근 들어 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한다. 북한 당국이 화장을 권유하고 매장 장소가 부족하며 관리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시신은 장의차로 화장터까지 운반돼 영결식장에 안치한다. 화장하기에 앞서 영결식장에서 가족·친척·친구·직장사람들이 모여 간단한 영결식을 한다. 화장하면 남은 재를 화장터 주변 유골보관실에 안장한다. 이처럼 화장은 간편하고 문화위생적으로도 좋기 때문에 화장을 선호하는 근로자들이 날로 늘고 있다. 평양 시민들은 중심지역에서 떨어진 낙랑구역에 위치한 오봉산봉사사업소(화장터)를 주로 이용한다. 북한 주민들은 부모 사망의 경우 한국처럼 1주일 정도의 휴가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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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적 추모문화


하나뿐인 생명을 어느 누가 가볍게 여기겠느냐마는 북한은 한국 사람들보다 육체적 생명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생각한다. 그들은 육체적 생명보다 사회정치적 생명을 더 중요하고 귀중하게 생각한다. 북한에서 홍수가 발생했을 때 떠내려가는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건지려고 강물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평안북도 곽산군 남단협동농장에서 근무한 탈북민 최영란씨는 “어릴 때부터 이런 식의 사상 교육을 받아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진심으로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한국에 도착한 이후 몇 달 동안 ‘이제는 정치적 생명은 끝났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북한 주민들은 사회정치적 생명이 없는 육체적 생명만으로는 동물과 다를 바 없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에 기인한다. 이는 김정일이 86년 7월 당 중앙위원회 책임 일꾼들에게 발표한 ‘주체사상 교양에서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정식화됐다. 논의는 이미 70년대 초부터 있었지만 그때 완성됐다.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의 핵심은 생명의 이분법에서 출발하며 육체적 생명은 죽으면 유한하지만 사회정치적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그 양자 가운데 보다 중요한 것을 사회정치적 생명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사회정치적 생명은 수많은 사람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사회정치적 집단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은 그 중심을 수령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어버이 수령-어머니 당-인민대중이 혈연적 관계에 기초해 통일체를 이루고 수령에 절대복종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평안남도 순천군 순천지구탄광연합기업소에 근무한 탈북민 이동규씨는 “북한 주민들이 사회정치적 생명은 ‘저절로 형성되지 않고 수령의 혁명적 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조직생활을 통해 단련할 수 있다’고 교육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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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함께한 무연고 장례 -부용구
서울역에서 도로를 건너면 높은 건물들 사이 여인숙과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동자동쪽방촌은 주민들 스스로가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를 조직하여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과 반찬 나눔, 의료서비스 등의 지원을 모색하며 이웃들끼리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나눔과나눔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주민들 중 무연고자가 되어 돌아가시는 분이 있을 때 함께 장례를 치러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3월 중순 SNS에서 동자동사랑방의 유○○ 이사장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장례 등을 통해 뵈었던 이사장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사망소식은 황망하기만 했습니다. 연고자로 형제들이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하는 상황이라 장례가 언제 확정될지 알 수 없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랑방 활동가들은 형제분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난 4월 초 유 이사장의 장례일정이 확정되었고, 화장일에 앞서 동자동에서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모식에 조문을 왔고, 각자의 추억들을 가지고 유 이사장을 애도했습니다. 유 이사장은 생전에 아픈 주민들을 병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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