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금수산 의사당은 김일성 사망후 그 시신을 안치한 금수산기념궁전즉 "김일성 시신궁전"으로 바뀌었다. 김일성이 미라의 모습으로 누워있는 곳이다. 3백만명이 굶어죽던 대아사 기간인 95년에 착공했고 의사당을 시신궁전으로 재건축하는데 무려 8억9천만 달러가 들어갔다. 당시의 국제가격으로 치면 강냉이 6백만 톤으로 2천3백만 인민이 3년간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건축비다.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www.uriminzokkiri.com)는 최근 화첩“수령영생위업 실현을 위하여”를 소개하면서, 김일성 시신궁전 내부를 소개했다. 화첩은 금수산기념궁전 건설과 영생탑 건설, 주체연호 및 태양절 제정, 회고록(계승본)발행, 혁명사적지 및 전적지들을 새롭게 발굴하고 꾸릴 데 대한 김정일의 활동을 100여장의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화첩 첫 부분에 소개된 금수산기념궁전은 대성구역 미암동 1973년 3월에 금수산 의사당으로 착공되어 1977년 4월 김일성 탄생 65돌에 준공된 주석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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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은 스스로 죽고나면 대성산 혁명열사능에 묻히기를 원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수령의 후계자로서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모시기 위해 김일성의 유언을 거부하고 금수산의사당 전체를 시신궁전으로 만들었다. 94년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신 영구보존과 관련, 궁전으로 만드는 지시를 내렸다. 1995년 6월12일 당중앙위, 당중앙군사위, 국방위원회,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 공동 명의의 결정에 따라 금수산의사당(주석궁)을 금수산 기념궁전으로 바꾸었다. 총부지 면적은 350만㎡, 지상 건축면적은 3만 4910㎡에 달하며, 광장 앞마당 넓이는 한번에 20만 명이 운집할 수 있는 10만㎡로, 김일성 광장의 두 배에 달한다. 화강석 70만개를 20여 가지 모양의 규격으로 다듬어 깔았다. 주석궁은 처음 유럽식 궁전을 모방한 5층짜리 복합 석조건물 이었으나, 시신궁전으로 되면서 중앙홀에 대형 김일성 초상화와 김일성 입상을 세웠고, 궁전 앞 광장은 김일성 김정일의 생일을 상징해 너비 415(4월15일 김일성 생일) 미터, 길이 216(2월 16일 김정일 생일)미터로 되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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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건설에는 공병국 1여단(김일성, 김정일 별장 건설전문)이 투입됐다. 별장건설 전문 부대이므로 중장비들이 동원된다. 이 부대는 다른 건설 부대와 달리 배급 상태가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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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배객들은 김일성 시신(미라)이 있는 방에 들어갈 때 외투를 벗어 탈의실에 맡긴다. 남자는 양복, 여자는 한복 차림만 허용되며 점퍼나 작업복을 입은 사람은 입장할 수 없다. 이를 모르는 지방 사람들이 평양까지 갔다가 시신이 있는 곳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내려온 경우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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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주민들의 관람을 위해 건물 바깥쪽에 긴 복도를 만들고, 1998년에는 100여 정보에 달하는 수목원을 조성했다. 지하 200미터의 평양 지하철과 이어졌으며, 주변에만도 30여개의 감시 검문초소가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되고 있다. 김일성 시신 보관의 위생과 편의를 위해 궁전 내부에 수억 달러를 들여 자동 공기청정기, 자동 신발털이 기계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모든 방과 홀은 화강석과 대리석을 다듬어 건설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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