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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으로 21회째 되는 “강동선사문화축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순서가 “바위절마을호상놀이”로서 축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쌍상여가 먼길을 떠나기전 생전에 못다한 정을 아쉬워하며 어울랴 돌며 부르는 선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한편 슬픈 듯하면서도 한편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즐거움 같은 울림이 한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서울특별시 무형 문화재다.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서울 강동지역의 고유 민속놀이로, 쌍상여 호상놀이라고도 한다. 호상놀이는 가정형편이 좋고 오래 살고 복이 있는 사람의 초상일 경우 노는 놀이로, 출상시 험난한 길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전날 밤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모여 빈상여를 메고 밤새도록 민가를 부르며 발을 맞추는 놀이이다.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요령잽이 선소리꾼 1명이 상여 앞에서 이끌고 상여꾼 36명이 네 줄로 상여를 메는데, 10명 내외가 메는 보통 상여에 비해 대단히 큰 것이 특징이다. 상여가 집을 떠날 때는 상여를 메기 전에 요령잡기소리를 부르고, 집 떠나면서 향도가를 불러 영혼을 위로하고 생전의 업적과 덕망을 기린다. 상여가 뒤로 밀리듯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마치 강물이 출렁이는 모습과 같아 매우 흥겹다. 출상에서는 관을 내리고 고인이 천 년 만 년 지낼 유택을 짓기 위하여 봉분을 다지는데 바위절마을의 특유한 풍습인 갖은 덕담과 달구질 매김노래인 방아타령을 부른다. 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1960년대 암사동이 서울시에 편입되면서 바위절 마을의 개발과 도시화 물결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으나 뜻있는 이들에 의해 단절된 지 30여 년 만에 원형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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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도 변함없이 선사문화축제 둘 쨋 날, 오후 4시부터 1시간동안 축제 현장에서 웅장하게 거행되어 다수 참가한 시민들이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행사 5시간전부터 상여놀이 본부에서는 준비가 한창이다. 무형문화재 이재천 회장을 비롯한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모여 본부가 마련한 도시락으로 중식을 먹는다.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역할에 따른 옷차림을 갖추고 만장도 준비한다. 이들 비품 모두가 본부 창고에 비치되어 있는데 정작 행정기관이나 자치단체의 지원이 미흡하여 많은 고생들을 하고 있다. 또 상여놀이 참여자들도 대부분 노쇠하여 행사 진행시 사고가 염려되기도 한다. 이종천 보존회장도 은퇴를 앞두고 온전한 보존에 여러모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호상놀이에는 강동구청장과 강동구의회의장도 제주로 참석하여 인사말을 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마침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김시덕 교육과장도 동 상여놀이를 취재하는 모습도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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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상여놀이가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비단 ‘암사동 바위절마을호상놀이’만이 아니라 ‘횡성회다지소리’ ‘양주회다지소리’ 등, 기자가 취재를 위해 찾아가는 곳마다 그를 발견하게 된다. 윤승규 연구위원, 그는 이번 호상놀이에도 처음부터 지침을 주고 수발하면서 끝까지 동행했다. 그가 상여놀이에 적극적으로 뒤따라 다니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구체적인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무작정 상여놀이 자체가 좋고 소리가 무척 듣기가 좋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였다. 그렇게 좋아서 따라 다니다 보니 차츰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게 되었고 여러 지역 상여놀이의 특장점을 비교연구해 보기에 이르렀다. 그는 직장을 유지하면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생사문화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부설 생사문화연구소의 객원연구위원으로 위촉되어 있기도 하다. 그의 꿈은 이 상여놀이를 단순히 장례의 일부분으로서가 아니라 임종, 수시, 고복, 초혼, 습염 등으로 이어지는 전통장례의 전 과정을 하나로 묶어 종합적인 상.장례 문화로 승화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이를 작품화하고 서울문화재단 등 관련 기관과의 협력하에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크게 공개적으로 공연을 펼치는 것이다. 그것은 한 개인의 꿈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집약하고 충실화하여 자랑스런 문화로 보존하는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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