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사연의 주인공은 전남 장성군 남면사무소에서 일용직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김모(50)씨와 무연고 어린이 보호시설인 "SOS어린이마을(서울 양천구 소재)"에서 생활 중인 김씨의 아들(13)이다. 김씨 부자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극이 일어난 것은 지난 2000년 4월 어느 화창한 봄날. 당시 먹고 살기가 힘들어 고향을 등지고 상경했던 김씨는 서울 동대문운동장 주변에서 노점상 등 도붓장수로 생계를 이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란 말이 맞을까. 연일 행상을 하기에도 역부족이었던 김씨는 지체장애우인 부인(39)이 아들을 돌볼 수 없어 부인을 고향에 남겨둔 채 4살배기 아들과 함께 여인숙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김씨는 항상 아들을 데리고 행상에 나섰고 김씨 부자에게는 고된 삶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김씨가 고단함에 젖어 잠시 눈을 뗀 사이 아들은 김씨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들을 잃어버린 김씨는 장사를 내팽개치고 아들을 하염없이 찾아 다녔지만 끝내 아들을 찾지 못했다. 아들을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신을 나무라며 찰나처럼 지나간 순간을 후회했지만 아들은 그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경찰과 행정기관 등에 도움을 요청하고 아들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녔지만 달랑 돌 사진 1장뿐인 아들의 흔적으로 행방을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아들을 찾아 수년 간을 헤매던 김씨는 결국 하늘을 탓하며 가슴 한구석에 아들을 묻어둔 채 고된 삶을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김씨에게 믿기지 않는 낭보가 날라들었다. 무연고 아동들을 상대로 유전자 감식을 벌이던 도중 김씨와 같은 유전자를 가진 무연고 아동을 찾았다는 소식이었다. 김씨는 "꿈인지 생시인지" 믿을 수 없었지만 소식을 전해 온 서울 중부경찰서로 한 걸음에 달려갔다. 22일 오후 경찰서에서 만난 김씨 부자는 서로의 생김새도 말투도, 채취도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어렴풋한 기억을 떠올려가며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한바탕 울음으로 8년 동안 묻어 둔 한을 풀어냈다. 김씨는 "아들을 잃어버린 뒤 단 한 시도 편히 지내지 못했습니다, 생전에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살아서 아들을 볼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겁니다"라고 말하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쳐냈다. 김씨와 아들은 상봉식이 끝난 뒤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 부자가 헤어질 당시 지금 같은 유전자 감식 기법 등이 도입돼 있었더라면 조금 더 빨리 만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이라도 만나게 돼 너무 다행스럽다"며 "앞으로는 김씨 가족에게 좋은 일만 생기고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노컷뉴스]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