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6일, 11시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해 계신 6·25참전용사 故 이등상사 서정열님의 묘지를 참배하고, 생전에 전사자 유해발굴에 기여했던 것에 대한 감사패와 국유단과 함께 활동했던 영상을 CD로 제작하여 헌정할 계획이다. □ 故 서정열 참전용사는 6·25전쟁 당시 함께 싸운 전우들의 유해를 찾아 전국의 산을 홀로 돌아다니다가 2014년 10월 국유단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발굴팀장 류수은 중사는 3년 전 강원도 양구 백석산에서 유해발굴작전 일과 종료 후 숙소로 복귀하던 중 한 어르신이 버스가 끊긴 시간에 홀로 정류장에 계신 것을 보고 안내를 해 드리기 위해 차를 세웠다고 했다. 6·25전쟁 때 양구 백석산에서 전투를 했고 이 지역에서 부하를 많이 잃었다는 어르신의 사연을 들은 류 중사는 참전용사의 전우 분들을 찾는데 도움을 드리겠다며 약속을 했다. 이후 국유단과 함께 강원도, 경상도의 산을 오르며 참전 당시의 전투현장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었다. 그의 기억과 증언은 유해발굴에 큰 도움이 됐고, 실제 기억해 낸 강원도 양구 백석산 전투 현장에서 유해가 발굴되는 놀라운 결과도 있었다. 국유단이 도움을 드리겠다고 약속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모윤숙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의 외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런 유니포옴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죽음을 통곡하며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원수가 밀려오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대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씌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았노라 그보다도 내 피 속엔 더 강한 혼이 소리쳐 달리었노라 산과 골짜기 무덤과 가시 숲을 이순신(李舜臣) 같이 나폴레옹 같이 시이저 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머나먼 하늘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뻗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본사 제작 격조높은 추모곡> '천개의 바람이 되어★'추모곡 "천의 바람이 되어"는 '하늘문화신문’이 지난 2007년 5월, 작자 불명의 외국 가사에 임긍수 작곡가에게 의뢰한 곡으로 재미 교포 파페라 가수 'Rose Jang'이 노래를 부른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산 사람을 오히려 위로하고 언제나 곁에서 지키겠다는 위로와 격려의 사랑을 노래하는 곡으로 뜻있는 음악 애호가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추모곡이다. 본지는 이 곡을 세월호 참사로 유명을 달리한 고인들과 유족에게 삼가 바치고자 한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나는 거기에 없어요, 잠들고 있지 않아요, 천의 바람이 되어 저 커다란 하늘을 돌아다니고 있어요, 아침엔 새가 되어 당신을 눈뜨게 하고 밤엔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보아요,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거기에 나는 없어요, 죽은 게 아니에요"로 이어 지는 곡은 사별한 연인이 오히려 살아 있는 사람을 위로하고 사랑한다는 내용으로 일본에서는 동일한 가사에 곡을 부쳐 유명 성악가가 부른 곡이 오랫동안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본지가 제작한 곡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곡으로
영화'007시리즈'의제임스본드역으로유명한영국배우로저무어가사망했다. 외신에따르면23일(현지시각)로저무어는짧은암투병끝에스위스에서세상을떠났다.향년89세. 고인의자녀들은SNS를통해"아주슬픈소식을전한다"라며"아버지가짧지만용감했던암과의투병끝에세상을떠났다"라고밝혔다. 이어"평생카메라앞에서열정적으로연기한아버지는매우특별하고,많은사랑을받았던사람"이라며"그동안아버지를사랑한모든이들에게깊은감사를전한다"라고덧붙였다. 로저무어의장례식은고인의유언에따라모나코에서비공개로진행될예정이다.한편영국출신인로저무어는런던왕립극예술아카데미에서단역배우로데뷔,'007시리즈'로할리우드에본격진출했다.3대제임스본드로발탁된무어는1973년'죽느냐사느냐',1985년'뷰투어킬'까지12년동안7편의'007시리즈'에출연하면서세계적인스타로활약했다. 로저무어는1983년‘007옥토퍼시’촬영지인인도에서빈곤문제에충격을받고1991년에는유니세프친선대사로서아동빈곤해결에힘썼다.이공로를인정받아1999년영국여왕으로부터대영제국훈장을받기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은 정권교체를 실감하게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현직 대통령이 5·18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행사에 참석한 지 4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작곡가인 김종률 씨의 손을 잡고 이 노래를 불렀다. 현직 대통령이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것은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9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헌화·분향 때 4부 요인과 여야 정당대표, 보훈처장, 5·18 민주화운동 단체장 등과 함께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민주주의의 이정표'라고 강조했다. 이는 진보·보수 진영을 뛰어넘어 민주화를 앞당긴 상징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국민통합'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또한,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함을 느낀 5·18 유공자와 그 가족들에게도 예우를 다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기념식 전 5·18 묘역에 안장된 모든 희생자의 묘역에 헌화할 것을 지시하는 한편, 기념식이 끝나고 나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주인공인 윤상원 열사의
●11일 오전 세월호가 마침내 목포신항 받침대 위에 내려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91만이다.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거치가 모두 끝나면 1주일간 세척과 방역, 안전도 검사 등을 거쳐 미수습자 9명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에 나선다. 온 국민을 가슴아프게 했던 세월호 참사가 16일로 3주기를 맞는다. 이에 지난 3년을 돌아보며 고인을 위로하고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4.16 기억저장소”의 활동상을 '연합뉴스'의 기사를 통해 돌아보기로 한다.[편집자-주]● "기록은 역사이며, 기록은 진실입니다. 이 기록들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입니다." 4·16 기억저장소'가 올해 1월에 발간한 '기록으로 싸우게 하라' 자료집 머리글에 나온 내용이다. 세월호 참사 후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하늘의 별이 된 304개의 꿈을 펼치기 위해 4·16 기억저장소는 어제도, 오늘도 기록을 모은다. 지난 3년간 세월호 희생자, 미수습자, 가족 그리고 그들을 지켜본 시민들의 기록물 40여만 건을 모아 분류·정리한 4·16 기억저장소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모으고 또 모았다, 기억 보존의 시작 4·16 기억저장소는 2014년 4월 16일 세
세월호 참사 3주기인 16일 오전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진도군과 진도군범군민대책위원회가 주관한 추모행사에는 노란 리본 목도리와 종이모자를 착용한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을 비롯해 이낙연 전남지사, 이동진 진도군수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객들은 ‘지난 3년의 회고’ 추모영상과 진도 중ㆍ고등학생들이 세월호 참사 재발방지와 미수습자 9명의 귀환을 바라며 쓴 추모시 ‘노란 나비’와 ‘4월 편지’를 낭송하자 눈물을 참지 못했다. 진도 고성중 2년 박소영양과 진도고 2년 박지유양 등 2명의 여학생은 각각 '노란나비', '4월 편지'라는 자작 추모시를 발표했다. 박소영양은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보려던 순간 어느샌가 내 앞의 검은 바다가 가득 몰려와 나를 삼킨다'고 참사의 아픔을 노래했다. 이어 '하늘도 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쓰라린 가슴 안고 울고만 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또 지나도 나는 아직 지난 봄에 머물러 있다'며 자신의 나약함과 무력감을 자책했다. 그러나 '더이상 슬프지 않도록 나는 다시 노란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한다. 다시 만날 봄에는 노란 날개 활짝 펴고 오래도록 날아
故 김영애의 마지막 가는 길은 수많은 후배들의 배웅이 있어 외롭지 않았다.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故 김영애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앞서 고인의 빈소에서 진행된 영결식에는 염정아, 나영희, 오달수, 문정희 등 많은 후배들과 동료들이 참석했다. 뒤이은 발인식에도 이들은 운구 행렬을 뒤따르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장지는 성남시 분당 메모리얼 파크. 지난 1971년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배우의 길에 들어선 김영애는 수많은 작품에서 대중과 호흡해왔다. 불과 지난 2월 종영한 KBS 2TV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에 출연하며 연기 열정을 불태웠던 바, 더욱 그의 비보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고인은 췌장암 투병 와중에도, 작품에 영향을 미칠까 누구에게도 병을 알리지 않고 작품에 매진해왔다. 고인은 장례 절차와 영정사진까지 직접 고르는 등, 누구의 도움 없이 조용히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은 수많은 후배들의 배웅으로 외롭지 않았다. 46년 동안 시청자를 웃고 울린 김영애의 원동력은 연기 열정이었다. 늘 뜨겁게 연기를 사랑했고, 무엇보다 연기가 1순위였던 김영애였기에, 많은 동료, 후배들과
. 북한의 끊임없는 대남 무력 도발을 기억하고 안보 의지를 다지기 위한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이 24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광장에서 거행됐다.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은 '국민의 비군사적 대비가 북한 도발을 영원히 끊는 길입니다'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북한 도발로 인한 전사자 유가족과 참전 장병, 북한군 격퇴 유공자, 시민, 학생 등 7천여명이 참석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비롯해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자유한국당 정우택·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 민주당 박병석 의원,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자리했다. 바른정당 대선 주자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도 나란히 참석했다. . .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기념사에서 "북한은 지금 우리의 상황을 잘못 판단해 또다시 무모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우리 군은 북한의 어떤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도 단호히 응징할 수 있도록 확고한 대비 태세를 유지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황 권한대행은 이어 "이곳 대전현충원에는 북한이 무도하게 자행한 제2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 도발에서 조국을 위해 생명을 바친 용사들이 잠들어 있다"면서 "용사들의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192명의 사망자와 151명의 부상자를 낸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참사 14주기 추모식이 18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대구도시철도공사 강당에서 엄숙히 치러졌다. 추모곡 속에 시인 백시향씨가 신달자 시인의 시 '당신은 그날을 기억하십니까'를 낭독하자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을 잃은 유가족들이 여기저기서 흐느꼈다. 유가족 등 200여명이 참석한 추모식에서 김태일 2·18안전문화재단 이사장은 "큰 사고가 나면 잠시 온 세상이 뒤집어질 듯 야단법석을 떨다가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버린다"며 "우리 사회에서 안전이라는 가치는 진보와 보수 모두로부터 주목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기억이며, 어떤 가치 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강조했다.윤석기 희생자대책위원장은 유승민 의원과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재옥 자유한국당 의원, 홍의락 무소속 의원 등 추모식에 참석한 정치인들을 소개한 뒤 "유족들의 마음과 희생자들의 염원을 담아 정책을 입안해 달라"고 당부했다. 배한진씨 등 유가족들은 "14년 전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며 "내년에는 추모공원과 추모탑 앞에서 추모식을 가
.안중근 의사는 107년 전인 1910년 2월14일 오전 10시30분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1909년 10월26일 오전 중국 하얼빈역에서 국권 침탈의 원흉인 일본제국 조선통감부 부장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암살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친 뒤 경찰에 붙잡혔고 이토 히로부미는 "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중근은 감옥에서 고초를 겪으면서도 암살배경을 설명하는 등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결국 중국 뤼순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는 그해 3월26일 결국 형 집행으로 숨을 거뒀다. 유해는 찾지 못했다. 글 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옥중에도 저서와 유묵을 남겼고 일부가 보물(569호)로 지정됐다. 1962년 건국훈장을 받았다.
서울 용산구는 연인에게 초콜릿을 전달하는 날로 인식되고 있는 2월 14일은 나라를 위해 몸바친 안중근 의사가 사형을 선고 받은 날이며, 이를 기억하고자 13∼14일 추모행사를 연다고 8일 밝혔다. 효창공원에는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안장한 삼의사묘역과 함께 안 의사의 가묘가 있다. 13일 오전 9시30분 성장현 용산구청장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숙명여대 학생 등 40여명이 효창공원을 찾아 안 의사 가묘에 헌화하고 참배한다. 이 행사는 안 의사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유해를 고국으로 옮겨 장례 지내는 것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안 의사는 순국 전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어 오전 10시30분에는 용산아트홀 소극장에서 지역 고등학생들이 만든 ‘안중근 의사 UCC’ 3편을 상영한다. 서 교수와 성 구청장, 독립기념관 김주용 박사가 함께하는 ‘안중근 토크 콘서트’도 열린다. 이와 함께 용산구는 일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해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린 이봉창 의사의 기념관(조감도)을 조성한다. 기념관 조성 예정지는 이 의사의 옛집이 있던 효창동 118번
국가보훈처는 국립묘지 밖에 있는 국내 독립유공자의 묘소 실태 조사 가운데 후손이 있는 묘소의 조사를 올해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고 10일 밝혔다. 조사가 완료된 묘역에 대해서는 유족 등과의 협의를 거쳐 국립묘지 이장 지원을 추진할 예정이다. 보훈처에 따르면 독립유공자의 총 포상자는 1만4,576명이다. 이 중 국립묘지에 안장된 유공자는 3,839명이다. 국립묘지 밖 묘소에 안장된 경우는 1만666명이며, 생존 유공자는 71명이다. 2015년부터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현재 국립묘지 밖에 산재된 묘소 1만666기 가운데 후손이 있는 묘소는 4,321기로 파악됐다. 이들 가운데 후손의 소재가 확인된 묘소는 1,165기로 집계됐다. 이 중 113기의 후손은 국립묘지 이장을 희망했다. 81기의 후손은 이장을 원하지 않고 조성된 묘소의 보강을 원했다. 국립묘지 이장과 현지 묘소 보강을 희망한 경우 유족과 협의를 거쳐 순차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1기당 이장 비용은 30만원, 새로 단장을 원할 경우 200만원까지 실비 지원을 할 예정이다. 한편 후손 없는 묘소는 6,345기로 집계됐다. 이들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전수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사고로 죽은 세월호 사망자와 시위 현장에서 죽은 백남기에게 정치권과 수많은 단체들이 찾아가지만 나라를 지키다 전사와 순직한 군인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유가족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해군 제독이 지난달 26일 동해상에서 헬기 사고로 순직한 군인들을 추모하며 올린 글이 온라인에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한국 해군 초대 잠수함 전단장을 지낸 김혁수 예비역 준장(해사25기·68)이 한미 연합훈련 도중 헬기 사고로 순직한 해군과 유가족의 의연한 모습을 소개한 글이다. 순직한 해군들은 대잠수함헬기 ‘링스 헬기'의 정조종사 고(故) 김경민(33) 소령, 부조종사 고 박유신(33) 소령, 조작사 고 황성철(29) 상사로, 이들은 동해에서 밤에 작전 도중 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모두 숨졌다. 이들의 영결식은 지난 2일 해군장으로 치러졌다.김 제독은 지난 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 계정에 “후배들의 빈소를 조문하고 왔다”며 남편과 아버지, 애인을 갑작스럽게 잃고 빈소를 지키던 유가족들의 모습과 빈소 풍경을 전했다. “목사인 한 조종사의 부친은 목사님으로, 교인들이 찾아와 찬송하고 기도하며 위로하고 눈물을 흘리고 갔다. 한 조종사에게는 네 살짜리 애기와 부인의 뱃속에 둘째가
‘초인종 의인’ 고(故) 안치범 씨의 발인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안 씨는 지난 9일 불이 난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소재의 한 원룸에서 먼저 대피했다가 잠든 이웃들을 구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가 초인종을 눌러 주민들을 구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연기에 질식,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화재 10여일만인 지난 20일 새벽 끝내 숨을 거뒀다. 안 씨의 빈소로 향하는 복도에는 사회 각계에서 보낸 화환들의 국화꽃 향기가 그윽했다. 많은 화환들 끝에 위치한 빈소에는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안 씨의 영정사진이 보였다. ‘위급한 상황에도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안 씨가 생전에 어머니 정혜경(59) 씨에게 말했던 것처럼 듬직한 모습이었다. 관련기사 --- '초인종 의인' 부산외국어대생 추모 확산 22일 오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성우 배한성 씨 등이 침울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는 등 장례 마지막날까지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오후 1시께 발인식이 시작되자 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정적이 흐르던 빈소는 고인을 보내는 가족들의 애통한 마음으로 가득찼다. 화마로부터 이웃들을 구하고 숨진 '초인종 의인(義人)' 안치범(28·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