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기존의 절을 허물고 서원을 새로 지은 자리에서 국보급 불교의식 용구가 대거 발굴됐다. 특히 서원 터에서 고려 시대 불교유물이 대거 출토된 예는 처음이어서 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이번에 발굴된 불교 유물 가운데 금동제 금강저와 금강령은 고려 금속 미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보물급’으로 꼽히고 있다. 문화재청은 서울 도봉동 도봉서원터에서 금동제 금강저와 금강령을 비롯한 불교 용구 77점이 서울문화유산원구원에 의해 발굴됐다고 오늘 밝혔다. 문화재청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도봉서원터에서 발견된 유물을 공개했다. 금강령에는 오대명왕상(五大明王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함께 배치되어 있는데 이런 문양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됐다.
이번에 출토된 금강령은 그동안의 금강령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수작이라고 밝혔다. 또 물고기형 탁설(鐸舌,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방울 안에 매다는 것)은 구슬을 물고 있는 모습이 매우 독특하고 그 예가 드물다. 아울러 현향로와 뚜껑합(유개합) 등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외에 향완은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전기의 양식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주경미 금속공예전문가는 “그동안 밀교와 관련된 법구는 중국에서 수입했거나 제한적으로만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이번 유물을 통해 고려전기에 밀교의례가 행해진 것으로 보여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나라에서 나온 금강령 가운데 유일하게 사리공 흔적이 발견됐다.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불교고예의 제작기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출토 유물은 ▲ 청동제 뚜껑항아리(有蓋壺)와 뚜껑합(有蓋盒) ▲ 현향로(懸香爐)와 부형대향로(釜形大香爐), 수각향로(獸脚香爐) 등 다양한 형태의 향로 ▲ 세(洗, 세숫대야형 용구) ▲ 향완(香琬, 향을 피우는 그릇) ▲ 대부완(臺附琬, 굽 달린 사발) ▲ 발우(鉢盂), 대접, 숟가락 등 종류가 다양하다. 불교용구는 도봉서원터에서 중심에 해당하는 5호 건물지 기단에서 출토됐다. 건물지 기단을 파서 묻은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볼 때, 서원 건축 이전에 영국사 건물이 조성될 당시 제의 행위와 관련하여 불교용구를 기단부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도봉서원은 율곡 이이(1536~1584년)의 <율곡전서>와 고산자 김정호(미상~1866년)의 <대동지지> 등 여러 문집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1573년 정암 조광조(1482~1519년)를 추존하기 위해 옛 영국사(寧國寺)의 터에 창건됐다. 도봉서원은 임진왜란으로 전소했다가, 1608년 중건된 후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어내기까지 약 260여 년간 유지됐다. 1903년 지방 유림이 제단을 복원하고, 1970년에 사우(祠宇)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울특별시기념물 제28호 ‘도봉서원과 각석군(道峯書院과 刻石群)’으로 지정된 도봉서원터는 도봉구청이 수립한 복원정비계획에 따라 유적의 정확한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2012년 5월부터 9월 초까지 발굴조사를 시행했다. 발굴조사 결과 도봉서원은 영국사의 일부 건물 또는 기단을 재활용했고, 석축과 속도랑배수시설 위에 조선 시대 건물을 축조한 흔적이 확인됐다. 서울문화유산연구원 발굴조사단은 “서원터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 지역에서 불교가 매우 번성하였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라며 “화려하고 뛰어났던 고려 시대 금속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서원은 영국사 일부 건물 또는 기단을 재활용해 건물을 지었으며 폐사지는 아니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