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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에이지

'일단 저지르자'

오영실은 지난 2008년 전국을 강타한 SBS 일일드라마〈아내의 유혹〉으로 연기자 데뷔를 했다. 그녀 인생의 2막도 아닌, 3막을 열었다. 오영실은 1987년 KBS 15기 공채아나운서로 입사, 이후 1997년까지 10년간 ‘KBS 아나운서 오영실’로 살았다. 똑 부러지는 진행으로 KBS 대표 아나운서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1997년 KBS 퇴사 후프리랜서로 나섰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안 계셨어요. 그래서 ‘안정’을 추구하다 아나운서에 도전했죠. 두 번이나 떨어진 끝에 합격했어요.안정을 얻은 거죠.” 오영실은 이후 의사인 남편과 결혼했고 가정적으로 안정을 얻었다. 그런 그녀가 ‘KBS 아나운서’라는 좋은 직업을 10년 만에 떠난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그녀 인생의 2막을 연 순간이다.

 

“아나운서 생활로 바쁠 때였어요. 하루는 꿈을 꿨는데 아이가 사고를 당한 거예요. 아나운서로 잘나가고 있을때였지만 저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나 봐요. 마침 아이 아빠도 수련의 과정을 끝낸 때라서 안정적인 상태였기에 아나운서를 그만뒀습니다. ‘이제부터 아이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 ‘2막’은 10년이 넘어갈 즈음 3막으로 향했다. 덥석 <아내의 유혹〉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 도전을 선언한 것. 야무진 스타일의 오영실이었지만, 연기자로 나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과연 잘 될까?’였다. ‘도전’쯤으로만 치부하는 시선이 강했다. 특히 〈아내의 유혹〉에서 오영실이 맡은 역할은 지능이 미성숙한 캐릭터였다.


경험 많은 연기자가 해도 쉽지 않은 역할인데 오영실이 냅다 도전한 것이다. “제가 20년 아나운서 생활을 했지만 같은 방송이라도 탤런트 쪽은 또 다르더라고요. MC 쪽에서는 중견이지만 여기서는 아역연기자보다 경력이 짧잖아요. MC 때처럼 하다 실수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그때 제일 많이 생각했던 게 ‘아나운서 하던 스튜디오가 봄날이었구나.’였어요. 그렇게 제 ‘봄날’은 간 거였죠.”20년 베테랑 아나운서도 연기판에서는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 멋모르고 선배 연기자들에게 코치했다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MC를 할 때는 서로 대본을 고쳐주며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 판은 그런 판이 아니었죠.〈아내의 유혹〉을 할 때 금보라 씨에게 ‘이건 좀 더 흥분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라고 지적했다가 분위기 싸늘해진 적이 있어요. 제가 의욕만 앞섰지 뭘 몰라도 한참 몰랐던 거죠.”


아나운서, 그리고 프리랜서MC에서 야심차게 연기자에 도전했지만 사실 도전의 동기는 그리 거창한 게 아니었다.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문을 두드리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아내의 유혹〉 연출자(오세강 PD)가 KBS 입사동기였어요. 예전부터 장난삼아 지나가는 사람 1, 2 같은 것이라도 써 달라’고 얘기하고는 했어요. 물론 장난삼아였죠. 그런데 세월이 지나 어떻게 그게 생각이 났는지 어느 날 제게 연락이 와 장서희씨 요리 선생님 안 해보겠냐고 해요. 딱 한 번만 나오는 거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냅다 ‘한 번 해 보겠다.’고 했죠. 그런데 막상 촬영장에 가니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라고 ‘하늘이’ 역을 줬어요. 제가 사실 평소 TV에는 똑 부러지게 나왔는데 사실 좀 덤벙대는 게 있거든요. 오세강 PD는 그걸 아니까 제가 하늘이 역할이랑 어울린다고 생각했나 봐요.”


‘빽’으로 연기를 시작했지만 〈아내의 유혹〉이 50% 넘는 시청률로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오영실 또한 덩달아 ‘연기자 오영실’로 안착했다. 평소 알아뒀던 동기 덕에 인생 3막까지 연 셈이다. 물론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때까지 오영실은 말 그대로 ‘연기’의 ‘연’자도 몰랐으니까. ‘빽’이라고 생각했던 오PD도 첫날 딱 한 신 찍더니 ‘너 그만 집에 가라.’고 했다. “20년 이상 함께 했던 카메라인데도 이상하게 낯설었어요. 첫날 대본 리딩을 하는데 다른 출연진들이 당혹스러움과 함께 ‘쟤는 여기 왜 왔을까?’하는 분위기였어요. ‘뭐지?’하는 물음표가 얼굴에 쓰여 있더라구요.” ‘20년 베테랑 아나운서 오영실’로 살아오다가 냉대를 받으니까 참 서러웠다고 한다.

 

어찌됐든 오영실은 〈아내의 유혹〉으로 연기자 반열에 올라섰다. 인생 다음 장을 운, 그리고 노력으로 성공의 문을 연 셈이다. 본격 연기자로서 인생 3막이 화려하게 펼쳐질 것 같았다. ‘암’을 만나기 전까지.〈아내의 유혹〉의 성공에 도취해 있을 때 그녀는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다. 갑상선암은 비교적 쉽게 치료가 가능하다는 ‘착한 암’이라지만 의욕적으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려던 오영실에게는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든 시기였다. “처음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왜 하필 날까’라는 생각에 많이 속상했어요. 그 전에 우울증으로 한참 시달린 적도 있거든요. 왜 여자들은 그런 때 있잖아요. 나 ‘오영실’은 없고 ‘누구 엄마’로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 때요. 나만 희생하는 것 같고, 그렇게 생각하니 뭘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들더라고요. 우울증은 친구와 수다 떨고 여행 다니면서 겨우 극복해냈어요. 그런데 이제 또 암이라니, 참 힘이 쭉 빠지더라고요.” 오영실은 우울증처럼 암도 극복해 냈다. 특유의 밝은 성격이 도움이 됐다. “이왕 걸린 거 어떡하겠어요. 미인은 박명인가보다 생각하고 ‘까짓 치료 열심히 받자’고 생각했죠. 결국 이겨냈습니다.” 울증과 갑상선암을 이겨낸 오영실은 2009년부터 찬찬히 연기자로서 발을 넓혀 나갔다. 아픔을 겪으면서 하루 루 인생에 충실하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40대 중반, 남들 같으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벌이로 편하게 살고 싶겠지만, 오영실은 달랐다. “나 오영실을 찾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았어요. 40대 중반에 벌써 ‘누구 엄마’로 늙기는 싫더라고요.” 드라마 〈공주가 돌아왔다〉, 〈민들레가족〉, 〈내딸 꽃님이〉, 〈그대 없인 못살아〉, 〈학교 2013〉, 〈남자가 사랑할 때〉,〈더 이상은 못 참아〉까지 지난 4년 동안 다양한 캐릭터로 안방극장에서 ‘연기자 오영실’의 이름을 알렸다. “연기의 맛을 알아가니 이제 재밌더라고요. 주변 반응도 좋고요. 좀 힘들긴 하지만 이게 할수록 푹 빠지게 돼요.” 오영실은 2013년 들어 또 하나의 도전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말 첫 방송한 케이블채널 tvN 〈감자별2013QR3〉로 생애 첫 시트콤에 도전하는 중이다. MBC〈하이킥〉 시리즈의 김병욱 PD가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여주인공 하연숙의 ‘엄마’ 길선자 역을 맡았다. 나이를 거꾸로 먹은 사차원 캐릭터의 사고뭉치 엄마다. 연기자가 3막이라면 장르가 다른 시트콤으로 3막 2장을 연 셈이다. “김병욱 PD의 시트콤이라는 얘기에 별 생각 없이 도전했는데 아, 이거 참 쉽지 않네요. 하하하. 일주일에 네 번 찍다 보니 밤샘 촬영도 많아요.” 그래도 후회는 않고 있다고. ‘시트콤의 귀재’ 김병욱 PD 작품은 오영실에게도 많은 감동을 안기고 있다.


“대본을 받을 때마다 매번 감동이에요. 대본 보면서 울고 웃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김병욱 PD는 정말 천재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대본만으로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드는지…. 밤샘 촬영할 때는 속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디서 이렇게 감동받으면서 일하겠어요. 연기자라는 직업 참 잘 택한 것 같아요.”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 방송인으로, 또 연기자로. 안정됐다 싶을 때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오영실의 모습은 꿈을 잃고,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중년들의 마음을 뜨끔하게 한다. ‘뜨끔’에서만 그치지 말고 오영실처럼 ‘냅다’ 새로운 길에 뛰어드는 건 어떨까. 가끔은 많은 생각이 새 인생을 방해할 때도 있다. 일단 저지르자. [NH은퇴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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