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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죽음 앞에 서보니 사랑을 알겠더군요

"사제와 주교로서 평생을 살았지만 저 스스로 죽음 앞에까지 다녀오니 "하느님의 사랑을 얼마나 전했는가, 머리만으로 사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람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전할 방법을 찾다가 호스피스 봉사를 택했습니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장을 지낸 이문희(李文熙·74) 대주교가 호스피스 교육을 받고 있다. 이 대주교는 지난달 대구가톨릭병원에서 말기 암환자 자원봉사 기본교육을 받고 지금은 매주 1회씩 10주간 심화교육을 받고 있다. 이 대주교는 교육을 마치면 호스피스 봉사에 나설 예정이다. 대교구장을 역임한 천주교 고위 성직자가 호스피스 활동을 하는 것은 국내에선 유례가 없는 일이다. 지난 15일 대구 대명동 예수성심시녀회 구내 숙소에서 만난 이 대주교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이문희 대주교는 경북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정치로는 부족한 것 같아" 천주교 사제의 길에 들어섰다. 그의 부친은 천주교 평신도 활동도 활발히 한 이효상(李孝祥·1906~1989) 전 국회의장이다. 프랑스 리옹신학대와 파리가톨릭대에서 신학을 전공한 후 1965년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그는 1972년 주교가 됐고 1986년부터 대구대교구장을 지냈다.

2007년 봄 21년 만에 대구대교구장 직을 은퇴한 이 대주교는 이듬해 1월 식도암 진단을 받고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후 무려 40일 동안 물은커녕 침도 삼키지 못하는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마침 예수님 부활을 앞둔 사순절(四旬節) 기간과 겹친 투병 과정은 그에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 그는 "특히 예수님의 계명인 "사랑"을 새삼 느끼게 됐다"고 말한다.

 
- ▲ 암 투병 후 호스피스 봉사 교육 받는 이문희 대주교
투병기간 이 대주교가 사랑에 대해 묵상한 내용은 지난 연말 펴낸 영적 고백록인 《저녁노을에 햇빛이》(대건인쇄출판사·비매품)와 최근 나온 두 번째 시집 《아득한 여로》(문학세계사)에 잘 녹아 있다. 그는 책에서 "고통도 사랑이 주는 것이다. 고통을 참으로 알고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실제로 나도 수술실에 들어갈 때와 수술이 끝나고 병실에 있을 때와는 하느님을 생각하는 내 태도가 같지 않았던 것을 말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시집의 서시(序詩)인 〈자화상〉에서는 "살수록 일그러지는 내 모습을 보며/ 지금이라도 자화상을 그려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나도 한 사람이었음을 그려놓아야 한다"고 적었다.

퇴원 후 한동안 자신이 "대장"을 맡는 거창한 "사업"도 계획했지만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호스피스 활동을 택했다는 게 이 대주교의 설명이다. 그는 실제 봉사에 투입되면 우선 사제와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호스피스 활동을 예정하고 있다. "아무래도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제가 돌봐주면 더 좋아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이다.

그는 인터뷰 전날(14일) 선종(善終)한 대구대교구 박창수 몬시뇰 이야기를 꺼냈다. "세 살 위이지만 친구처럼 막역하게 지낸 분이라 마지막엔 거의 매일 병실을 방문하다시피 했는데 막상 임종은 못했어요. 도착했을 때는 기계의 그래프가 "한 일(一)"자로 죽 이어지고 있었는데 제가 몸을 쓰다듬자 순간 그래프가 "출렁" 하더군요. 저를 기다렸던 것일까요…." 그처럼 하느님께 가는 마지막 길을 곁에서 지켜주면서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이문희 대주교는 "죽음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고, 죽음을 알아야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저 역시 하느님이 부르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만 결국 우리가 잘 사는 방법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인 사람에게 구체적인 사랑을 전하면 더욱 좋겠지요."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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