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5년 4월 21일, 88세의 나이로 바티칸에서 선종했다. 일부 공개된 유언에 따르면 교황은 자신의 무덤을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게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비문에는 자신의 라틴어 이름인 "프란치스코(Franciscus)"만 새겨달라고 했으며,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바티칸 밖에 있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지하에 안장되기를 희망했다.
교황은 안장 장소가 이미 준비되어 있으며, 성당의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 통로에 묘소를 마련해 줄 것을 당부했다.

선종 전날인 4월 20일, 교황은 부활절을 맞아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 부활절 메시지를 전했다. 휠체어를 타고 성베드로 성당 발코니에 나타나 수천 명의 신자들 앞에서 "형제 자매들, 즐거운 부활절입니다"라고 천천히 말했으며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이 평화는 없다"는 메시지가 대독되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또한, 교황은 생전 마지막 부활절 강론에서 "가자지구의 상황이 개탄스럽다"며 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을 촉구하고 인질을 석방해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는 굶주린 이들을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이는 교황이 세상에 전한 마지막 메시지가 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으며,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했지만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빈민 사목을 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축구를 즐겼으며,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하면서 2013년 3월 19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즉위했다.

그는 최초의 예수회 교황이자 최초의 아메리카 대륙과 남반구 출신의 교황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갖고 청빈과 순명의 상징인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인'을 교황의 명칭으로 처음 사용했으며, 역대 교황 중 손꼽히게 인기가 높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에 현실 참여에 적극적이었다. 2013년 9월에는 "사회 체제의 중심에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교황이 된 이후에도 가난한 이들의 삶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왔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으며, 2014년 8월 14~18일 한국을 방문하여 북핵 문제를 대화로 풀어달라며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