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로부터 법적인 하자가 없다는 공식답변을 접수한 후, 상조이행보증주식회사는 활발한 홍보와 전문언론의 공신력에 힘입어 착실한 발전을 이어 나갔다.
15년 전 당시 하늘문화신문은 매우 유력한 전문언론이었다. 신문을 인쇄하면 먼저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전국의 보건복지 관련 지방자치단체 부서와 관련 기관, 단체에 일일이 무료로 발송해 주었고 어느 지역이든 상조회사 설립 사실이 알려지면 곧바로 주소를 확인하여 신문을 발송해 준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 이유로 전국적인 인지도가 매우 좋았다. 신문 지상에 상조이행보증 시스템의 내용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보증시스템에 가입하는 상조회사 명단을 올 칼라 전면에 지속적으로 소개해 나갔다.
당시의 상조업계 상황으로 말하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의 신뢰도를 좀 더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필자의 상조이행보증 시스템이 비록 완벽할 수는 없었지만 회원모집 마케팅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우후죽순 설립되는 상조회사의 증가와 동시에 이행보증회사의 재정도 운영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안정이 되고 상조업계에서 이 시스템을 모르는 회사가 없을 만큼 자리가 잡혀 갔다. 가입한 후 얼마안가 월불입금을 이행하지 않는 회사와 새로 가입하는 회사가 분주하게 교차되었다.
관련 기사 --> 상조회사의 신뢰도 제고를 위한 노력 (클릭) (2007년 3월 9일)
☞ 상조이행보증(주)" 가입 회원사들의 모임이 점차 진지해 지고 있다.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고객만족에 의한 기업의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문제점을 함께 나누고 상호 협력을 위한 방안을 토론하는 기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서교동 좋은상조(주) 회의실에서 가진 모임은 대전은 물론 멀리 울산과 부산에서도 일찌감치 참석한 회원사들이 열심히 경청하고 의견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는 상조회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현황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찾아 개선할 점을 찾아 보는 기회였고 또 우리나라에서 상조회사의 신뢰도를 위해서는 최선의 방안으로 역무공제 성격의 상조이행보증 시스템이 그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전국에 걸친 상조행사에 가입회사들이 서로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였고 또 우리나라 중상층 고객들에게는 상조업무가 거의 올바른 인식이 안된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서비스의 질적 향상 문제도 주요 관심사로 나와 물품과 서비스 내용의 전국적 통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상조이행보증(주)’는 ‘하늘문화신문’과 함께 일본의 우수한 상조회사 CEO를 초청하여 상호 교류를 증진하고 업무의 효율적 향상을 위한 기회로 교환연수를 진행키로 했다. --> [당시 기사 내용]
필자의 상조이행보증 시스템에 동참한 당시 상조회사들을 지금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으나 그 중에도 몇몇 회사를 기억에 떠올리며 오늘 현실의 거울로 삼아 보고자 한다.
당시 상조회사를 설립한 대부분 오너들은 대형 상조회사를 퇴사한 임원, 그리고 보험영업 출신들이 많았다. 필자의 상조이행보증주식회사에 가장 먼저 가입한 회사는 지금은 거액의 펀드를 투자받아 탄탄대로를 달리는 J상조주식회사(당시 이름)였다. 김OO 회장은 국내 B상조그룹 임원 출신으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막 퇴사 후 몇몇 마음 맞는 사람들과 상조회사를 막 설립한 시점이었다. 2004년 정도로 기억하지만 필자가 상조이행보증을 인수 받은 후 강동구 성내동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했는데, 소식을 듣고 찾아 온 그의 표정이 처음에는 실망한 모습이었다. “보증”회사 치고는 외관이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막 상조회사를 의욕적으로 설립후 본격적으로 영업을 펼쳐나가야 할 시점이었으므로 고객들의 신뢰를 창출하는데 적극 노력해 나가 속히 자리를 잡을 계획이라는 필자의 진정성이 통했는지 기꺼이 가입절차를 밟았다, 그로부터 약 7년간 공정위의 공제제도가 출범하여 공식적인 업무를 수행하면서 필자의 상조이행보증 시스템의 막바지까지 그는 필자와 마음을 맞추어 모든 일에 협력하고 동행하는 관계를 지속했다.
김회장과 J상조의 훌륭한 점은 장례행사 노하우가 매우 탄탄하게 출범하였고 그 조직을 전국적으로 펼쳐나가면서 고객들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신뢰를 쌓아 갔고 소상한 내용을 홈페이지를 통해 성실하게 반영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마디로 믿음이 가는 상조회사란 인식을 심어 주기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본다, 그런 신뢰도가 펀드의 눈에 띄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또 하나의 회사는 지금 국내 1위를 지부하고 있는 “P라이프“인데 비록 1년이란 짧은 기간 필자의 상조이행보증 회원으로서 당시에도 한창 유행 중이던 홈쇼핑 광고에 우리 이행보증서를 1초 정도만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즉 ‘이행보증’이란 명분에 전적으로 신뢰를 가질 수는 없으나 마케팅에 필요한 콘텐츠라는 사실만은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로 보였다. 오너 P회장은 당시 부산소재 상조협회 동참한관계로 서울과 부산에서 수시로 만나 대화를 나누는 관계를 지속했다.
학계에서도 필자의 ‘상조이행보증’은 이론적일망정 교수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는데 지금은 유수 대학의 장례학과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는 모씨는 공영업체 중간 간부로 재직하면서 해당조직내에 장례서비스 사업을 펼치면서 필자의 ‘이행보증서’를 받아 간 경우도 있다. 또 지금은 국내 일류 상조그룹의 총괄 사장으로 있는 S사장도 당시 상조회사 대표를 거쳐 장례학과 주임교수로 수고한 경력도 가지고 있는데 그도 짧은 기간이나마 이행보증의 고문으로 동참해 주었다. 상조회사들은 여러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일단 가입은 하였으나 증서만 이용하면서 회원사 의무는 아예 이행하지 않는 경우, 가입한 후 몇 개월 가다가 유명무실해지는 경우, 상조회사를 신설하면서 필수 요건으로 이행보증 가입 신청만으로 끝난 경우, 가입과 탈퇴를 반복하는 경우 등 등 여러 모습들이 필자의 뇌리에 명멸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상조회사들은 이행보증 시스템의 명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고객 확보에 성과를 올리는 모습이었다. 지금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는 모 상조회사는 영업책임자가 본 이행보증의 신뢰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온,오프 영업전선에서 아예 이행보증 시스템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케이스, 때때로 전화로 고객을 대면시켜 주면서 설명을 대신해 주기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지금도 잘 하고 있는 모 상조회사는 이행증서를 잘 활용하여 영업조직을 의욕적으로 확장해 가면서 창립기념 이벤트에 필자에게 축사를 요청해 온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통 크게 필자의 상조이행보증 시스템을 통째로 인수하려는 의사를 내비치는 케이스도 있었다. 이런저런 상황을 보고 들으면서 사업이 잘되고 못되고는 재정만이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사업자들의 사업 마인드와 자세가 가장 큰 원인이라는 사실을 필자는 말하고 싶다.
필자는 언론일과 동시에 장례업도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업계와 사업자를 보는 눈이 있어 이런저런 관계를 맺는 수많은 상조회사 오너들의 사고방식과 경영마인드가 쉽게 눈에 띄었다. 상조이행보증시스템이 2004년부터 7년간, 이런 저런 모양으로 상조이행보증 시스템에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은 상조회사는 약100개 정도 업체가 될 것으로 기억하는 바, 마지막까지 지속적으로 관계를 계속 유지한 상조회사는 50개 정도인데 당시 상황으로 보면 약 30% 정도가 상조이행보증과 관계를 맺었다고 볼 수 있다. (계속)
다음에는 상조이행보증 회원사들에 대한 경영 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들을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