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도착하여 시내를 지나니 옛 신라의 수도답게 초가집만한 커다란 고분들이 여기 저기 눈에 들어 와서 다른 도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오전 11시에 행사장에 도착하니 보슬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10여명의 행사요원들이 행사용품들을 나르느라 분주했으며 화환들을 배달하느라 꽃집 아저씨들도 빈번하게 오고 갔다. 행사장 안에는 염습경연대회답게 마네킹, 수의, 한지, 염습용품 등등이 가지런하게 진열이 되어 있었다. 예정시간 2시 정각이 되어 행사가 진행되고 개회선언과 더불어 여러 순서가 진행되었으며 간간이 경주여자정보고 관악부에서 연주를 하여 행사의 분위기를 북돋아 주었다. 제 2부에 들어 본격적인 염습경연대회가 개최되었고 먼저 메이컵 특수 분장팀이 사망시 각종 모습을 현장감 있게 보여 주었으며 8개조의 염습 재연팀이 나왔는데 불교, 천주교, 기독교 및 대전보건대학, 동부산 대학, 서라벌 대학, 창원대학 장례지도과에서 참가하여 각 지역별, 종교별 특성을 보여주는 염습을 실행하여 생동감 있는 현장모습을 보여 주었다. |
시상자는 등수를 부여하지는 않았으나 “서라벌 충.효.예”가 최후에 호명되었고 상금이 제일 많았으므로 아무래도 1,2,3등이라 볼 수 있겠다. 이 세 곳 중 충에 해당하는 곳은 창원상조팀이었는데 서양식 장례 모습을 재연했는데 고인이 평상시 즐겨 입었던 양복을 입히고 한지로 간단히 묶고 입관하여 관안에 전체적으로 하얀 장미로 장식을 하였으며 명정하단에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 넣은 작품이었다. |
이로 볼 때 우리나라 장례도 고인에 대한 예와 종교적 참여 정신에 더하여 아름답게 꾸미는 미를 중요시하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엿 볼 수 있었는데 염습에 대한 전국적 특성과 종교적 모습을 한곳에서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경연대회였으며 귀중한 공부가 되었다는 참가자들의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행사의 진행에 있어서 아쉬운 점은 추진본부측이 전체적으로 다소 지루하게 진행하였고 참석자들이 진행 측의 요구에 잘 따라 주지 않아 다소 무질서한 분위기도 눈에 띄었다. 전체 진행을 살펴보면서 한 두가지 문제점이 있었고 차후에는 고쳐야 할 점이라 생각되는 것은, 대회기원제를 열어 제사를 지루하게 20여분간 지냈으나 원만한 진행을 위해 이 부분은 생략을 하든지 아니면 좀 더 간단하게 진행하여 시간을 절약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전반적으로 유서 깊은 도시에서 염습대회가 개최된 것도 의미가 있었고 전국의 각지에서 참가하여 다양한 한 마당을 만들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취재기자 김중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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