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년마다 자살예방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하는 국내 자살률이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정책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지금보다 60% 이상은 줄어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맞출 수 있는 형편이다. 16일 보건복지부, 한반도선진화재단,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의 분석 자료를 보면 지난 2016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로 측정한 자살률은 28.7명으로 OECD 국가 평균 자살률(12.1명)을 압도한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자살률이 급증한 후 소강상태였다가, 2003년 카드 대란 때 다시 치솟은 후 다소 낮아졌다. 그러나 이후 현재는 OECD 평균과 견줘 2.5배에서 3배까지 높아진 상황이다. 미국·일본의 자살률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채창균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OECD 국가들보다 자살률이 너무 높고 가장 심각하다”며 “지금보다 60% 가까이 줄어야 OECD 평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4년 제1차 자살예방계획 수립 당시 자살률은 29.5명으로, 5년 후 자살률 20명 이하가 목표치였는데 상황은 오히려 악화해 사실상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살예방 국가정책의 역할’을 통해 “2014∼2015년에는 자살예방 국가전략이 실종되기도 했는데 자살예방법에 따라 국가가 5년마다 한 번씩 종합대책을 만들고 진행하도록 법 규정이 있는데도 2년이나 정책이 부재한 것은 국가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살 원인으로 10대는 학교 성적 및 진학 문제, 20∼60대 이후는 경제적 어려움과 빈곤이 꼽힌다.
특히 높은 청년실업률, 과도한 장시간 근로 및 비정규직, 열악한 복지제도와 의료시스템, 줄 세우기에 급급한 교육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복지부가 지난 10일 6개 관련 부처(청)와 함께 ‘생명존중정책 민관 협의회’를 출범시켰지만, 자살률 상승에 대한 종합 대책으로는 다시 한계가 따를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채 선임연구위원은 “특정한 한두 부처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사회부총리를 중심으로 특별위원회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유럽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의 자살 예방 전문가가 방한하여, 한국의 자살예방업무에 대한 관심과 함께 특별히 마포대교의 자살방지 시스템을 현장에서 확인한 후 신속한 효율에 놀랐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마포대교를 찾은 스웨덴 교통안전국 특별고문 케네스 스벤슨 박사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16일부터 18일까지 제주에서 열리는 제18차 5대륙 국제교통안전 컨퍼런스 참여차 방한했다. 스웨덴에서 교통 안전ㆍ자살 예방 정책을 연구하는 전문가인 스벤슨 박사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자살예방협회를 방문해 한국 자살 예방 정책을 공부했다. 최근 스웨덴에서 교통사고로 위장한 자살이 늘면서 교통 사망 사고 발생 시 자살인지, 사고인지 조사하는 시스템이 신설됐다고 한다. 그는 “교통과 관련된 자살을 줄이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스벤슨 박사는 “마포대교을 돌아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마포대교는 서울에서 투신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다리라는 오명을 쓴 곳이다. 그는 “다리 위에서 벌어지는 자살을 막기 위한 시스템을 눈으로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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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에는 소중한 생명을 살리기 위한 여러 손길이 닿아있다. 2011년 7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ㆍ한국생명의전화가 한강 교량의 투신 자살을 예방하려 마포대교 등 한강 다리에 ‘SOS 생명의전화’를 설치했다. 지금까지 전국 21개 교량에 전화기 79대가 설치됐다. 비상벨이 울리면 119구조대가 즉각 출동하는 시스템도 만들어졌다. 서울시는 2016년 6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난간을 1m가량 더 높였다. 기존 난간은 성인 남성 가슴 정도의 높이였다. 스벤슨 박사는 “마포대교의 자살과 관련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논쟁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갈수록 자살예방에 우선순위를 두고 생산적인 논쟁이 이루어지고 대책에 반영됐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스웨덴에서도 다리 위에 사람을 위한 안전 펜스를 의무화하는 것이 논의되는 시점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며 “모든 다리에 마포대교와 같은 높은 펜스를 설치되면 좋겠다”고 했다.
백종우 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경희대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안내로 다리를 돌아보던 스벤슨 박사는 우연히 비상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자살시도자를 목격하고 생명의전화에 설치된 비상벨을 누른 것이다. 백 교수는 “5분도 안돼 구급차 3대, 해상구조선 2척 등 20여명의 소방관이 출동해 자살시도자를 수색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7년간 생명의전화상담ㆍ신고를 통해 1만77명의 생명을 지켜냈다. 이 광경을 지켜본 스벤슨 박사는 “비상벨이 울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 20명 이상의 소방관이 출동했다. 다리 위는 물론이고 강 위에서 보트까지 동원해 수색과 구조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고 매우 놀랐다”라고 전했다. 그는 “다리의 건축구조적 측면과 함께 응급구조서비스와의 연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감탄했다. 백 교수는 “이러한 시스템이 생명을 살리고 국격을 높인다고 생각한다”며 “스웨덴 전문가도 놀랄만큼 선진적인 정책이 빠르게 적용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자살률 1위 나라에서 벗어 날 것이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해당기사 출처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