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품위있는 죽음위한 임종실의 필요성[업데이트]

 
●품위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
병원마다 문상객을 위한 영안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화려하면서도 정작 환자를 위한 임종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초라해 주객이 전도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 많다. 특히 가정 임종이 줄고 병원 임종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 문제에 대한 환기가 필요하다.

◎지난 13일 서울 S의료원의 6인 병실. 폐암 말기 환자인 A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삶의 마지막 불꽃을 겨우 살려내고 있었다. 오랜 병간호로 지쳤으련도 하건만 가족들은 침대를 에워싼 채 기도와 눈물로 환자에게 힘을 보탰다.

나머지 다섯 침대에 누운 중환자 중 일부는 병실 밖으로 몸을 옮겨 차마 볼 수 없는 장면을 피했으나 거동이 어려운 환자는 "동료환자"의 최후를 두려움 속에 그대로 지켜봐야 했다. A씨 역시 닷새 전에 똑같은 체험을 했다.

건너 침대에서 숨을 거둔 말기 대장암 환자 B씨의 임종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짝 야윈 얼굴의 이 대장암 환자는 몇 시간 전만 해도 애써 말을 붙여오며 동병상련을 나눴다.
A씨가 B씨의 마지막을 보고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듯이 다른 환자들 역시 A씨의 임종을 지켜보며 곧 닥쳐올 자신의 운명에 대해 절망하고 있었다.

모든 생명에 시작이 있듯이 끝도 반드시 있다. 시작이 탄생이라면 끝은 죽음이다.
하지만 탄생의 순간에 받는 축복만큼 죽음의 순간에 존엄한 대접을 받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게 솔직한 현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듯이 품위있는 죽음을 맞을 권리도 있으나 대부분의 삶은 어수선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현대 한국인에게 존엄하고 품위있게 생을 마감하기에 적합한 공간이 있는가?

죽은 이후에 상주가 문상객을 맞는 영안실은 병원마다 큰 공간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성업 중이나, 죽어가는 순간에 임종자가 편안히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이른바 "임종실"(臨終室)은 좀처럼 찾기 힘들다. 임종실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보도가 간혹 나오고, 종합병원에 임종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법안이 한때 발의되기도 했으나 이후 별다른 변화 없이 유야무야한 느낌이다.

한국에서 절반 이상의 중환자들은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임종했던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나 앞의 사례에서 봤듯이 병원에서 맞는 죽음은 대부분 매우 비인간적이다. 날로 건물이 높아지고 내부가 세련돼지는 병원의 외형과 달리 죽음 공간은 이렇다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웰빙(well-being)에 쏠려 있을 뿐 웰다잉(well-dying)이나 웰엔딩(well-ending)에 눈길을 주는 데는 무척 인색하다. 상당수의 중환자가 병원에서 최후를 맞는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임종실 또는 영면실(永眠室)은 그런 장소에 마련돼야 마땅한 듯하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임종실이 없는 실정에서 극히 일부만이 1인 병실로 옮겨져 임종실처럼 쓰고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중환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같은 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심지어 환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소생술이라는 이름으로 최후의 순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환자가 죽을 경우 나머지 환자들은 충격 속에 자신도 미구에 저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최준식 한국죽음학회 회장(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은 "죽음이 임박하면 환자와 가족만 있을 수 있는 방인 임종실로 옮겨 환자가 일생동안 사랑했던 가족과 차분히 작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나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긴요한 방을 가진 병원이 극소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한국병원협회에 따르면 국내에는 현재 1600여 개소의 병원이 운영되고 있다. 이중 100병상 이상을 갖춘 종합병원은 1000여 개소에 이른다. 이들 병원은 거의 빠짐없이 영안실을 두고 있으나 영면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강남성모병원 등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남을 정도다.

매년 사망하는 암환자 6만5000여 명 중 임종실에서 숨을 거두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거꾸로 말해 나머지는 제대로 된 죽음의 공간에서 존엄하고 품위있는 마지막 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가정에서 임종했으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국립암센터 자료를 보면, 1999년만 해도 가정에서 사망하는 암환자가 57.6%를 차지했으나 이듬해부터 50% 미만으로 떨어졌고, 2002년에는 45.2%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병원 사망자는 1999년 32.2%였으나 해마다 증가세를 보여 2002년에는 43.5%로 급격히 높아졌다. 통계청 자료도 이와 비슷한 추세를 반영한다.

병원 사망이 1992년 16.6%에서 2001년 39.9%로 증가한 반면, 자가 사망은 72.9%에서 49.2%로 떨어졌다. 다시 말해 병원 내 임종실 설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날로 고급화하는 영안실과 달리 중요도가 그보다 더 높을 듯한 영면실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준식 교수는 "정작 필요한 영면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서 영안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더 높아가는 것은 일의 선후가 바뀐 것"이라며 "이는 한국인들이 아직 죽음을 정면으로 대하고 더 깊게 생각해볼 단계에 이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은 모든 호스피스 기관이 임종실을 별도로 설치하도록 연방법으로 규정해놨다. 대만 역시 2000년 호스피스센터에 임종실을 두도록 "자연사법"을 법제화했는데, 이들 시설을 이용하면 정부가 적극 지원한다. 일본도 1993년에 규정을 마련한 뒤 2000년부터 보험제도로 수가를 적극 지원해 지금은 전체 임종환자의 90% 가량이 호스피스 임종실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둔다. 말레이시아가 임종실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한 것은 1998년이었다.

그에 비해 한국은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이 부분에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근래들어 임종실 설치 병원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는 것이다. 1988년부터 오랫동안 홀로 임종실을 운영해온 강남성모병원 외에 분당 보바스기념병원, 순천 성가롤로병원, 대전 성모병원 등이 최근 임종실을 마련했다. 서울대병원이 지난해 7월 임종실을 개설한 것도 눈에 띈다.

임종실은 환자만을 위해 필요한 공간이 아니다.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이나 이웃환자들에게도 편안하지 못한 임종의 순간은 고통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사망 후 몇 시간 동안 병실에 시신이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도 많아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2004년에 환자 10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부담주지 않음"(27.8%)을 꼽았고, 이어 "가족이나 의미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26.0%)을 들었다. 그만큼 독립된 임종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론 가장 좋은 임종공간은 자택이나, 시신 운구가 쉽지 않은 아파트가 일반화하고 셋방 거주자가 많은 현실을 고려할 때 병원의 임종실 설치는 긴요하다.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의 같은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과반수인 54.8%가 이상적인 임종장소로 자택을 선택했고, 병원과 호스피스 기관은 28.0%, 7.9%에 그쳤다.

환자들이 자택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
(68.4%)이라고 말해 환자가 자택 임종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반영했다. 참고로, 미국의 갤럽 여론조사 결과 환자들의 자택 임종 희망 비율이 무려 90%에 이르러 우리보다 가정의 소중함을 더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e-헬스통신] 제공
.
.
 
- 병실에서의 죽음 - 뭉크
.
.
●병원 임종실 <설치 장애>
◎1천여 종합병원 중 임종실 보유시설은 극소수
◎영안실 화려하나 영면실은 초라해 주객전도
◎법적ㆍ제도적 뒷받침 안돼 병원서 도입 꺼려

▣"의료인조차 죽음 몰이해" 관점 전환 주문도
서울 강남에 있는 C의료원. 이 병원에는 31평에서 76평에 이르는 영안실 빈소 18실을 두고 있다. 시설이 좋고 주변환경이 쾌적한 편이어서 늘 이용객들로 붐빈다. 하지만 1천 병상이 넘는 이 병원에는 임종환자를 위한 별도 공간이 없다. 즉, 병실과 빈소 사이의 시설인 임종실이 생략돼 있는 것이다.

임종실이 없기는 대부분의 다른 종합병원들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다인 2천200병상을 자랑하는 역시 서울 강남의 D병원도 35평에서 170평에 이르는 빈소를 모두 25개나 운영하고 있지만 임종실을 별도로 두고 있지 않다. 1988년 강남성모병원이 최초로 임종실을 홀로 운영해오다 근래들어 부천 성가병원, 청량리 성바오로병원, 순천 성가롤로병원, 대전 성모병원 등 가톨릭계의 병원을 비롯해 서울의 서울대병원 등에 임종실이 생긴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겠다.

다시 말해 임종실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를 설치하는 병원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국에 종합병원이 1천여 개소가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는 아직도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줄잡아 매년 6만5천여 명의 암환자가 삶을 마감하는 현실이지만 임종실 숫자는 제도와 인식의 장벽에 막혀 조만간 크게 늘 것 같지도 않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박성범 의원은 2004년에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해 주목받았다.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의료기관 가운데 종합병원만이라도 임종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현행 의료법의 시설조항(제32조)에 임종실을 포함토록 하자는 것이었다.

박 의원은 개정안 제안 이유로 "수많은 암환자가 병원에서 숨지고 있으나 현행법 미비로 국내 병원엔 대부분 임종실이 없어 환자들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영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종합병원에라도 이 시설을 두어 환자와 가족의 공포와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자는 게 취지였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국회에 제출된 상태에서 유야무야됐다. 대한병원협회 등이 의료법 개정에 반대함으로써 추진력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병원협회는 당시 "임종실 설치의 입법취지에 대해선 공감하지만 의무적으로 설치할 수는 없다"며 선을 분명히 그었다.

협회는 "종합병원은 응급환자를 포함해 급성기질환의 진료가 주목으로 설치된 곳"이라고 병원의 기본성격을 밝혔으나 반대의 이면에는 경제적 이유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됐다. 임종실 비용이나 건강보험의 급여 여부, 급여 수준 등이 논의되지 않은 마당에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을 병원에 설치할 수 있는 법적ㆍ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뒤에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병원협회는 왜 이렇게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걸 반대할까? 한 마디로 지금의 상태에서는 임종실 설치가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 부담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호스피스센터나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한 미국이나 대만 등은 의료수가를 인정하는 등 정부가 정책적 차원에서 적극 지원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임종실에 대한 별도의 지원이 없어 병원으로선 경영압박의 한 요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임종실은 1인실 단위로 운영하게 되는데, 다인실 기준의 의료보험 수가로는 병원으로서 손실을 보전할 길이 없다.

예컨대, 서울 강북의 E의료원은 1인실의 하루 이용료가 35만-65만원에 이르나 임종자가 있을 때만 사용하는 임종실로 전용할 경우 수가 적용이 안돼 고스란히 손실처리될 수밖에 없다. 이 의료원도 최근 새 건물을 지으면서 임종실 용도의 공간을 마련했으나 요즘엔 사실상 1인용 일반병실로 전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종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 않은 병원에서는 1인실을 임종실 용도로 사용한다. 하지만 비용이 비싸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해 다인실에서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 환자의 공포와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하는 처지다. E의료원의 한 간호사는 "현 상황에서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분들에게는 비용이 저렴한 다른 시설의 사용을 권하는 실정"이라면서 "다인용 병실과 같은 의료보험이 적용된다면 이 분들도 부담없이 임종실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병원과 대형병원들이 경제적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접근하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림대 철학과 오진탁 교수는 "정부 지원과 무관하게 임종실은 당연히 병원 차원에서 해결하려 해야 한다"며 "안타깝게도 국내병원 중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는 곳 자체가 드물고 그중에서도 임종실을 두고 있는 병원은 더더욱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
.
 
- 병실에서 환자와 호스피스의 대화
.
.
●병원 임종실 <강남성모병원의 경우>

◎1988년 국내 최초로 임종실 개설해 20년째 운영
◎가장 전망 좋은 곳, 임종자-가족의 편안한 작별
◎아름다운 기억의 마지막 장소,수익 무관해 운영

▣"호스피스 개념의 연장선에서 임종실 바라봐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 잡고//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1988년에 국내 최초 임종실로 설치돼 올해로 20년째를 맞은 강남성모병원의 임마누엘방. 네 평 가량의 이 임종실 벽에 걸려 있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인의 노래처럼 이 방에서 삶을 마감하는 모든 이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다.

이 방에는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로 시작하는 샤를 드 후코의 "위탁"의 기도도 내걸려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무엇에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다고 온 몸과 마음을 낮추어 다짐한다. 침대 양 옆에 놓인 두 개의 화분과 침대에서 건너다 보이는 벽에 걸린 정물화가 성모상, 십자가상, 성서 등과 더불어 임종자의 평안함을 최대한 돕는다.

호스피스 병동의 책임을 맡고 있는 최상옥 수녀는 "벽을 하얗게 칠한 일반 병실과 달리 따뜻한 벽지로 바름으로써 가시는 분들이 이승의 생애를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한다. 임마누엘방을 호스피스 병동 중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에 배치한 것도 그 같은 배려 때문이다. 남향의 아늑한 병실에서 내다보면 꽃과 녹음으로 가득한 숲이 눈 앞에 펼쳐진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를 임종방으로 옮기느냐 마느냐는 의사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의료적 기준에 따라 회생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죽음이 임박했다고 판단될 때 임종자가 가족과 가장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고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 방에는 불필요한 연명장치가 없다는 점에서 치료 목적의 일반병실과 다르다.

천주교계가 운영하는 병원이지만 임종자나 가족이 원한다면 불교의 찬불가, 개신교의 찬송가 등 어떤 음악도 가리지 않고 틀어준다. 가래를 빼고 산소 호흡을 돕는 기구는 물론 마지막 대화를 기록할 수 있는 녹음기도 비치돼 있다.

최상옥 수녀는 "호스피스 병동을 거쳐 임종방에 오는 동안 임종자와 가족들은 묵은 감정을 충분히 정리하고 서로에 대한 고마움을 고이 간직하고 있기에 이별은 대부분 차분하고 경건하게 이뤄진다"고 들려준다.

임종방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있거나 입원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임종만을 떼어서 생각하지 않고 호스피스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최상옥 수녀의 당부이다. 임종실의 기능과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호스피스 개념의 연장선에서 임종을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호스피스는 완치가 불가능한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사랑으로 돌보는 활동을 말한다. 환자가 남은 생애 동안 질 높은 삶을 유지하면서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맞도록 도와주는 일이며, 나아가 가족들에게도 고통과 슬픔을 덜어주는 총체적 간호행위인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적극적인 항암치료 시행이 더이상 환자에게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되는 말기암 환자 △통증완화와 증상관리를 필요로 하는 환자 △의식이 명료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환자가 입원하게 된다. 즉, 치료보다는 돌봄의 관점에서 환자를 간호하되 상황이 나빠졌을 때 심폐소생술 등 무의미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좋다는 동의서를 가족이 제출해야 한다. 물론 변비, 복수, 황달, 구토 같은 증상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관리하게 된다.

환자와 가족의 편안함과 상호이해가 최대의 목적인 만큼 이 호스피스 병동이 옥상에 두고 있는 "하늘공원"은 환자와 가족들에겐 천국과 같은 곳이다. 화분과 잔디로 꾸며진 이 정원에는 벤치가 곳곳에 놓인 가운데 여러 사람이 함께 탈 수 있는 그네도 설치돼 있어 눈길을 끈다.

최 수녀는 "환자들이 햇빛을 보면 너무너무 황홀해하며 기분좋아한다"며 "일반인의 출입이 안되는 이 하늘공원은 환자와 가족만의 공간으로 오랫동안 병실에 갇혀 지내는 분들에게는 일탈의 장소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특히 흔들그네를 타면서 화해하는 모습들은 보는 이의 콧끝을 짜릿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병원이 처음으로 임종방을 도입했을 때는 일반의 이해도가 낮았으나 최근엔 곳곳에 임종방이 생겨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최 수녀는 다행스러워한다. 아쉬운 것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많이 병원들이 선뜻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최 수녀는 "우리 병원은 경영의 관점을 떠나 임종실을 두고 있으나 다른 병원들도 부담없이 임종실을 설치하게 하려면 다른 선진국처럼 법적ㆍ제도적으로 임종방을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임종실에 대한 이해가 아직은 낮아 일부에선 "완화의료"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그 거부감을 줄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임종 역시 삶의 한 부분이며 임종실은 죽어가는 곳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사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거부감을 가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탄생과 만남의 기쁨 만큼 죽음과 이별의 경건함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때인 것이다.

웰빙과 웰엔딩은 단절돼 있는 게 아니라 상호 연결돼 있다. 과거엔 주로 집에서 이뤄졌던 임종을 병원이 대신하는 추세인 만큼 병원이 "죽음을 맞이할 적합한 장소"라는 의식의 확산과 노력을 정부와 병원 측이 공히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배너

포토뉴스


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발행인 칼럼

더보기
[칼럼] 상조단체 상조협회 이야기
조직이란 소속된 구성원들의 친목과 함께 공동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란 점이 핵심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상조산업계도 2021년을 기점으로 비영리 공인 단체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전국적인 단일조직은 아니지만 어쨋든 공식 '사단법인'이란 점에서 의미있는 발전이다. 한국상조산업협회는 설립 허가를 받은 후 박헌준 회장 이름으로 “공식적인 허가 단체로 거듭난 협회는 회원사와 더불어 장례문화발전과 상조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기자는 관련 기사에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희망사항을 곁들였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상조산업의 문제점은 원래의 본향이었던 상부상조, 아름다운 품앗이의 핵심, 장례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의례서비스의 근본을 떠나 소위 결합상품 내지는 의례와 거리가 먼 라이프서비스로 주업태를 변경시켜 가며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조고객의 대부분이 미래 장례를 목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면 상조산업 발전과 장례문화 발전이 동일한 의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자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상조산업협회'가 설립목적으로 명시한 "상조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

해외 CEO 칼럼 & 인터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