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거야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거야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랫동안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 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 죽으로 해야지
아마 당신 깔깔한 입안이 솜사탕 문 듯 할거야
이 때 나직이 모짜르트를 올려 놓아야지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평화로울거야
작은 토담집에 삽살개도 키우고
암닭에 노란 병아리도 키우고
조그만 움막 하나 지어서 뿔 달린 하얀 염소 키우며
나 그렇게 한번쯤 살아보고 싶어
울타리 밑에는 봉숭아 나팔꽃 맨드라미 분꽃을 심고
집옆 작은 텃밭에는 가지 오이 고추 열무 상추를 심어서
아침이면 싱그러운 야채로 음식을 만들고 싶어
여름엔 머리에 잘 어울리는 풀 먹인 하얀 모시옷을 입고
가을이면 빨간 꽃잎 초록 댓잎 넣어 창호지를 바르고 싶어
당신과 얼굴 마주하며 다정한 옛이야기로 온 밤을 지새우고 싶어
긴 머리 빗질해서 은비녀를 꽂고
내 발에 꼭 맞는 하얀 고무신을 신으며
가끔은 의자에 앉아 책을 보다가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고 싶어
또 한쪽 지붕에는 하얀 박꽃을 피우며
낮에는 찻잔에 푸른 산을 들여놓고
밤이면 달 빛 이슬 한 줌 담아 마시면서
남은 여생을 당신과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어

당신 연베이지 빛 점퍼입고
나 목에 겨자 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 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앞산 개울가에 당신 발 담그고
난 우리 어릴 적 소년처럼 물고기 잡고
물 장난 해 보고
그런 날 보며 당신은
흐릿한 미소로 우리 둘 깊어가는 사랑 확인 할거야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넛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젊었을 땐 하지 못했던 사진 한 장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두어야지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뜰 거야
백화점에 가서 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거야
눈이 내릴까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당신 좋아하는 서점에 들러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지난날 우리 둘 회상도 할 겸
난 당신 책 읽는 모습을 보며
화선지 속에
내 가슴 속에
당신의 모습을 담아
영원히 영원히 간직할거야
그렇게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어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맘놓고 울어도 편할 사람 만났음을 감사 드리며
빨간 밑줄 친 비밀 불치병 속앓이 털어 놓아도
미안하거나 부끄럽지 않게
세상에 태어난 의미요
살아온 보람이며
살아갈 이유되어
서로 믿고 의지하고
가을 낙엽 겨울 빈 가지 사이를 달리는 바람까지
소중하고 더 소중한 사람 있어
날마다 기적 속에 살아가며
솔바람 푸르게 일어서는 한적한 곳에
사랑둥지 마련해 감사 기도 드리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렇게 이렇게 살고 싶어
- 황정순 시 -
[사진 : denbis.net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