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대나무 사랑은 유명하다. 두고 보기를 좋아해 곳곳에 대나무를 심었다. ‘현대’ 간판이 붙은 사옥 어딘가에는 반드시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얘기가 전한다. 실제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도 대나무가 가장 많이 심어져 있고, 경주 경포대 등 각지에 있는 현대호텔에도 대나무가 잘 가꿔져 있다. 현대 관계자는 “정주영 창업주는 대나무의 올곧은 기상, 불굴의 정신 등을 좋아했다”고 전했다. 정주영 창업주 뿐만 아니다. 재계 총수들의 나무 사랑은 각별하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나무 사랑은 조직적이고 대규모였다. 에버랜드가 그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병철 창업주는 황폐한 산을 사들여 새로운 품종의 나무를 심고 숲으로 가꿨다. 소박한 자연농원은 거대한 에버랜드로 탈바꿈했다. 이병철 창업주는 자식들에게 여러 경영철학을 들려 줬다.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 ‘어린이의 말이라도 열심히 들어라’,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지 말라’ 등등. 그리고 ‘사람을 나무 기르듯 길러라’라는 교훈이 빠지지 않았다. 나무 사랑에서 인재경영이 가속화된 셈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병철 창업주는 개인적으로 살구나무를 좋아해 에버랜드 입구 등에 살구나무를 심었다”고 전했다. 이병철 창업주의 나무 사랑은 자식들에게 그대로 옮아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경북 영덕에 수목원 건립을 추진중이다.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이 회장은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 “히노키 나무는 1년에 25cm 밖에 안 자란다. 다 자라려면 약 100년이 걸린다. 그러나 그만한 값을 한다. 그윽한 향, 견고한 목질 등을 장인들은 오래 전부터 높게 인정하고 있다” 도약을 위해서는 오랜 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말이지만, 제대로 된 나무를 키워 내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최근 새롭게 오픈한 신세계백화점 본점 주위에는 노송(老松) 20여 그루가 심어져 있다. 이 노송은 60년생 이상으로, 그루당 가격이 1000만원에 달한다.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사람을 나무 기르듯 길러라’는 선친의 교훈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나무 사랑은 좀 광범위하다. 버섯, 꽃 등으로까지 관심이 번져 있다. 구 명예회장은 70세가 되던 지난 95년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충남 성환의 연암축산원예대학에서 나무가꾸기, 분재, 장미재배, 버섯 키우기 등으로 지내고 있다. 특히 언젠가부터 버섯 재배에 푹 빠져 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고 최종현 SK 회장의 나무 사랑도 애틋하다. 고 최 회장은 30여년에 걸쳐 조림사업과 산림 자원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역시 “나무를 키우듯 인재를 키우고, 사람을 키우듯 나무를 키운다”며 나무에 애정을 쏟았다. 한국의 장묘 문화에 따른 산림 황폐화를 우려해 화장(火葬)을 유지로 남긴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인정받아 고 최 회장은 지난해 말 산림청이 주관하는 ‘제1회 대한민국 녹색대상’을 받았다. 최태원 SK 회장은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국토 산림사업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다. 조양호 한진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등은 해외에서 나무심기에 매진하고 있다. 조 회장은 몽골의 사막화를 막기 위해 직접 식수에 나서고 있고, 박 회장은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남태평양 솔로몬군도에 78년 유칼립투스를 심어 지난 2004년 합판용 나무를 얻는 결실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