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의 성립 여부에 대해 이례적으로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머지않은 장래에 최종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분묘기지권이란 ‘타인의 토지 위에 있는 분묘의 기지(基地)에 대해 관습법상 인정되는 지상권과 유사한 일종의 물권’을 가리킨다. 즉 정해진 조건만 맞으면 토지 소유주가 묘지 이장을 요구할 수 없는 권리를 말한다. 하지만 분묘기지권은 법률에서 정한 권리가 아니라 대법원이 인정한 판례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의 내용에 따라 그 권리가 곧바로 폐지될 수도 있다. 분묘기지권은 우리 고유의 매장문화에서 유래했다. 조상을 모실 땅조차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화장하면 불효자라고 욕을 먹는 분위기에서 남의 땅이라도 빌려 매장하고 분묘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또 한 번 묘지로 쓴 땅은 풍수지리학상 ‘음택(陰宅)’이라 해서 이후 이장돼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매우 꺼렸다.
현행 판례상 분묘기지권은 한 번 성립하면 분묘로 기능하는 한 소멸되지 않는다. 사용료를 지급하지도 않는다. 토지 소유자도 함부로 이장할 수 없다. 매우 강력한 권리다. 따라서 임야를 매수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현장을 방문한 후 분묘가 있는지 철저히 살펴봐야 한다. 분묘기지권은 물권인 까닭에 새로운 땅 소유자가 됐다 해도 이미 설치된 묘지는 이장을 요구할 수 없다. 심지어 제사 등을 지내는 데 필요한 주변 공간에도 분묘기지권의 효력이 미친다. 따라서 분묘가 여럿 붙어 있는 경우에는 상당한 범위의 공간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분묘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고 새로 임야를 구매했다 크게 다툼이 벌어진 적이 있는데, 대법원은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①소유자의 승낙을 얻어서 묘지를 쓴 경우 ②소유자가 분묘를 설치했는데 그 토지를 매도함에 있어 분묘에 대한 별다른 특약을 하지 않은 경우 ③(소유자로부터 분묘 설치) 승낙을 얻지 못하였더라도 평온·공평하게 20년 이상 유지된 경우.’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면 분묘로서 기능을 유지하는 한 분묘와 그 주변 토지에 거의 소유권과 같은 권리가 인정되기 때문에 토지 소유자는 큰 피해를 입는다. 따라서 분묘기지권을 인정하더라도 이 부분에 대한 비난과 지적은 과거부터 계속 있어왔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분묘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①가묘의 경우 ②후손들이 상당 기간 성묘 등을 하지 않은 경우 ③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평장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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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분묘기지권은 상당히 확고한 권리였다. 그러나 사회인식이 변하면서 존폐 기로에 서 있다.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분묘기지권에 대한 공개변론을 진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갈수록 유교문화가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는 데다 화장 비율이 80%에 이르고, 이미 성립된 분묘기지권도 사용료를 지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이미 성립한 분묘기지권을 갑자기 철폐하면 많은 혼란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가 변한 만큼 특정 시점을 정해 그 후로는 분묘기지권이 더는 성립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지켜볼 일이다. 류경환 변호사 (법무법인 청맥) [출처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