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한 사람의 DNA를 분석하기 위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지금은 100만명의 DNA를 빠른 시간 내에 분석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대다.”(4월 14일 코엑스 ‘헬스2.0 아시아 2015’에서 구글코리아 클라우드 플랫폼 장혜덕 총괄)
“사람들은 일생동안 평균 3억권 이상의 서적과 맞먹는 100만 기가바이트 이상의 의료 데이터를 생성한다…이 모든 데이터는 관련 기관과 환자 모두에게 엄청난 부담일 수 있지만 동시에 건강을 관리하는 방법을 혁신할 수 있는 전례에 없는 기회를 제시하고 있다.”(4월 16일 한국IBM이 발표한 ‘왓슨 및 개방형 클라우드로 개별 의료서비스 혁신’란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구글과 IBM 같은 굴지의 I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이 헬스케어산업 그 중에서도 클라우드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개인 유전정보 분석을 포함한 헬스 클라우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의 헬스 클라우드는 의사의 임상기록, 임상연구, 개인별 유전자 등 이전에는 개별적으로 활용됐던 데이터들을 한 곳에 모아 이를 개개인의 치료나 연구, 제품 개발 등에 연결하는 시스템을 일컫는다. 헬스 클라우드 분야에 대한 구글이나 IBM의 행보는 이미 수 년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 일상생활에서 적용되는 것에 대해선 ‘가까운 미래’란 단서가 붙어왔다. 그러나 최근의 행보를 보면 이 가까운 미래가 도래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왓슨’ 앞세운 IBM의 도전
IBM의 발표가 헬스 클라우드 시대의 도래를 잘 대변하고 있다. IBM은 최근 슈퍼컴퓨터 ‘왓슨’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헬스 클라우드를 구축 중이라고 밝혔다. 여기서의 헬스 클라우드는 의사, 연구원, 보험사, 의료 서비스 관련 기업들이 종합적인 정보를 사용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이다.
IBM은 이를 위해 ‘왓슨 헬스(Watson Health) 사업부’를 신설했다. 인지 컴퓨팅, 분석, 보안 및 클라우드 분야의 입지를 기반으로 신설된 왓슨 헬스 사업부는 매일 생성되는 무수한 개별 의료 데이터를 의사, 연구원 및 보험사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한다는 목적의 사업부다. 이러한 정보를 왓슨 헬스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익명화하고 공유하며, 동적이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종합적인 임상, 연구 및 소셜 건강 데이터 뷰와 결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금까지 서로 분리돼 있던 다양한 건강 데이터들을 연결해주면, 의료기관 등이 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 보다 우수하고, 신속하면서도 저렴한 치료법을 만들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IBM은 주요 의료기관들과의 연계를 시작했다. 주요 특히 의료분야에 이같은 시스템이 이미 접목 중이라고도 했다.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 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 텍사스대학교 MD 앤더슨 암센터(University of Texas MD Anderson Cancer Center), 클리블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 및 뉴욕 게놈 센터(New York Genome Center) 등 유수의 병원 및 연구소들과 왓슨의 건강 관리 기능을 발전시키고 의학의 교육, 연구 및 실제 운영 방식을 바꾸고 있다. IBM 왓슨의 수석 부사장인 마이클 로딘(Michael Rhodin)은 “의료 분야 고객 및 파트너 기업들이 개발한 왓슨 인지 컴퓨팅의 획기적인 애플리케이션들은 전 세계 의료 서비스의 품질과 효율성, 효과를 획기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계 정상급 기술들을 더욱 확대·활용하고 파트너들과 협력함으로써 수백 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건강 및 의료 서비스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IBM은 이 플랫폼의 확산을 위해 애플(Apple),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 메드트로닉(Medtronic) 등과 파트너십을 맺고 데이터 수집, 분석 및 피드백을 통해 소비자 및 의료 기기의 최적화를 지원할 예정이다. 또 헬스케어 분석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익스플로리스(Explorys)와 피텔(Phytel)을 인수했다. 일례로 존슨앤존슨은 IBM과 협력해 인공 관절 및 척추 수술 등 수술 전후의 환자 진료에 초점을 맞춘 지능적인 코칭 시스템을 개발한다. 솔루션들은 모바일 기반으로 개발되며 왓슨 헬스 클라우드를 통해 IBM 왓슨의 인지 컴퓨팅 기능을 활용한다. 메드트로닉은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고도로 개인화된 새로운 의료 서비스 솔루션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솔루션은 인슐린 펌프와 연속혈당측정기 등을 비롯한 다양한 메드트로닉 기기에서 가져온 환자 정보와 데이터를 수신하고 분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환자와 병원에게 동적이고 개인화된 당뇨병 관리법을 제공한다.
선두 주자 ‘구글 글라스’
헬스케어산업에서 구글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구글 글라스’다. 이미 미국에서 적잖은 의사들이 구글 글라스를 수술 등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명지병원은 구글 글라스를 이용해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일명, ‘스마트ER(응급의료)’ 시연회를 열기도 했다. 당시 시연회는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가정 하에 119 구조대원이 환자를 앰뷸런스에 태워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구글 글라스를 통해 병원 응급의료진에게 환자 상태를 실시간(전송시간 1초) 영상으로 보내면, 병원 의료진이 이 영상을 통해 환자의 상태에 맞게 응급처치를 지도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와 함께 의료진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의 정보를 이용해 환자의 병력 등을 파악하고, 환자가 내원했을 때 필요한 처치를 준비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하지만 구글 글라스는 구글이 가진 정보를 활용하는 도구의 발전이며, 그 핵심은 IBM과 같은 헬스케어 정보시스템 구축과 분석에 있다. 지난 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헬스2.0 아시아 2015’에서 구글 코리아 클라우드 플랫폼 장혜덕 총괄은 ‘구글의 헬스와 웰니스 증진 방안’이란 주제 발표를 통해 구글의 클라우드 인프라 구축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장혜덕 총괄은 이 자리에서 “과거 한 사람의 유전자를 모두 시퀀싱하기까지 15년간 3조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현재는 DNA 시퀀싱에 드는 비용은 1천달러 정도에 불과하며, 시간도 급속도로 축소됐다”며 “지금은 100만명의 게놈을 어떻게 보다 빨리 저렴하게 분석하느냐가 중요한 시대”라고 말했다. 이어 “빠른 정보 분석 못잖게 중요한 점은 표준화와 보완”이라며 “수많은 개인 건강정보와 의료정보, 유전자 등을 보다 많은 곳에서 사용할 수 있으려면 표준화가 필요하다. 실제로 유전체학 연구 데이터 표준모델을 만드는 작업을 180여개 대학과 연구기관, 정부기관이 협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후헬스케어(H∞H Healthcare)’ 시동
헬스 클라우드에 구글이나 IBM과 같은 거대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는 이유는, 말 그대로 플랫폼을 장악함으로써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을 이용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내 기업들도 이런 의미를 모르고 있지 않다. 실제로 수년전부터 몇몇 국내 기업들과 의료기관들도 헬스 클라우드 산업의 잠재력을 파악하고 뛰어든 상태다. 하지만 구글 등에 비해 걸음마 단계이며, 규모 또한 비할 바는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KT와 세브란스의 의료-ICT 융합 헬스케어 사업이다. 2012년 KT는 세브란스와 손잡고 의료-ICT 융합 사업 전문 합작회사 ‘후헬스케어(H∞H Healthcare)’를 출범시켰다. 후헬스케어’는 병원 수출, 의료정보화 사업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체질에 따른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로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고,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언제 어디서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