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신선으로 귀양왔다가 이제야 돌아가는 거겠지 수많은 만장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글귀다. 드디어 노제가 시작됐다. 부부상여인 쌍상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란히 섰다가 마주보고, 부딪혔다가 떨어 졌다가, 서로 부여안고 빙빙 돌며 이생에서 못다한 정을 다시한번 절실하게 나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랑놀음과 같은지 정말 생생하고 흥미가 진진하다. 악사, 명정, 만장기, 상여, 상주, 복재기, 조객 순으로 대열을 이룬 ‘강동바위절마을 호상놀이’는 출상, 상여놀이, 노제를 거쳐 논두렁 징검다리를 지나고 외나무다리 건너기를 한후 선산에서 하관과 동시에 봉분을 만드는데 고인이 천년만년 지낼 유택을 짓기 위해 덕담과 방아타령을 함께 부르며 달구질을 하고 묘제를 지내기까지의 전과정을 그대로 재현되는 모습을 바라보는 구경꾼들에게는 갖가지 영욕을 안고 살아 왔을 고인을 마지막이나마 아름답게 추모하며 자신의 현재를 되돌아 보게하는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하는 강동선사문화축제는 이렇게 호상놀이로 절정을 이루며 여러가지 축제 순서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주민참여 연예프로, 서커스공연, 원시인 마라톤 대회, 성악가와 가수들의 노래잔치 등 풍성한 순서에 사람들이 무척 흥겨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중심프로그램이 바로 ‘호상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도에 늘어서서 눈들을 반짝이며 구경하고 가면못난이와 함께 어울리며 무척 즐거워 한다. 기이하게 보이는 것은 죽음을 다룬 슬퍼야 마땅할 법한데 사람들이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축제라는 이름에 어울릴법한 순서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흥들이 날까 ? 선소리꾼과 상여꾼들이 부르는 만가가 흥겨운 것인가, 호상놀이 대열 한가운데 파안대소 웃음을 자아내는 가면 몸짓과 풍물놀이 때문인가, 갖가지 색깔과 차림을 한 대열이 눈요기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강건너 죽음을 바라보는 산자의 여유같기도 하다. 그렇다. 우리네 삶은 한번 죽음으로 멀리 북망산천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산자들의 한가운데로 돌아와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삶과 죽음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정다운동반자처럼 바로 가까이에 함께 있음을 인생들에게 말해주고 있다. 나는 축제를 그렇게나 좋아한다. 어린 시절, 해마다 동네에서 공연되는 서커스의 선전나팔소리를 듣노라면 반드시 구경하지 않고는 베기지를 못했다. 한술 더떠 거기에서 공연된 연극의 스토리를 기억했다가 동생과 동네꼬마들을 데리고 그대로 재연해보는 연출가가 되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 서울로 올라와서도 국군의 날 시가행진이 있는 10월 1일에는 만사를 제쳐놓고 어린 아들과 함께 일찌감치 종로로 나가 가장 좋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행진이 다가오기를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기가 일쑤였다. 이윽고 멀리서 군악대의 악기들이 햇빛에 은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하며 악대소리가 울려퍼질 때 가슴속에 파고드는 그 흥분과 즐거움은 무엇으로도 표현할수 없었다. 그래서 지금도 자치단체나 관련 기관에서 주최하는 각종 축제 소식이 있으면 설령 가보지는 못할지라도 매우 관심을 가지고 마음으로 나마 즐겨보는 것이 버릇이 되어 있다.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즐겁고 행복한 것이다. 축제는 그것을 절도있게 표현하면서 무언중에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축제마당 포장집, 저렇게 왁자지껄 사먹는 2,000원짜리 잔치국수 한그릇도 산자들의 행복의 총량 증가에 기여하기에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