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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은 외규장각에서 340책의 도서와 한중일 지도, 천체도, 족자, 대리석판, 투구가 붙어 있는 갑옷 등을 가져갔다. 1781년(정조 5) 강화도 행궁터에 건립된 외규장각에는 1042종 6130책이 보관돼 있었는데 약탈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프랑스 군대의 방화로 모두 소실됐다.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BNF) 촉탁 직원으로 있던 박병선 박사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조선왕실 의궤를 발견하고 1991년 서울대가 정부에 외규장각 도서 반환 추진을 요청한 이래 정부 간 협상의 대상이 된 것은 191종 297책의 조선왕실 의궤였다. 학계와 문화연대 등의 시민단체에서는 조선왕실 의궤 외에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약탈해간 다른 문화재의 반환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02년 한국 전문가들의 BNF 소장 외규장각 도서 실사 과정에서 297책 가운데는 조선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기록인 의궤뿐만 아니라 ‘문희묘영건청등록’ 1책과 ‘외규장각형지안’ 2책이 포함돼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와 함께 조선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기록인 의궤 가운데서도 BNF 소장품은 대부분 임금이 열람하도록 비단 장정에 고급 종이인 초주지(草注紙) 등을 사용해 고급스럽게 제작된 어람용(御覽用)인데다 유일본이 30책이나 포함돼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도착한 1차분 75책 가운데 유일본은 8책이다. 조선왕실 의궤는 대부분 어람용이지만 예조 등의 정부기구와 강원도 오대산 사고 등에 보관용으로 제작된 분상용(分上用)도 5책이 포함돼 있다. 조선왕실 의궤 가운데서도 원래의 비단표지가 남아 있는 7종 12책이 사료적 가치가 더 높다. 외규장각 도서 297책 중 절반가량은 왕실 장례를 다룬 것이다. 왕과 왕비의 국장(國葬), 세자와 세자빈의 예장(禮葬), 출상 준비부터 무덤 조성과 3년상 과정을 정리한 의궤 등이다. 나머지 절반은 가례(嘉禮·왕실 혼례), 각종 잔치, 세자 책봉, 궁궐이나 성곽의 수리 등을 기록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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