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사자 유해 발굴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1분, 1초가 아깝다는 생각에 어쩌다 보니 지난 10여년 동안 휴가 한 번 못 갔네요. 허허허…."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과장 이용석(51·3사 16기) 중령은 국내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의 "선구자"이자 "산 증인"이다.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1999년 유해 발굴을 처음으로 계획하고 추진했다. 이듬해 4월 초 경북 칠곡의 다부동에서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떴고, 이후 11년 동안 전국의 주요 전투지역 1000여곳을 찾아다니며 유해를 발굴했다. 그가 발굴 현장 책임자로 활동하는 동안 발굴된 유해가 5153구에 이른다. 그는 유해 발굴 전문 특기인 1230특기를 부여받은 첫 군인이다. "지금까지 증언을 청취한 분들이 2만명쯤 됩니다. 이젠 전화로 몇 마디 질문만 던져도 제보가 믿을 만한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됐죠." 그가 돌아다니는 거리는 매년 6만㎞나 된다. 그 사이 전용 차량을 3대나 갈아치웠다. 그가 유해 발굴 분야의 "최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뼈를 깎는 노력과 "이 일만은 꼭 내가 해야 한다"는 헌신적인 사명 의식이 밑거름이 됐다. 그가 유해 발굴을 한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수십년이 지났는데 유해가 나오겠느냐"며 만류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발굴을 시작한 지 딱 열흘 만에 고(故) 최승갑 하사의 유해를 발굴해 가족 품에 안겨줬고, 그에게 이 일은 자신의 운명처럼 느껴졌다. 유해 발굴 과정을 익히기 위해 고고학자를 찾아다니고 장의 절차를 알기 위해 장의사들도 만났다. 땅을 파기 전 그 지역에 맞는 개토식(開土式)을 위해 주변 문화원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했다. 전국 주요 전투지역을 답사한 뒤 유해가 있을 가능성이 큰 지역 500여 곳을 표시한 유해 소재 지도도 만들었다. 그가 이처럼 튼튼한 기초를 쌓아놓자 작년부터 발굴 유해는 1000구를 넘어서고 있다. 그는 암벽에서 떨어져 골절상을 입거나 해충에 물려 몸의 일부가 마비되는 일도 여러 차례 겪었다. 무릎과 허리에 통증이 생겼지만 "아직은 움직일 만하다"며 치료를 전역 이후로 미뤄놓고 있다. 유해 발굴이 중단 위기에 처하자 관계기관을 찾아다니며 설득해 영구사업으로 지정되도록 했고, DNA 감식 방법을 도입하는 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10월 말 전역하는 그는 전역 전 1년 동안 사회진출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도 마다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유해 발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중령은 "군을 떠나도 죽을 때까지 선배 군인 유해 찾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