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등 유해사이트 신고 1위, 잘못된 선택 부추기는 정보, 초등학생에도 무방비 노출 ▶지난 5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산구 운남동 아파트의 작은 방에서 장형진(34)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컴퓨터를 켜며 "충격적인 내용이 워낙 많아서…"라고 말했다. 연도별로 분류한 폴더 가운데 "2010년 자살"을 클릭하자 파일 수백 개가 주르륵 나타났다. "죽고 싶어요, 제겐 미래도 친구도 없어요. 우울증의 끝은 자살." 한 파일은 어느 여고생이 자살을 암시한 글이 나타나는 인터넷 화면을 캡처(capture)한 것이었다. 고통 없는 죽음의 방법을 "친절히" 설명한 댓글이 바로 아래에 달렸었다. "님이 가장 쉽게 세상과 이별하는 열 가지 방법을 알려 드리지요. 우선 날카로운 도구로 손목을 수십 번 그어 선혈이 낭자한 자해(自害) 장면, 온몸이 화염에 휩싸인 분신자살 사진도 여러 개 보였다. 장씨는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 글과 사진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이웃을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등을 떠미는 독약(毒藥)"이라고 말했다. |
어릴 적 골목대장이었던 장씨는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내던 장씨는 2007년 네티즌의 악플(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가수 유니와 탤런트 정다빈이 잇따라 자살한 데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악플이 사람 목숨을 끊게 하는 비수(匕首)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며 "경찰 제복을 입지 않고도 누리캅스가 되면 인터넷에서 범죄행위나 마찬가지인 악플을 없앨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방경찰청 홈페이지를 통해 누리캅스 회원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해인 2008년 탤런트 최진실과 안재환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모방 자살도 잇따르자 인터넷에 떠도는 자살 정보를 미리 뿌리 뽑기로 결심했다. 그는 작년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와 한국자살예방협회가 공동주최한 "제1회 자살 유해정보 신고대회"에서 5위에 오른 데 이어 지난 7월 2회 대회 때는 1255건을 신고해 1위를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걸러낸 자살 유해정보 5493건의 22%를 장씨 혼자 신고한 셈이다. 그는 "세계 자살예방의 날"인 10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보건복지가족부장관상과 포상금 30만원을 받는다. 누리캅스 사이트를 보니 최근 2년 동안 그가 신고한 유해정보가 2441건에 달했다. 누리캅스가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나 한국자살예방협회에 신고한 유해정보는 포털사이트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통보돼 삭제되거나 사이트 폐쇄 조치로 이어졌다. 장씨는 "자살 관련 정보가 포털사이트나 블로그에 "반짝" 떴다 사라지는 새벽 시간대에 사이버공간을 집중적으로 순찰한다"고 했다. "우울"이나 "절망" "마지막 선택" 같은 글귀를 단서로 찬찬히 검색하다 보면 어느새 자살을 부추기거나 예고하는 게시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동반 자살과 독극물 매매에 대한 정보를 색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씨는 "동반 자살자들을 돌이키는 건 특히 힘들다"며 "동반자살 정보의 싹을 아예 잘라 서로 못 만나게 만드는 게 상책"이라고 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상대로 "자살 문답(問答)"이 번지는 게 정씨의 큰 걱정거리다. 요즘 인터넷에는 "자살을 생각한 적은 없는지", "죽음이란 단어를 볼 때 무엇이 생각나는지", "누구와 함께 어떤 방법으로 죽고 싶은지" 등 50여 개의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글들이 퍼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자살 문답을 하면서 아이들의 뇌리에 자살이 서서히 자리 잡게 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장씨가 최근 신고했다는 한 불법 사이트 주소를 쳐넣고 엔터키를 눌렀다. "접속 차단"을 알리는 경고문이 모니터에 나왔다.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이 아이가 누빌 사이버 공간이 지금보다 더 깨끗해지길 바라는 마음뿐이죠." 17개월 된 아들 보선이를 번쩍 들어 올리며 장씨가 활짝 웃었다.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