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법 향배 촉각, 의료현장 부합한 조항 필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으로 국내 존엄사 도입 논의에 불을 지폈던 세브란스병원의 김 할머니가 지난 10일 사망하면서 존엄사법 향배가 다시 주목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존엄사 판결을 이끌어낸 김 할머니는 의료진 예측과 달리 인공호흡기 없이 자가호흡으로 200여일을 생존했다. 앞서 김 할머니 보호자 측은 연명치료 중단을 놓고 세브란스병원과 법적 공방을 벌였고 의료계가 세부 지침안을 발표하면서 세간의 관심이 커졌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를 타고 국회서도 존엄사 관련 법안이 제기,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현재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의 논의를 앞둔 존엄사 관련 법안은 "존엄사법안(한나라당 신상진 의원)"과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권리에 관한 법률안(한나라당 김세연 의원)" 등 두 개 법률안이다. 이 법안들은 지난해 하반기 각종 공청회를 거쳐 논의에 속도가 붙었지만, 각계의 법리 해석과 사회적 합의를 둘러싼 견해차로 지연을 거듭했다. 복지위 여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종교계 등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논의가 지연될 것"이라며 "올해 어느 시점에서 논의가 이뤄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법 제정이 지연된 이유 중 하나는 연명치료 중단 이후 수일 내 사망할 것으로 전망되던 김 할머니가 장기간 생존하면서 법안을 논의할 명분이 다소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할머니의 사망으로 존엄사법은 다시 주목받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한 신상진 의원은 "(의료계를 포함한)대다수가 법제화 필요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존엄사 기준을 말기암으로 한정한 것도 사회적 부담을 느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김 할머니 사망으로 인해 존엄사법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문제는 사전의료지시서의 적절성과 존엄사를 주도적으로 판단할 병원윤리위원회 구성 등 실체적 논의가 진전을 이루느냐 여부다. 사회적 합의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법안 각 조항에 혼재된 개념을 정리해야 논란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발간한 "존엄사 입법화의 쟁점과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존엄사가 유사 개념인 "치료중단"과 "의사조력자살" 등이 혼재돼 사용되고, 안락사의 일반적 분류유형과도 정확하게 합치하지 않아 유형화와 입법적 대책 마련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행 형법에 의하면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사람을 자연적 죽음에 앞서 사망에 이르게 하면 촉탁·승낙살인죄로 처벌받지만, 형법학계에서는 안락사라는 개념을 통해 일정한 요건 하의 치료중단행위는 위법성이 조각되는 행위로 파악한다. 보고서는 형법학계에서 주장하는 요건을 충족하는 안락사는 실제 의료현장에서 별반 활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존엄사"나 "연명치료중단"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존엄사 허용 시 어떠한 기준과 절차 등으로 치료중단을 인정할 것인가를 판단할 구체적 심의기구 요건도 갖춰야 한다. 현재 한국의료윤리학회 등 의료계는 환자 자기결정권 존중과 병원윤리위원회를 통한 검증체계가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만큼 법안 제정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국회 복지위 관계자는 "법안 조항에 대한 견해차는 논의를 거쳐 가다듬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 법안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김(金)할머니 숨진 날, 5년전(前) 남편 숨진 날과 같아… 합장하기로◀ 10일 오전 10시 30분쯤 김 할머니의 병세가 심각해지자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가족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통보했다. 가족 10여명과 의료진 등 20여명이 병상에 둘러서서 김 할머니의 마지막을 지켰다. 이날 오후 2시 57분 김 할머니 옆에 놓은 심전도 모니터가 수평선을 그렸다. 큰딸 이모(52)씨가 "엄마, 사랑해"라며 오열했다. 가족들도 주저앉아 울었다. 김 할머니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것은 지난 2008년 2월 15일이었다. 폐렴 증세로 입원한 김 할머니는 사흘 뒤 폐 조직검사를 받다가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약하게 숨만 쉴 뿐 눈을 감은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해 5월 9일 유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서울서부지법에 소송을 냈다. 6개월 뒤인 11월 28일 법원 1심 재판부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가했다. 작년 2월 서울고법도 같은 판결을 내렸고, 3개월 후인 5월 21일 마침내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고 1개월 뒤인 2009년 6월 23일 오전 10시 21분쯤 병원 의료진은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떼냈다. 의료진은 김 할머니가 2~3시간 내로 숨을 거둘 것이라 내다봤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김 할머니는 스스로 호흡하며 "생명의 존엄함"을 보여줬다. 지난해 10월 14일 병상에서 77번째 생일도 맞았다. 하지만 김 할머니의 기적적인 생존은 201일을 넘기지 못했다. 맏사위 심모(50)씨는 "장인어른도 5년 전 같은 날인 1월 10일 새벽에 이 병원에서 돌아가셨다"며 "장모님의 유해도 장인어른의 유해가 모셔진 경기도 파주시 납골묘에 합장할 것"이라고 했다. |
■사망 김 할머니 의료과실 여부와 세브란스■ ▶11일 국과수서 부검, 한달 후 결과 예정 법정공방 재점화 국내 첫 존엄사를 인정받아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김 할머니(78세)가 지난 10일 숨을 거뒀다. 김 할머니의 의식불명 상태 원인을 밝히기 위해 11일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부검이 이뤄졌다. 부검을 진행한 서울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김 할머니가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를 진행 중에 있으며 부검이 필요해 국과수에서 진행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부검은 3시간 여 진행됐으며 결과는 한 달 후 쯤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소송은 2008년도에 접수됐지만 김 할머니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에도 스스로 생명을 연장했기 때문에 수사가 더이상 진행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부검 결과가 나오는 한 달 후쯤에는 유족측과 세브란스병원 간의 법정공방이 본격적으로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08년 2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암의심 판정을 받고 조직검사 도중 폐혈관에 손상을 입어 저산소성 뇌손상을 진단받았다. 3개월 후인 5월 김 할머니의 가족들이 의료인 과실을 주장하며 세브란스병원을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고소했으며, 1억 4000만원의 위자료 청구 민사소송과 연명치료 중단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1년 만에 호흡기를 제거했지만 김 할머니는 스스로 201일을 생존하면서 1년 7개월여 만에 의료과실 분쟁이 다시 재점화 된 것이다. 김 할머니의 부검을 통해 의료인 과실 여부가 결정되면 2008년 2월~2010년 1월 10일까지 2년 간의 병원비도 정산될 것으로 보인다. |
|
■관련기사■ ▶연명치료 기준 ‘재점화’ ☞ㆍ세브란스 “김 할머니 내과치료 계속, 중단 아니다” ☞ㆍ의료계 일부 “호흡기 떼면 중단으로 봐야” 반론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이 지난 10일 사망한 김모 할머니에 대해 “연명치료 중단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의료계 일부에서 반론을 제기하면서 연명치료의 기준과 범위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관계자는 11일 “연명치료 중단이라고 하려면 호흡기 제거 이후 필요한 의료적 행위를 중단해야 하는데 김 할머니의 경우 산소 공급과 항생제 투여 등 치료가 계속돼 연명치료 중단으로 볼 수 없다”고 거듭 밝혔다. 지난 10일 김 할머니 사망 기자회견에서 의료진 측이 “(김 할머니의 경우) 내과적 치료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명치료가 중단됐다고 보기 힘들다”고 한 것을 재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연세대 측의 이 같은 설명에 대해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잘못된 해석”이라고 반박했다. 허 교수는 이날 “김 할머니는 연명치료 중단 사례가 맞다. 인공호흡기를 뗀 이후 환자가 생존했다고 해서 연명치료를 중단한 게 아니었다고 볼 수 없다”며 “세브란스가 결과론적으로 접근해 논리적 모순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제적으로도 1976년 법원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 9년을 더 산 미국의 퀸렌 사건이 연명치료 중단의 초석으로 인정되고 있다”면서 “연명치료 범위 중 일부만 행했다고 해서 연명치료를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측은 “연세대가 연명치료 중단의 여러 단계 중에서 인공호흡기만 제거하고 다른 부분을 시행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을 한 것 같다. 해석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런 혼선은 지난해 대한의사협회 등을 통해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지침이 만들어졌음에도 여전히 세부적인 합의가 과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에서는 연명치료 중단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대상 환자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직접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환자의 의사는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등을 두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통일된 기준을 위한 관련 법제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아산병원 고윤석 중환자실장은 “‘어디까지를 연명치료 중단으로 볼 것인가’ 문제 역시 사회적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파생된 것”이라며 “관련 법규의 조속한 마련과 함께 연명치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지속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조사하고 개선하는 기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
▶연명치료 중단 대상·범위 숙제로… ▶의학·법적 판단 뛰어넘어 생명의 고귀함 일깨워…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의 죽음으로 연명치료 중단의 대상과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가 우리 사회의 과제로 남게 됐다. 지난해 6월 국내 첫 대법원 판결로 소생 불능 상태인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 스위치를 끄자 한국 사회에는 연명치료 중단 논란의 불이 켜졌다. 대법원 판결은 소생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환자측의 뜻을 받아들여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합법적으로 중단한 첫 케이스로 자리매김 됐다. 아울러 김 할머니의 생존과 죽음은 의학과 법적 판단을 뛰어넘는 생명의 고귀함을 일깨운 사례로 평가된다. ◆어떻게 장기 생존했나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폐 종양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 출혈로 의식을 잃었다. 이 과정에서 뇌에 산소 공급이 안돼 뇌 손상이 왔다. 의식을 관할하는 대뇌는 물론 호흡기능을 담당하는 대뇌 밑의 뇌간(腦幹) 일부까지 광범위하게 손상됐고, 스스로 호흡하는 기능이 사라진 것으로 판단됐다. 의료진이 일시적으로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무(無)호흡 테스트"를 했지만 자발 호흡은 없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자 자발 호흡이 살아났다. 1년4개월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보니 호흡에 필요한 갈비뼈 근육과 횡격막이 약해져 김 할머니의 호흡량은 일반인이 한번 들이쉬는 공기 양의 절반(200~300㏄)밖에 못 미쳤다. 그러나 신체 활동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 정도의 호흡량으로도 체내 산소 포화도가 유지되면서 장기 생존이 가능했다. 김 할머니의 전신 상태가 최근 나빠진 것은 기존에 발병했던 암(癌)이 꾸준히 진행됐기 때문으로 의료진은 판단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다발성골수종"을 앓고 있었다. 일종의 혈액암이다. 노폐물과 소변을 걸러주는 콩팥 기능도 상실됐다. 체내 수분이 오줌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폐에 쌓이면서 폐부종이 왔다. 이것이 직접적 사인이 됐다.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했다면 더 생존했을 가능성은 있었다"고 했다. |
"김 할머니 사건" 이후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대상과 범위 등에 대해 수많은 논의가 쏟아졌다. 서울대 연세대병원 등은 자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만들었고, 의사협회 병원협회 등 의료 단체들도 시행 지침을 발표했다. 국회에서는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과 김세연 의원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논쟁은 지속되고 있다. 우선 연명치료 중단방식과 대상 등을 법으로 규정할 것인가의 문제다. 의료계에서는 정부 지침 등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만 두고, 의료 현장에서 자율적으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종교계에서는 입법을 통한 엄격한 시행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7년부터 후생성(국내 보건복지부에 해당) 지침을 통해 연명치료 중단 시행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환자가 미리 연명치료 거부에 대한 의사를 밝혀 놓지 않았을 경우 환자 가족에게 결정권을 줘야 할지도 논란거리다. 김세연 의원 법안과 종교계 등은 환자가 사전에 문서로 의사를 표시한 경우만 치료 중단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에서는 환자에게 정확한 병세를 알리지 않는 우리 문화에서는 환자가 미리 결정하기 어렵다며 가족에게 대리 결정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는 연명치료 중단의 80~90%가 환자 가족의 결정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만에서는 2000년부터 친권 순서에 따라 가족이 결정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했다.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를 연명치료 중단 대상에 포함시킬지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 법안과 종교계는 식물인간은 중단 대상에 포함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의료 단체 등은 3~6개월 지속된 식물인간 상태는 소생이 불가능하다며 중단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연명치료 중단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지도 의견이 다양하다. 허대석(서울의대 교수)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은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만 중단 범위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이지만 일부에서는 영양과 수액 치료도 중단 대상에 넣자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연말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합의점을 찾기 위해 국회·종교계·의료계·법조계 인사 등을 중심으로 태스크포스(task force)를 만들었다.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