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푸르다는 걸 알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독일 문호 괴테의 말이다. 마찬가지다. 집을 떠나야만 개안(開眼)을 하고, 낯선 인물을 만나야만 자신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삶을 정리하는 마음이라면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보며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은 그 어느 여행보다 값진 나들이가 되지 않을까. 『한시기행』『산문기행』에 이은 지은이의 ‘기행’ 3부작 중 마지막인 이 책의 제목은 그런 뜻을 담고 있다. 우리 옛 선인들의 글을 가려 뽑은 방식은 전작과 같지만 이번엔 문학작품이 아니라 생전에 스스로 쓴 ‘묘비명’을 골랐다는 점이 다르다. 고려 말의 중신 김훤에서 1924년 망명지 만주에서 세상을 떠난 지사 이건승까지 57명의 글이 수록됐는데 묘비명만이 아니다.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에 쓰인 묘표(墓表), 무덤 옆에 묻는 묘지(墓誌)에 쓰인 글과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애도한 만시(輓詩) 등 자신의 생애를 정리한 글이라면 가리지 않고 뽑았다. 자기 삶을 회고하는 글은 대체로 겸손하다. 조선 영조 때 명문장가인 남유용이 직접 쓴 묘지를 보자. “…자신을 낮추고 그칠 데서 그칠 줄 알았기 때문에 험한 길을 갔으되 실수를 하거나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 돌이켜 보며 자서(自敍)에서는 “임금을 섬김에 한결같이 하고 사사로움이 없고자 했으며, 윗사람에게는 아첨하지 않고, 아랫사람에게는 우쭐대지 않았으며 모두 공정하고 청렴한 길을 따르고자 했다”고 자부했다. 세상을 떠나는 마당에 후손에 대한 당부가 빠질 수 없다. 조선 인조 때 문인 이준이 작성한 두 번째 묘비명엔 절절한 대목이 나온다. “…문호가 이미 쇠미하니 분발할 생각을 하고, 길이 험하고 굽이 많으니 어둠속을 가듯 두려워하라”고 이른다. 얼핏 입신양명의 도리를 가르치는 듯하나 “의(義)와 이(利)는 미세한 차이를 정밀하게 변별해라. 가득찼다 여기지 말고 억제하고 겸손해야 하며 어두워 나를 보지 않으리라 말하지 말고 신명이 있음을 생각하라”고 당부한다. 죽음을 앞둔 새의 노래는 아름답고 삶의 마지막에 선 사람의 말은 착하다고 한다. 묘비명을 정리한 이 책이 그렇다. 글은 유려하고 뜻은 그윽하다. 여기에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인 지은이가 꼼꼼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꼼꼼히 풀어 쉬 읽힌다. 하지만 눈으로 감상하는 책은 아니다. 마음으로 음미할 책이다. ‘나라면 내 삶을 어떻게 가꾸고 정리해야 할까’하는 생각을 쉼없이 하면서. [중앙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