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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나눔, 장기기증

 
▶최요삼, 6명에 새 삶 주고 떠난 ‘진짜 챔프’
▶"영웅처럼 멋있게 살고 싶다" 평소의 소망, 가족이 실천
“축하합니다. 왕자님이네요.” 하지만 의사의 목소리는 떨렸다. 분만실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이옥진(35·여)씨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자신이 낳은 아기를 보고는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아기의 눈동자는 흐릿한 회색 빛이었다. 요한이로 이름 붙인 이 아이는 선천성 백내장과 각막 혼탁 진단을 받았다. 갓 태어난 아들은 중환자실로 보내졌다. 이씨는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유일한 방법은 각막 이식을 받는 것. 서울 아산병원에 각막 이식 대기자로 신청했다. 매일 새벽기도를 하며 애태운 지 열 달쯤 지난 2008년 1월 초. 이씨는 같은 병원에서 복싱선수 최요삼(사진)씨가 뇌사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를 봤다. WBC 플라이급 세계챔피언이었던 그는 2007년 12월 25일 열린 시합에서 판정승을 거둔 뒤 뇌진탕으로 쓰러졌었다. 뉴스가 끝난 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각막 수술이 가능하다는 얘기였다. 이씨는 “각막이 얼마 전에 사망한 최요삼 선수의 것인 줄 알게 됐다”며 “우리 가족에게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34세로 숨진 최 선수는 생전에 장기기증 등록을 한 적이 없다. 그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정한 건 어머니 오순이(66)씨와 10년 넘게 그의 매니저였던 동생 최경호(33)씨 등 가족이었다. 순천향병원에 이어 아산병원에서도 뇌사 판정을 내리자 경호씨는 어떻게 하면 형을 잘 보내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때 생각난 게 최 선수가 일기장에 남긴 ‘영웅처럼 멋있게 살고 싶다’라는 구절이었다. 그는 “형이 단지 복싱 영웅만이 아닌 진정한 영웅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길 바랐다”며 “평소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고 말했던 형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전했다.

 
최 선수의 장기는 모두 6명에게 새 삶을 선사했다. 그의 심장은 8년 동안 심부전증을 앓고 있던 30대 중반의 여성에게, 간은 급성간염에 걸려 한두 달 내에 이식을 받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이었던 60대 여성에게 전달됐다.

두 개의 신장은 각각 10대와 30대 남성에게 이식됐다. 각막 두 개는 70대 남성과 요한(2)이에게 전해져 새 빛을 볼 수 있게 해 줬다. 경호씨는 “형은 떠났지만 요한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설렌다”며 “이후 우리 가족 모두가 장기기증 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9일은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가 정한 ‘장기기증의 날’이다. 한 사람이 기증할 수 있는 장기가 최대 9가지(신장·간장·췌장·심장·폐·췌도·소장 등 고형 장기와 골수·각막 등 조직)라는 점과 생명을 ‘구한다’는 의미가 있다.

지난달 현재 우리나라의 장기이식 대기자는 모두 1만6000여 명. 하지만 매년 장기기증을 하는 사람은 2000여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특히 가장 많은 장기를 나눌 수 있는 뇌사자의 경우, 100만 명당 3명만이 장기 이식을 하고 있다. 본부는 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장기기증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이를 위해 홈페이지(www.donor.or.kr)를 통해 대국민 서명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각막 수입국
▶사후 기증 가능한데도 법 미비, 뇌사자 의존 평균 6년 대기
선천적 각막 혼탁과 백내장을 안고 태어난 요한(2)이가 빛을 보는 데 걸린 시간은 10개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각막 이식 대기자들의 평균 대기 일수는 2338일. 6년5개월을 암흑 속에서 지낸 셈이다.

제도에 문제점이 있어서다. 각막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의해 장기로 분류된다. 이 법률은 주로 뇌사자의 장기기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문가들은 ‘현실과 맞지 않는 제도’라고 지적한다. 각막은 심장·신장·간 등 다른 장기와 달리 사후라도 6시간 이내면 적출할 수 있다. 혈액형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이식할 수도 있다. 꼭 뇌사자가 아니더라도 사후 기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각막 이식에 관한 별도 법률이나 제도가 없어 뇌사자 기증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각막 기증자 344명 중 뇌사자가 256명을 차지했다.

반면 한국과 달리 각막이 남는 나라도 있다. 미국은 각막의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 사후 기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병원은 사망자가 발생하면 의무적으로 ‘아이뱅크(eyebank)’라는 기관에 연락을 취한다. 아이뱅크는 각막 기증과 이식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유가족이 각막 기증 의사를 밝히면, 채취된 각막은 곧바로 아이뱅크로 보내진다. 수술 대기자들은 아이뱅크로부터 각막을 공급받는다.

현재 한국은 미국·호주 등으로부터 부족한 각막을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각막 이식 수술을 받은 739명 중 259명이 수입 각막으로 수술을 받았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김동엽 사업국장은 “매년 24만여 명의 사망자 중 1%만 각막 기증을 해도 2400명(지난해 각막 이식 대기자는 3000여 명)이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며 “별도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LG전자, 각막기증서약서 전달
LG전자가 2개월간 전 사업장에서 모은 300명의 각막기증서약서를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7일 전달했다. 7일 오후 LG전자 박준수 노조위원장, 지원부문장 김영기 부사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본부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충정로 운동본부 사무실에서 기증식이 열렸다.

LG전자는 지난 7월부터 2개월 간 서울 여의도 트윈타워를 비롯해 평택, 청주, 구미, 창원 등 회사 전 사업장에서 각막기증 캠페인을 펼쳤다. 이 캠페인은 장기기증을 통한 생명나눔 실천에 평소 뜻을 두고 있던 박준수 노조위원장이 제안해 이뤄졌다.

한편 각막기증 캠페인에서 헌혈행사도 함께 열렸는데, 행사기간 동안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750명의 헌혈증은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이달 중 전달될 예정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어려운 이웃들이 새 삶을 여는데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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