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따르면 혼례는 지역을 막론하고 1970년대 직전까지는 신부 집에서 치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신랑이 함진애비 등과 함께 처갓집을 찾아가 혼례와 첫날밤을 치르고 다음날 신부를 본가로 데려왔다. ‘신방 엿보기’ 역시 전국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었는데 그 이유는 “사람이 쳐다보지 않으면 쥐나 귀신이라도 쳐다보기 때문”, “신랑 혹은 신부가 배우자를 잘못 다루거나 해할까봐 걱정이 돼서” 등 지역별로 제각각이었다. 첫 아들을 낳고 심성이 수더분한 신랑 동네의 젊은 함진애비가 짊어지고 간 함에는 예물과 함께 혼서지(婚書紙)가 들어있었다. 혼서지는 혼인의 증명서 역할은 물론 무덤에도 넣어 이들 부부가 사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했다. 폐백은 혼례를 마친 뒤 시댁에 가서 처음 시부모를 뵌 신부가 예를 올린 데서 기원했는데 양가 부모가 함께하는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요즘 시댁 부모, 친척은 물론 친정 가족들에까지 예를 올리는 것으로 확대됐다. 반드시 대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과 일천한 의료 지식은 태몽, 임신, 출산에 대한 많은 속신을 낳았다. 태몽에서 용, 호랑이, 소같은 동물이나 오이, 가지처럼 꼭지 달린 채소가 등장하면 아들이고 애호박처럼 색이 푸르고 꼭지가 없거나 꽃같은 예쁜 것들이 등장하면 딸이라 믿었다. 또한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약 21일간 대문에 금줄을 둘러 잡귀와 병을 가진 이의 출입을 막았다. 예전엔 백일잔치를 거의 하지 않았고 돌 잔치상에는 반드시 수수팥떡과 백설기를 올렸다. 대전시와 충남 서산 주민들의 경우 백설기는 아이의 장수를, 수수팥떡은 아이가 넘어지지 않거나 아이의 살을 풀기 위한 의미라고 설명했다. |
전북 지역 조사팀을 이끈 송화섭 전주대 교수는 조상숭배와 계세의식을 한국인 일생의례의 주요 특징으로 꼽았다. 송 교수는 “제례 등 사람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사후까지 인간과 그 영혼을 돌보고 관리하는 것은 한국인의 독특한 일생의례관”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연구소는 전국을 대상으로 2010년까지 조사를 하고 첫 2권을 포함해 모두 9권의 지역별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다. 보고서 내용은 전국 국공립 도서관과 홈페이지(www.nrich.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