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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장례문화(1)

장만석(대전보건대학 장례지도과겸임교수)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땅에 들어감으로써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매장사상이 수 천년동안 이어져 내려왔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인구가 밀집한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화장으로의 전환이 추진되어 왔다. 이번호에는 금년 11월 16일 ~18일 3일간 북경에서 개최되는 중국 국제 장례 EXPO 2006와 관련하여 중국의 과거와 오늘의 장례문화 현황을 추적해 보았다.

중국장례문화의 특징

풍수로 결정되었던 묘의 위치

원래 중국에서는 묘지를 조성하는 데에는 두 개의 큰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풍수”로 풍수는 대지의 기(氣)의 흐름을 읽는 기술이다. 중국에서는 시신을 포함하여 사람의 신체는 모두 기의 흐름에 영향 받는 것으로 조상의 시신도 풍수적인 관점에서 보아 좋은 위치에 매장되는 것이 부와 자손번영 등의 복을 가져온다고 생각되었다.
그 때문에 가족에게 흉사가 생기면 시신을 발굴하여 새로운 토지에 다시 매장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혈통을 중시
또 하나의 특징은 “혈통의 계승”에 연연한다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가계를 이어받는 것은 남성뿐이었다. 일족의 묘에는 무덤이 세대 순으로 나란히 안치되어 있고 하나의 무덤에는 부부가 함께 묻히기도 했다. 부부는 다음세대의 혈통을 이어받는 남자를 가지게 됨으로써 비로써 자신들도 사후 조상으로서 공양을 받을 수 있었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그러나 이와 같은 전통적인 중국인의 각종 매장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은 1950년대에 모택동이 화장의 도입을 제창하여 종래의 매장을 개혁하고 봉건적인 풍속을 제거할 것을 강조한 것에 기인한다.
실제로 아무리 넓은 국토를 가진 중국이라 할지라도 도시지역에서는 인구가 밀집해 있기 때문에 모두가 매장을 하고 있었다면 토지는 부족할 수 밖에 없다.
1980년대에는 전국에서 14.5%, 대. 중 도시에서는 70 ~80%까지 화장이 보급되었으며 더욱이 이를 추진하기 위해 인구 밀집지역에서의 화장 의무화가 실시되었고 기타 지역에서의
매장의 제한 등을 명문화한 규정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유골은 납골당으로
북경에서는 1958년에 팔보산 혁명공묘(公墓)에 화장장을 개설하고 많은 시신이 이곳에서 화장되었다. 팔보산에서 화장한 시민의 대다수는 완만한 언덕 위에 세워진 납골당 “노산 골회당”(老山骨灰堂)을 이용하여 고인의 사진을 넣은 나무상자에 유골을 넣어 이곳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다양화하는 장법
수천 년을 이어 내려온 매장에서, 간소한 화장으로, 그리고 근년에는 양자강 하구(하구)에서의 산골도 많아지는 등 장법 스타일의 다양화가 추진되고 있는 중국이다. 그러나 아무리 스타일이 바뀌어도 고인에 대한 마음속 깊은 생각과 조상에 대한 추념은 쉽사리는 바뀌어 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중국 빈장(殯葬)혁명의 역사와 실태

모택동 화장 후 급변
1956년에 모택동이 화장의 도입을 제창한 이후 중국의 장례사정은 급변했으며 관(棺)의 자재가 되었던 삼림자원의 절약과 묘지용지에 의한 경지면적의 감소를 막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1976년에는 주은래수상이 팔보산에서 화장된 이후 유골이 중국전토에 뿌려졌다. 1980년대에서 정부에 의해 빈장개혁 업무강화가 강조되어, 개혁빈의. 이풍이속(改革殯儀.,移風易俗. 荀子・楽論이 原典)이라는 슬로건 하에 중국의 빈장개혁은 도시지역에서 농촌까지 전개되었다.
당시의 중국정부 보고서에 의하면, 전국 80%의 도시, 30%이상의 지방정부에서 화장이 실시되었으나 개혁의 실행이 충분히 철저히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 뒤 “각 계급의 인민정부는 이 방침에 따라 홍보활동을 포함하여 더욱 노력할 것을 ” 강조하였다.
하북성 인민정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하북성에서는 이미 135개 시와 현(懸)에 화장장이 있는데, 10개현에서는 화장장이 기본건설 계획에 포함되어 있어 매장의 제한이나 홍보교육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1983년 공산당이 하부에 하달한 서류에 의하면 실제로는 화장율이 저하하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이에 의하면 1982년의 화장 율은 전국에서 14.5%, 대도시에서는 70~80%이나 그 이외는 10%선에 머물렀다고 한다.
동 서류에 의하면 “공산당원은 상사(喪事)를 간소화하고 솔선하여 화장을 실행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을 근거로 하여, 중국 국무원은 빈장관리에 관한 수개의 규정을 1985년 2월 8일에 선포했다.

빈장관리에 관한 규정 선포
첫번째로, 종래의 매장을 개혁하고 봉건적 미신적인 장송습속을 제거할 것을 강조했으며 이에 따라 장송의식으로 소모되는 자원의 절약과 비용을 줄이고 검소히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두번째로, 인구과밀과 교통이 편리한 지역은 화장을 할 것을 강조했다. 기타 지역은 매장을 허가하나 개혁을 의무화하여 화장 추진지구의 주된 지역은 성(省), 자치구, 직할시(북경, 천진, 상해)로 정했다.
세번째로, 화장추진지구의 인민정부는 구체적으로 계획을 책정하기로 했는데 화장장, 빈의
관(장례, 화장, 납골을 하는 시설)의 정비를 지방기본 건설계획에 포함하였다.
네번째로, 화장 추진이 곤란한 지구는 매장용지를 획기적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촌과 집락
(집락)을 단위로 거친 산이나 메마른 땅을 공묘(公墓)로 하고 매장은 깊이 파서 표면을 평탄히 하고 봉분형태를 만들지 않을 것을 제창했다. 종족묘지의 복원과 새로운 건립을 금지했다.
다섯번째로, 종래 습속적으로 행해 온 미신에 의한 장송용품의 생산과 판매,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여섯번째로, 명승고적, 문화재보호지역, 풍치지역, 댐이나 하천, 철도용지, 도로양측에의 분장(墳葬)을 금지했다. 기존의 분묘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호하는 혁명열사(공산혁명, 항일전쟁, 새로운 중국의 해방전쟁 등에 공헌한 인물들)의 묘, 저명인사의 묘, 화교의 조상묘, 역사적, 예술적, 과학적 가치가 있는 옛날 묘는 보존키로 하고 일반의 매장 묘는 기한을 정해 이전 또는 파괴할 것을 강조했다.
일곱번째로, 한족 이외의 소수민족의 장송습속은 존중하고 간섭치 않기로 했다.
여덟번째로, 화장 추진지구에서 국영기관의 노동자가 화장을 거부하는 경우는 장송비용을 지급치 않기로 결정했다. 소속조직은 상사(喪事)활동의 편의를 취해주어서는 안되고 국영기관의 노동자가 이 규정의 집행을 거부할 때에는 행정처분을 하게 되어있다. 이들 규정이 현재의 중국의 장례실태 및 장례업계의 기본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도시지역에서의 장송의 실태

전국에 1200개소 빈의관, 4000기의 화장로
과거에는 묘지를 조성하는 경우 방향이나 장소 선정관련 점이나 풍수 등 을 고려하여 결정했으나 그러한 것들은 중국 국가의 정책적인 4개 근대화(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촉진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각지에 산재한 묘지는 정리되었으며 불모지대를 묘지로 지정하여 매장하고 있다.
각 도시에서는 장례, 화장, 납골을 종합한 빈장관의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데 현재 중국 전토에는 약 1,200개소의 빈의관(殯儀館)과 4,000기의 화장로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전국의 화장율은 1900년 현재 약 30%에 달하고 있으며 일본과 비교하면 적은 것으로 생각되나, 앞에서 언급한 유교사상이 주류였던 중국의 관습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중국이라는 나라가 화장화에 집중적으로 힘을 기울여 왔는가하는 것을 알 수 있고 도시지역에 있어서는 대부분이 화장으로 되어 있다.

북경은 10개이상 공원묘지, 12개의 빈의관
빈장개혁에 의해, 각 도시에서는 장례, 화장과 납골이 통합된 빈의관(殯儀館)의 건설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북경시에서는 10개 이상의 공원묘지와 12개의 장의장이 있다. 그 중에서도 팔보산 혁명공묘, 빈의관은 가장 대규모인 장의관의 하나이다. 혁명직후의 1949년에 당과 국가요인의 묘지로서 개설되어 그 후인 1958년에 화장장을 개설했다.
팔보산 빈의관은 주은래 전수상의 장례를 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며. 북경시내의 연간 사망자수 5만 5천 명중 2만 2천명을 다룬다. 단순 계산으로 하루에 평균 60구를 화장하는 셈이다. 덧붙여 접수시간은 아침 8시에서 오후 4시 30분까지로 되어있다.
화장장과 고별식장이 같은 부지내에 있고 여기에서 간단한 장례를 한 후, 시신을 스트레처
에 모시고 화장장으로 이송한다.

유족입회없이 화장 가족묘는 없어
화장시에는 유족이 입회하는 일은 없으며 화장 후의 납골도 직원만이 하는데 당일 또는 익
일 유족에게 연락하여 유골을 로카식의 납골선반에 안치한다.
유골함은 3년밖에는 보관할 수 없고, 기한이 종료되면 유족에게 인수케 하고 인수할 때까지는 준비된 묘지에 보관한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유골함을 인수하러 오지 않을 경우에는 다른 유골과 함께 모시는 형태를 취한다.
또 북경시 교외에는 복전공묘(福田公墓)나 부속 납골당이 있고 개인의 묘가 나란히 있음을 볼수 있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도시 교외에서는 공영묘지가 있고 획일적인 석비(石碑)가 나란히 있다.
일본과 같은 가족묘는 없고 기껏해야 부부단위의 것이다. 장례식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작은 홀과 고관들이 이용하는 큰 홀이 있는데 큰 홀의 사용료는 천원으로 일반 평균소득의 5개월분에 해당한다.

북경시 빈장관리법 1985년에 실시
북경시에서는 1985년에 전 19조에 걸친 “북경시 빈장관리법”을 실시하고 빈장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북경시에서는 10개 이상의 공원묘지와 12개의 장례식장과 장송용품의 제조공장을 관할하고 있다.
빈장관리소의 종업원은 700명을 넘으며, 중국에서도 가장 선진적인 설비와 서비스로 처리하고 있다. 이슬람교도를 제외하고 북경시민과 재중 외국인을 대상으로 시신이송, 공수, 방부처리, 화장, 골회처리 등 장송에 관한 것은 전부 처리하고 있다. 상가지상. 복무제일(喪家至上、服務第一)를 모토로 손님에게 창조를 창조하는 서비스에 힘쓰고 있다.
사람이 사망하면 사망선고 후 공안국 파출소에 사망신고서를 제출하고 유족은 빈의관에 연락을 취해 시신을 마이크로버스로 빈의관까지 이송하게 한다. 빈의관에서 소정의 수속을 한 후에 시신을 냉장고에 안치한다. 유족은 빈의관의 담당자와 상담하여 조문시간, 장례형식 등을 결정한다.
중국의 “주민등록 조례”에 의하면 “시민이 사망했을 때는 도시의 경우에는 장사하기 전에, 농촌에서는 1개월 이내에 호주 친족, 부양자 또는 이웃이 주민등록 기관에 사망등기를 제출하고 주민등록을 말소”하게 되어 있다.

장례식의 진행 절차
장례식장 정면 중앙의 벽면에는 검은 띠를 넣은 영정사진을 안치하고, 양 옆에는 황색의 꽃으로 장식한다. 그리고 생화(주로 황색이나 백색의 국화)와 과일, 야채가 바쳐진다. 그 양측에는 큰 양초 한 벌과 향로를 놓는다.
관위의 양초는 일반적으로 흰색이 사용되나 80세를 넘어 돌아가신 분등의 경우에는 붉은 양초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양측에는 바구니에 넣은 꽃을 놓기도 한다.
또 영정사진 위에는 전(제사지낼奠)이라고 하는 글자가 두드러지게 크게 장식된다.
이것은 향전(香奠)의 전과 같은 것으로 엄숙하게 바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 올리는 물건으로서는 고인의 남편 또는 자식들이 마치는 애도의 말이 쓰여진 만장이 영정사진의 양옆 후방에 게시된다. 화환이나 꽃바구니는 입구 안쪽의 양측에 진열되며 장례식장내의 양측에는 긴 탁자가 있으며 조문객들은 이 탁자에 걸터앉아 차를 마시게 되어 있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긴 탁자가 놓여져 그곳에서 접수를 하며 보통 장례 때에 드리는 물건으로는 화환, 꽃바구니, 만장, 향전 등이 있다.
화환은 고인의 친구나 친척이 드리는 것으로 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것인데 화환은 대나무 또는 나무로 둥글게 만들어 색종이로 크고 작은 꽃을 붙여서 만든다. 중앙에 전(奠)이라고 크게 쓰고 오른쪽 위에는 “○○ 同市千古」=영원히, 왼쪽 밑에는 ○○敬挽=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등으로 기술한다.
장례는 현재 간소화를 향해, 일반적인 추도회는 장례식장 안에서 간단히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의식은 무종교, 즉 스님이 독경을 하는 경우는 없고 간단히 행한다.
추도식의 개회식 선언으로 시작되어 전체기립, 애가(哀歌)연주, 헌화 후 제문을 읽고 관을 향해서 3례(向霊前行礼三鞠躬=앞을 향해 3회 절)를 하고 내빈에게 절을 한번 하고(来賓致祭一鞠躬), 조사, 애가 연주, 내빈에 대해 유족은 한번 절을 하는 것으로 행사는 종료한다.
(公益社 엠바밍센타의 “宇屋 貴” 논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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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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