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한 슬픔이 묻어나는 이 시는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중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쓴 만시(挽詩)다. 유배 간 남편 대신 병든 몸으로 집안 대소사를 감당했던 고마운 아내의 죽음을 천 리 밖 유배지에서 들을 수밖에 없던 추사의 슬픔이 얼마나 큰 지가 간결한 시어 속에 녹아있다.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노래인 만시,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의 만시 이야기를 풀어낸 책 "옛 사람들의 눈물"(글항아리 펴냄)이 출간됐다. 한시를 전공한 저자 전송열 씨는 조선시대 문집마다 빠짐 없이 실려있는 눈물의 만시를 통해 절제된 언어로 표현된 옛 사람들의 슬픔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엿본다. 조선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어린 두 남매를 차례로 잃고 지은 만시는 조선시대 만시 가운데 비교적 널리 알려진 시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가 / 올해엔 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 슬프고도 슬픈 이 광릉 땅에 / 두 무덤이 서로 마주보고 섰구나 // (중략) // 너희 남매의 혼은 /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겠지 / 비록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 어찌 그것이 자라기를 바랄까" 자식을 둘씩이나 앞세운 형용할 수 없는 슬픔은 뱃속 아이가 대신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조선 후기 이양연이 몇 개월 새 아내와 아들을 차례로 잃고 지은 시에는 오히려 슬픔이 감춰져 있어 더욱 애절하다. "문을 들어서려다 다시 나와서 / 고개 들어 바쁘게 두리번대네. / 남쪽 언덕엔 산 살구꽃이 피었고 / 서쪽 물가엔 해오라비 대여섯" "슬픔을 피하려고"라는 제목이 붙은 이 시 속에는 아내와 아들이 떠난 빈 집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두리번대다 환하게 핀 살구꽃과 무심한 해오라비를 보고 참담함을 느끼는 시인의 모습이 담겨져있다.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시도 있다. "살아온 세월이 예순네 해나 되었어도 / 장부의 한평생 쉴 틈 없이 고달팠네 / 문장의 헛된 명성 끝내 화만 초래했고 / 좋은 벼슬 공 없이 먹은 국록 늘 부끄러웠네 / 눈은 천지 사이의 무궁한 일을 살폈고 / 마음은 백성의 다함 없는 시름을 안았노라 / 이제 저세상 돌아가면 모든 생각 끊어지겠지만 / 푸른 산은 변함없고 물은 동으로 흐르리라" 인조 때 대제학은 지낸 이식은 죽기 20일 전에 병상에 누워 이 시를 받아적게 했다. 높은 관직에 있었으면서도 늘 고달프고 부끄러운 삶이었다는 고백 속에는 인생에 대한 허망함이 녹아있다. 저자는 "만시는 자신의 슬픔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깊이 농축된 한없는 슬픔을 느껴보라고 한다"며 "내가 제문이나 묘지문 같은 산문이 아닌 만시에 주목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400쪽. 1만4천8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