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향기 진동하던 지난해 9월, 저는 출장 차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생폴 드 방스"에 있었습니다. 니스에서 남서쪽으로 30㎞ 떨어진 이 마을은 16세기 중세 유럽의 풍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데다, 화가 마르크 샤갈이 여기서 말년을 보냈다 하여 사계절 관광객이 북적이는 곳입니다. 카페와 갤러리, 아틀리에 즐비한 골목을 따라 마을 끝까지 올라가면 언덕배기에 공동묘지가 나옵니다. 샤갈이 묻혀 있는 곳입니다. 그의 캔버스를 물들였던 현란한 색채에 비하면 무덤은 단출하기 짝이 없지만, 바람 소리 때문이었을까요, 청명한 아침 햇살 덕분이었을까요. 그 앞에 서니 신령한 기운마저 느껴졌습니다. 무덤에는 마르크 샤갈과 그의 두 번째 아내였던 바바 샤갈이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만, 관광객들은 사별한 첫 아내 벨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고향인 러시아 비테브스크에서 벨라를 보고 한눈에 반한 샤갈은 툭하면 아내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지요. 얼마나 사랑했으면 아내를 안고 하늘을 나는 그림, 부엌 창가에 선 아내의 머리 위로 날아가 목 꺾어 키스를 날리는 그림을 그렸을까요. 그런 벨라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샤갈은 절망합니다. "하늘에선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쏟아졌으며 눈앞이 깜깜해졌다"고 울부짖으면서. 예수회 김영택 신부님은 갈등 있는 부부를 대상으로 한 피정(避靜) 때 반드시 "배우자의 장례식"을 치르게 합니다. 아내, 혹은 남편이 죽었다고 가정한 뒤 장례를 치르고 하루 동안 홀로 떨어져 있게 하는 의식인데, 이튿날 다시 만난 부부들은 예외 없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하지요. 물론 그 약발 길어야 한 달이고, 머리 나쁜 새처럼 싸우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한 세월 또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샤갈과 벨라처럼 사랑했던 날들이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사랑했던 만큼 실망도 커서 악다구니하며 싸우는 것이겠지요. 착하고 아름다운 벨라라고 해서 샤갈이 늘 예뻐 보이기만 했을까요. 제가 아는 어느 엽기적인 아내는 약만 바짝 올려놓고 코 골며 잠든 남편의 허벅지에 시퍼런 유성펜으로 가위 그림을 그려 넣으면 분이 풀린다고 하더군요. 누구는 남편 휴대폰에 문자 폭탄을 작렬하게 쏟아 붓고 나면 속이 뻥 뚫려 잠이 그렇게 잘 올 수 없다고 합니다. 남편이 죽도록 미울 때 그의 코흘리개 시절 사진을 꺼내 본다는 여인도 있습니다. 이 몹쓸 인간에게도 이처럼 천진난만한 때가 있었던가 웃음이 터진다면서. 아~ 닭살이라고요? 지금쯤 생폴 드 방스엔 붉은 장미꽃이 흐드러졌을까요. 남편과 자식, 모든 일상으로부터 증발해 버리고 싶을 때, 꼬불쳐 둔 쌈짓돈 털어 어디로든 훌쩍 떠나시자고요. 혼자인들, 동행이 남편이 아닌들 뭐 어떻습니까. ...-김윤덕 기자 [조선일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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