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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의사가 써서는 안되는 글입니다 -조용수

심신미약에 대한 공분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단다. 목적은 성공했다. 페이스북만 가지고 좋아요가 15만을 넘어섰다. 당장 청와대 답변을 요구해도 될 법하다.

그런데 입맛이 쓰다.
일단 명백한 직업윤리 위배다. 변호사는 살인자의 변호를 맡더라도, 비밀을 지켜주고 그를 변호해 주어야 한다. 의사 또한 살인자를 환자로 맞더라도 치료에 임해야 한다. 또 하나, 진료과정에서 얻은 환자의 비밀은 반드시 지켜주어야 한다.

직업윤리가 깨지는 건 심각한 문제다. 자신의 진료 정보가 공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면, 환자는 의사에게 모든걸 털어 놓을 수 없다. 그 결과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의사가 어느날 너의 성병 기록을 떠들고 다닌다고 생각해보라. 전문직의 프로페셔널리즘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물론 비밀유지가 금과옥조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다르게 볼 경우도 많다. 당연히 적법한 절차를 거친 법적 요구에는 응해야 하고.

그 외에 수필과 같은 형식으로 진료현장을 대중들과 나누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폐쇄된 의료 현장을 일반인들과 나누어 교감하는 효과가 있다. 단 이때는 대상이 되는 환자를 특정화하지 못하게 해야한다. 예를 들면 익명화나 일반화같은 처리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공익적인 면에서 실보다 득이 현저히 높다면, 정보공개가 인정받을 여지가 있을 수도 있겠다.
이번에 이슈가 된 글은 현재 수사가 진행중인 사건으로, 환자가 정확히 특정화되어 그 진료기록이 유출되었다. 그렇다면 공익적인 이득이 압도적으로 높아야 한다. 즉, 심신미약에 대한 감경이 쟁점이 되겠다. 안타깝지만 심신미약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는 많은 부분 오해에서 기인한다. 가해자는 어떻게든 형량을 줄이려 노력하는 게 당연하다. 인정에 호소하든, 탄원서를 모으든, 심신미약이니 봐달라고 요구하든.

 그런데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게 있다. 가해자가 심신미약을 주장한다고, 판사가 그걸 모두 받아들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 범죄자가 심신미약으로 감형까지 이어지는 건 쉬운일이 아니다. 음주상태면 감형받는다며 사람들이 분노하는데, 잘못된 정보다. 그런 경우는 심신미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형법에 적시되어 있다.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라고 부른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자의로 술을 마시고 상해를 가한다면, 만취상태라도 심신미약에 해당하지 않는다.

형법으로 처벌받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자신의 행위가 위법함을 알아야 한다. 둘째, 위법함을 알고도 자의로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 심신미약이 되려면 이 부분을 인정받아야 한다. 예를 들면 알콜중독자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자기 스스로 술을 조절할 수 없다. 그가 만취 상태에서 위법성을 인지못하고 범죄를 저지르면, 심신미약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 같다. 우발적으로 홧김에 저지르는 살인과 치밀한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살인은, 다르게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잘잘못을 구분 못하는 어린아이가 저지른 범죄는, 성인의 그것과 다르게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형법의 근간이 되는 원리다. 심신미약을 없애자는 주장은 형법을 근본부터 흔드는 행위다. 물론 법이 국민들의 법감정을 반영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에 따라 약간의 수정이 필요할수도 있다. 형법의 근간이 시대에 따라 바뀔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법 전문가들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요구에 따라야 할 분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가 있다.

현재 수사중인 사건이며, 심신미약으로 판결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연한 분노로 심신미약을 없애자는 선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장을 지지하게 하기 위해, 환자가 죽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심지어 일부 부분에선 사실과 추측을 혼재하여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극대화시켰다. 상처만으로 가해자의 심리까지 추정한 건 너무 나갔다. 문제는 추측으로 쓴 부분들마저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데 있다. 의사가 쓴 글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분노하고 이런 글을 쓸 수는 있다. 읽는 이의 감정을 쥐락펴락해서, 끝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글솜씨 또한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의사가 써서는 안되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글 출처 : 제3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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