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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대한'(大寒) 추위가 엄습한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로3가 모텔촌 뒷골목의 돈의동 쪽방촌은 거주민들이 쪽방에 웅크린 탓인지 인적이 드물어 한기가 더 했다. 사람 한 명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에서 마주친 쪽방 주민 이해완(65)씨는 "겨울에 난방을 틀어주지만 오후 6시부터 아침 7시까지뿐이어서 냉기가 가시지 않는다"고 한겨울 쪽방살이의 고충을 털어놨다. 한 쪽방건물 2층 3호실에 사는 전경천(58)씨는 "다들 고령에 몸 쓰는 일을 하는 데다가 술담배를 끊지 못해 건강이 안 좋다보니 겨울을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올 겨울만 10명 넘는 쪽방 주민이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황종구(46)씨는 "쪽방촌 거주민은 갑자기 시신으로 발견돼 뒤처리를 하려 해도 가족과 연락이 닿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집을 떠난 지 거의가 10∼30년가량 됐고 술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어 가족과 헤어진 경우가 많다 보니 가족이 시신을 수습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무연고자의 장례는 별다른 예식 없이 곧바로 화장되는 직장(直葬)으로 치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시립승화원에 따르면 2015년 서울승화원에서 화장된 무연고 시신은 총 335구다. 2013년 285구, 2014년 299구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시민단체들은 이날 돈의동 사랑의쉼터 지하 휴게실에 작지만 특별한 빈소를 차렸다. 고인(故人)은 쪽방촌 주민이었던 김철구(53)씨. 약 12년 전 쪽방촌에 입주한 김 씨는 끝내 끊지 못한 술·담배가 건강을 해쳐 이달 8일 숨을 거뒀다. 돈의동 사랑의쉼터와 서울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공동으로 차린 빈소에는 이날 주민 30여명이 방문해 김씨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옅은 미소를 띤 고인의 영정 뒤에는 '우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부디 편히 잠드소서'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영정 오른쪽에는 한과와 과일, 왼쪽에는 곶감과 생율이 가지런히 놓여 간소하게나마 예가 갖춰졌다. 상주를 맡은 한겨레두레협동조합 김상현 이사장이 먼저 분향과 제배를 하면서 향내가 휴게실을 가득 메웠다. 이어 평소 고인과 이웃살이를 하며 정을 나눴던 주민들이 조용히 분향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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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 추위에 몸이 떨리던 바깥 날씨와 달리 이곳 휴게실만큼은 삼삼오오 모인 쪽방촌 주민들로 따스한 온기가 감돌았다. 사랑의쉼터 이화순 소장은 "고인은 낯가림이 심하고 술을 마시면 다른 이들과 다툼이 잦았지만 풍채가 좋았고 일도 열심히 잘 했다"고 전했다. 고인을 자주 돌봤던 종로구보건소 방문간호사 최명숙(65)씨도 빈소를 찾아 "술담배를 오래 한 탓에 결국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셨다"며 슬퍼했다. 김씨와 친했다는 쪽방촌 이웃 박동기(62)씨는 "본래 곱고 순했지만 술을 마시면 욱하는 성격이었다"면서 "술 때문에 처자식이 떠나게 됐는데 끝내 관계회복을 못해서 아쉬워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빈소에 모인 이들은 돈의동 쪽방촌 '작은 장례'의 첫 주인공이 된 김씨가 "마지막 길이나마 외롭지 않게 세상을 떠나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우은주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사설 장례 비용이 비싸다 보니 장례 절차도 없이 재가 됐던 무연고자들에게 앞으로는 간소하게나마 장례를 마련해 존엄을 지켜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