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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구가로 변신 (사)나라얼연구소 황영례 소장

팔공산 동쪽 끝 경산시 하양읍 무학산 자락에 의미심장한 국가문화재가 하나 있다. 2010년 8월 국가문화재 266호로 지정된 ‘경산 상엿집’. 원형 그대로의 상엿집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유명 건축가도 있었다. 바로 승효상씨. 그는 마당에 고아처럼 서 있는 상엿집이 안쓰럽게 보여 실감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재능기부에 가까운 ‘깜짝 설계’를 제시했다. 하지만 관계자의 관심 부족으로 이 계획은 수포로 끝난다. '(사)나라얼연구소' 황영례 소장(53). 황 소장은 하양 감리교회 조원경 목사, 정년퇴직한 하양여중 서정미 역사교사 등과 2004년부터 큰일을 벌인다. ‘서울발 인문학’에 맞서 경산을 중심으로 ‘로컬 인문학’ 운동을 전개한 것. 유명 인문학자와 종교학자, 불교·기독교·유교 성직자 등을 초청해 매월 둘째 토요일 상엿집 바로 옆에 있는 허름한 한옥 죽계고택(竹溪古宅)에서 지금까지 106차례 인문학 특강을 이어왔다. 그러던 황 소장이 갑자기 ‘죽음 연구가’로 터닝했다. 계기가 있었다. 영천의 한 동네에 천덕꾸러기로 방치된 상엿집을 발견한 것이다. 일반 주택가와 맞물려 혐오시설로 전락한 상엿집은 모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고 있었다. 이 상엿집을 기사회생시키고 싶었다. 무학산으로 옮기기 위해 무려 4개월 심혈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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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엿집이 학계와 언론의 비상한 주목을 받자 또 다른 사고를 친다. 세계 각국의 장례와 상례 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국제학술세미나를 기획한 것. 온정의 손길도 모여들었다. 그래서 지난해 아직 유례없는 장례 관련 국제학술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었다. 지난달 30~31일 ‘상례-죽음과 삶을 잇는 기억의 장치’란 제2회 세미나까지 성사시켰다. 현재 연구소는 상엿집 두 채와 사당 한 칸, 상여 10여개, 영여(靈輿·혼백 싣는 가마) 20여개, 기타 상여 관련 문서 2천여점, 16세기 중반부터 1970년대 각종 서한·고문서 및 필사본 2만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9일 기자는 그 상엿집 안팎을 샅샅이 훑어봤다. ‘죽음의 집’이라지만 ‘살림의 집’처럼 더없이 마음이 편했다. 을씨년스러우면서도 처연한 자태의 흑회색 상엿집. 이들은 도대체 디지털 세상과 어떤 대화를 하고 싶은 걸까.


한국인의 일생 테마공원 조성 꿈


▲ 저도 오늘 상엿집을 처음 봤습니다. 죽음이 전혀 낯설지 않네요.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죽음을 적군이 아니라 우군으로 여기죠.”


▲ 상엿집이란 무엇인가요.

“상여를 보관하는 곳이죠. 수의는 시신이 입는 옷, 상여는 관이 입는 옷, 상엿집은 상여가 입는 옷이라고 이해하세요.”


▲ 전국 상엿집의 관리 실태가 궁금하군요.

“실태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전멸했으니까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 거의 사라졌죠. 전통 상여는 이후 합판, 플라스틱, 쇠 등으로 간편하게 만들다가 나중엔 하관 직후 그 자리서 태워버리는 20만~30만원짜리 꽃상여로 대체됐어요. 이제는 그마저도 사용하지 않고 관만 옮겨 매장·화장해버리죠. 경산 상엿집이 마지막 상엿집인 셈이죠.”


▲ 영천에 있던 상엿집을 무학산으로 옮기는 과정에 적잖은 고충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2008년 1월에 발견하고 4개월 죽을 고생을 했죠. 2천만원의 운송비를 들여 무학산에 안치시켰습니다. 원형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 트레일러를 동원해 통째로 옮겨왔습니다.”


▲ 지역 여론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군요.

“영천은 괜찮았는데 문제는 경산 지역의 여론이었습니다. 다들 상엿집을 납골당, 화장장, 쓰레기·방사능폐기물 처리장과 동급으로 취급하더군요. 일부 성직자들은 ‘귀신 나오는 집’으로 터부시하고 매도했어요.”


▲ 상엿집을 가까이 하니 남다른 죽음철학이 있을 것 같네요.

“삶이 실체라면 죽음은 하나의 ‘그림자’입니다. 우린 모두 햇살만 좇지 그림자는 멀리하려고 해요. 삶을 전제로 하지 말고 죽음을 전제로 자기 삶을 성찰해야죠. 그게 상례문화 현대화의 요체라고 봅니다. 다들 빈소에 오면 삶이 ‘공수래 공수거’란 사실을 알게 되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삶도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 나라얼연구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역사와 각종 자료를 통해 한국인의 심성 저변에 흐르는 그 주체성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상례문화도 그 중 하나죠.”


▲ 상례 관련 매머드급 국제학술대회를 두 번 개최했는데 이것도 아무나 시도하기 힘든 행사였을 것 같습니다.

“제 심정을 그대로 읽어주셨네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전통상례문화 국제학술대회 ‘상엿집-순간과 영원의 만남’을 주최했습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5개국 16명의 유명 학자가 참여했는데 의외로 큰 호응을 얻었어요. 여러 문중 어른들이 자기 일처럼 상엿집은 꼭 지켜가야 된다고 격려해줬습니다. ”


▲죽음에 대한 동양철학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동양사상에서는 일반적으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보고 천명이 다하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봅니다. 불교는 윤회를 통하여 어떤 모습으로든 되살아나고, 유교의 경우는 특히 장례와 상례를 중시했습니다. 선조의 영혼을 가정으로 끌어와 4대봉사를 하거나 불천위가 정해진 경우는 신위가 영원토록 후손과 함께하죠. 또한 족보를 통해 조상이 후손과 항상 대화를 했습니다.”


▲ 갑자기 일본의 상례가 궁금하네요.

“일본에는 우리처럼 조상을 위한 제사란 게 없습니다. 일본인들은 목사나 신부 앞에서 서서 결혼서약을 하고 아기가 태어나면 30일, 세 살, 다섯 살, 일곱 살이 됐을 때 아기를 신사(神社)에 데려가 신의 가호를 빌고 입학시험, 국가고시, 취업 등을 앞두고 신사에 가서 복을 빌죠. 결혼할 땐 ‘기독교식’, 살아 있는 동안엔 일본 전통종교인 ‘신도식’, 죽어선 ‘불교식’을 따릅니다.”


▲ 일본은 대다수가 화장을 하죠.

“일본은 1920년대에 ‘공동묘지법’을 만들고 화장을 의무화했어요. 요즘은 화장터 예약이 폭주해 드라이아이스 박스에 시신을 넣고는 보통 1주일 이상 순서를 기다립니다. 화장한 유골은 대부분 집 부근의 영묘원(靈廟園)이란 납골당에 안치를 합니다. 일본에선 유골을 모시는 납골당이 모여있는 공동묘지가 대부분 마을 내에 있죠. 납골당까지 만원이다보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고층 납골당까지 등장했습니다.”


▲ 우린 3일장인데 일본도 그런가요.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야마다신야 박사에 따르면 일본은 현재 3일에서 벗어나 당일 장례를 치르는 ‘직장(直葬)’이 유행이라네요.”


▲ 중국도 화장 위주죠.

“문화혁명 때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에 타격을 받죠. 그후에는 간단한 운구용 손수레로 상여를 대체합니다. 1980년대부터 화장이 주류를 이룹니다. 85년 국무원에서는 ‘빈장 관리에 관한 잠행규정’, 1997년 ‘빈장관리 조례’를 출범 시키며 모든 장례업을 통제합니다.”


▲ 중국 상가 풍속 중 우리와 가장 다른 건 무엇인가요.

“빈소 절 종류가 많아요. 우리는 재배 하나뿐인데 중국은 9배, 12배, 13배, 14배 등이 있습니다. 9배는 가장 가벼운 예로 보통 조문객이 하는 절이죠. 상주와 가장 가까우면 14배를 합니다. 장례 중 흥을 돋우는 음악 연주가 동반됩니다. 상주는 발인 전날 오후에 악대를 초청하죠. 형편이 좋은 집에서는 몇 개의 악대를 초청해 가세를 뽐내기도 합니다. 전남 진도도 이들처럼 상례를 하나의 축제로 보고 가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 효라는 게 동양철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동양사상에서 상례가 중요한 이유는 효는 부모의 죽음에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죽음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여기서 발견한 효를 자녀 교육으로 이어가죠. 예전의 효는 가족에 의해 지켜왔고 현재는 정부가 대신 지켜주고 있습니다. 양로복지시설, 요양원, 의료보험제도 등이 ‘현대판 효자’죠. 가정의 질서를 유지해주던 효가 ‘상업적인 효’로 변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상례는 갈수록 편리함만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 전통상례는 집성촌, 마을공동체가 주도했습니다. 불편하기보다는 오히려 어려울 때 상부상조하는 편리한 문화였죠. 그러나 현대 핵가족 시스템에는 어울리지 못했어요. 상례가 대폭 간소화될 수밖에 없었겠죠. 전통상례로의 회귀는 이제 불가능하니 대신 인문학적으로 그 정신을 살펴보자는 거죠. 그게 현대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없다고 하면 우리 연구소도 필요없죠.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흥미롭게도 여기를 찾은 이들에게 경산 상엿집을 보여준 뒤 죽음 얘기를 들려주면 다들 자기 삶을 더 치열하게 성찰하더군요.”


▲ 죽음 담론이 결국 ‘삶의 담론’인 셈이죠.

“정말 공감합니다. 죽음은 삶을 정화시키는 신비스러운 힘을 갖고 있어요. 다들 몸의 건강에 치중하지만 마음이 무너지면 몸도 무너지죠. 마음의 건강은 인간이 언젠가 죽는 존재라는 걸 자각하는 대목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죽음학이 절실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특히 학부모는 반대할 지 모르겠지만 청소년 자아찾기도 죽음 공부에서부터 시작했으면 좋을 것 같아요.”


▲ 나라얼이 어디에 있을까요.

“일단 서민의 삶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민중의 삶의 저변에 깔려 있죠. 민주사회인 대한민국이 국민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아직도 왕조사관에 매인 위정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나라얼이 회복됩니다.”


▲ 경산 상엿집이 삶과 죽음을 관조할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네요.

“항상 기도하는 거지만 태어나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죽어서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관혼상례 전 과정을 오감체험할 수 있는 ‘한국인의 일생 테마공원’을 무학산 중턱에 꼭 조성하고 싶습니다. 누구가 아니고 모두를 위하는 일이니 언론도 동참해야겠죠.”


▲언젠가 경산 상엿집이 ‘나라얼 충전소’가 되겠네요.

“그런가요. 꼭 그렇게 될 겁니다. 하하”


☞ 취재후기

상엿집을 촉매로 한국 장례문화의 원형을 복원하고 그걸 세계문화유산(UNESCO)에 등재하는 게 이 연구소의 당면 과제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상엿집이 국가문화재라서 규정상 연구소 사무실로 사용됐던 죽계고택도 철거해야만 한다. 상엿집 옆에 있는 죽계고택은 10여년 인문학 특강을 이어온 연구소의 핵심 공간. 상엿집을 옮겼올 때는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상엿집을 살려낸 연구소 건물이 되레 철거 직전이라니. 상엿집이 ‘호사다마(好事多魔)’가 되어선 안될 것 같다.  이 공간은 연구소 혼자서는 유지와 관리가 불가능하다. 개인의 문화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관계 당국의 지속적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다. [기사출처 : 영남일보 발간 주간지 '위클리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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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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