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살려 달라….” ‘미녀삼총사’ 멤버로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던 개그우먼 김형은 씨가 갑작스러운 빙판길 교통사고로 사망하기 전, 의식이 있고 말을 할 수 있을 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바로 ‘살고 싶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경추가 손상되는 중상을 입고 대수술 끝에 사망한 그는, 죽기 전까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기에 유언조차 남길 수 없었다. 결국 그가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한 애절한 호소가 유언이 되고 말았다. 김형은 씨의 사고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시 넘겨본 책이 바로 ‘영혼의 부정’이다. 의학박사인 스캇 펙이 쓴 이 책은, 안락사를 인정하는 것이 어떤 위험을 내포하는지를 설파한다. 치명적인 사고를 당했거나,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질병 말기로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환자가 있다면, 그의 죽음을 앞당겨주는 것은 정당할까? 만약 김형은 씨처럼 간절하게 살기를 희망하지만 자신의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면, 이를테면 식물인간 상태에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상태로 연명하는 환자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은 과연 인도적일까? ●자연스러운 죽음을 수용하며 삶을 완성해야●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말은 무척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 때문에 안락사를 자비로운 죽음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저자는 안락사를 ‘현존하는 비교적 말기 단계의 치명적 질병으로 육체적 죽음에 처한 경우, 그 고유한 생존적·정신적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또는 받지 않고 행하는 자살 행위’로 정의한다. 그리고 두 가지 이유에서 안락사를 비판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이 죽음을 통제하는 것은 영혼을 부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원래 죽음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점진적으로 인간에게 다가오기 마련인데, 그러한 죽음의 시점을 인간이 직접 선택하는 일은, 죽음을 부정하는 교만함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안락사를 비판하는 두 번째 이유는 개인적 성찰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펙 박사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부정→분노→거래→의기소침→수용’이라는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5단계’를 예로 들며 설명한다. 부정에서 수용의 단계에 이를 때까지, 인간은 모든 것을 버리고 포기하는 자기 비우기의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극복하고 얻는 내적 성찰이야말로 의미 있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즉 죽음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타인의 조력을 받아 자살하기보다, 고통에 직면하는 과정 속에서 배우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캇 펙 박사는 자연사에 수반되는 고통의 완화를 돕는 호스피스, 심리 상담 등 여러 대안이 있음에도 이를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안락사가 저렴하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생명 유지 장치를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는 환자들의 경우, 남겨진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도 적지 않은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는 생명을 의학적 기술로 연장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비용의 문제로 환산되는 현실에 대해 경계하는 것이다. 안락사의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첨예한 시각 대립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러나 스캇 펙 박사는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신의 영역을 인간이 침범하는 것에 대한 엄중한 경고를 남긴다. 다소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기는 하나, 그의 조언을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다. 스캇 펙 지음 민윤기 옮김 김영사 펴냄 9,9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