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개인전 여는 97세 할머니●
97세 할머니가 생애 첫 그림 개인전을 열었다. 전북 전주 한옥마을 갤러리 ‘써드웰’에서 15일까지 열리는 한선종 할머니(전주시 인후동)의 개인전 제목은 ‘할머니와 크레용’. 평생 그림을 배운 적도, 누구에게 보여 준 적도 없다. 2남 6녀를 키우느라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었다. 여덟 자녀 가운데 여섯이 박사와 교수다. 사위도 대학 총장과 부총장 등이다. 이만하면 성공한 자식 농사다. 그러나 8년 전 남편이 오랜 병치레 끝에 떠나자 외롭고 허전했다. 손자들이 쓰던 크레용으로 달력 뒷면에 심심풀이 삼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재주를 감출 순 없었다. 처녀 때부터 눈썰미가 있고 손끝이 맵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열일곱 살 때 전북 진안 친정에서 수놓은 동네 물방앗간 전경도 이번 전시회에 걸려 있다. 지난 3, 4년 사이에 스케치북 20여 권을 채웠다. 좋아하는 새와 꽃을 많이 그렸다. 자식들과 함께 드라이브하면서 보고 온 코스모스를 잊기 전에 크레용으로 화폭에 옮겼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고 느낀 풍경과 추억을 그림에 풀어 놓았다.
전시회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새와 꽃을 그려 놓고 혼자 좋아하는 편이었다. 막내딸이 어머니의 그림을 휴대전화로 찍은 것을 동네 미장원 원장이 우연히 보고 “그림이 너무 순수하다”며 전시회를 열자고 부추겼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뒤 심심하니까 집에서 달력 뒤에 손주들이 쓰던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셨습니다. 가족 누구도 전시회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전시회까지 열게 됐습니다.” 둘째 사위인 조순구 전 전북대 부총장은 “장모님의 전시회가 어버이날을 앞두고 좋은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머니의 피는 자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둘째 딸 유옥순 군산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서울 인사동에서 한국화 개인전을 열었고 둘째 아들 유심근 한의원 원장(전 원광대 한의대 교수)도 유화 작가로 활동 중이다. 넷째 딸은 펜화 작가다. 사위인 고석범 전북대 명예교수와 김도종 원광대 총장, 유철중 전북대 교무처장도 전시회를 적극 거들고 나섰다. 할머니의 그림은 첫 전시회와 함께 탁상용 달력으로 제작됐다. 달력으로 생기는 수익금 전액을 홀몸노인들에게 지원할 계획이다. 이번 전시회가 끝나면 할머니의 그림은 완주 봉서중학교와 노인복지회관 등에서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아흔일곱 할머니도 하는데….” 많은 사람에게 꿈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063-285-6149 [동아일보]
`어머니 그 짐 제게 내려주소`
한국구상조각의 1세대인 백문기(88·전 이화여대 교수) 작가의 생애 첫 개인전 ‘사람을 빚다, 백문기 조소’ 전이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성북구립미술관에서 5월 25일까지 열린다. 1927년생으로 서울미대 조소 전공 1회 졸업생인 백 작가는 1958년부터 1967년까지 이화여대 조소과 교수를 역임했다. 1949년 제1회 국전 특선을 비롯해 ‘강릉지구 공군전적비’와 ‘이준 열사 흉상’ 등의 기념상을 만들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995년에는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등을 수훈했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한국조각의 전환기에도 철저한 사실주의와 전통기법을 고수하며 순수한 조형미를 추구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에선 자신의 첫 조각 작품인 1941년 작 ‘에튜드’를 비롯해 한국전쟁 당시 대구로 피난가면서도 챙겼던 ‘K신부상’, 국전 특선작인 ‘L부인’과 반가사유상의 분위기가 나는 ‘명일’ 등 초창기 작품을 선보인다. 거친 세파를 이겨낸 한국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1960년작 ‘모심’을 비롯해 1980년 친분이 깊었던 구상 시인의 두상을 빚은 ‘구상’과 2009년 대리석으로 새로 작업한 ‘인상’도 내놨다. 총 25점이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은 “백문기 작가가 1940년 무렵부터 성북구에서 10여년간 거주한 인연으로 전시를 열게 됐다”며 “초창기 작품 대부분이 성북구에서 제작됐던 만큼 이번 그의 첫 개인전이 뜻깊다”고 말했다. 02-6925-5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