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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세월호 기억저장소’ 조성



불이 켜졌다. 145m² 네모난 천장에 줄지어 매단 304개의 기억이 은은히 밝아졌다. 빛은 충분히 밝은 듯한 채로 벽면 곳곳에 깊은 그늘 덩어리를 뿌렸다. 표면을 굴곡지게 빚어 구워낸 직육면체 도기(陶器) 함 속에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를 집어넣어 천장에 하나하나 올려 묶었다. 11일 밤 경기 안산시 단원구의 한 상가건물 3층. 60여 명의 건축가와 시공사 5곳, 가구와 자재업체 등 건축계 인력들이 뜻을 모아 만든 ‘세월호 기억저장소’가 그렇게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곳은 세월호 희생자 304명의 생전 흔적을 모아 방문자들이 저마다의 기억에 쉬이 담아 가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공간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머문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앞에서 관련 기록을 수집한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자료가 공간을 마련하는 씨앗이 됐다.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단원고 인근 상가 내 공간 두 곳을 임차한 김 교수는 ‘도움을 줄 만한 건축가’를 수소문하다가 연락처를 얻게 된 윤승현 인터커드건축사사무소 대표와 조준배 SH공사 재생기획처장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희생자들의 유품과 사고 관련 자료를 보관하며 사람들에게 보여줄 공간을 다듬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예산은, 없습니다.”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일을 도와달라는 요청. 거절한 건축가는 한 사람도 없었다. 도움의 손길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연결되며 불어나던 중 새건축사협의회가 지원 조율을 맡았다. 연락을 받은 시공사와 가구, 자재업체도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는데 기회가 생겨 다행”이라며 흔쾌히 각자 도울 수 있는 몫을 맡아줬다. 문짝, 창틀, 페인트, 전기설비, 공조시설, 조명, 가구…. 공사에 필요한 1억1000만 원의 비용이 거짓말처럼 여럿의 도움으로 스르르 해결됐다. 30여 년 전 건물이 지어진 뒤 내내 방치됐던 복도 화장실과 계단실 벽면 페인트는 건축가들이 직접 보수하고 새로 칠했다.


밤하늘처럼 깊은 푸른빛으로 칠한 전시실 벽면에는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빈 방을 촬영한 사진을 걸고 생전 남긴 이야기를 적었다. “인생을 재미있게 살자. 좌절하지 말자. 열심히 잘 살자.”(8반 박선균) “말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에요. 말로 상처를 줄 수 있으니 아껴야 해요.”(4반 빈하용) “엄마, 내가 약간 힘들고 아프니까 조금만 이해해주세요.”(6반 정원석) “엄마 힘들었지? 내가 상 차릴게. 요리사가 되면 호강시켜 드릴게요.”(6반 이태민)


저장함 디자인에는 희생자 어머니 6명이 논의 과정에 참여해서 낸 의견을 반영했다. 의정부 작업실 아궁이 앞에 종일 앉아 하루 14개씩 이 저장함을 빚어 구운 도예가 김태곤 씨는 “봉안당처럼 우울하고 엄숙한 공간이 아니라 밝고 활기찼던 아이들의 삶의 기억을 담을 수 있는 공간에 어울리는 형상을 내놓으려 고민했다. 작은 도움이나마 보탤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031-410-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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