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1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종합뉴스

“이것이 삶의 끝은 아니다”

“한달 전,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팔팔하다고까지 느꼈다. 여든한살에 나는 여전히 날마다 1마일(1.6㎞)씩 수영을 한다. 하지만 내 운은 다했다. 몇주 전 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알았다. 9년 전 안구 흑색종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 등을 했지만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 암이 전이될 확률은 무척 낮다. 내가 바로 그 불행한 2%에 속했다.”


평생 다른 이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나이가 든 의사가 자신에게 남은 날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할까? ‘의학계의 문인’으로 유명한 미국의 신경학 전문의 올리버 색스 박사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죽음을 앞둔 심경을 담담하게 밝힌 글을 <뉴욕 타임스>(NYT)에 지난 19일(현지시각) 기고해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최초 암 진단 이후 9년 동안의 시간에 감사한다는 색스 박사는 “이제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간의 3분의 1을 이미 차지한 암세포의 확산을 조금 늦출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나에게 남은 몇 개월을 어떻게 살지는 나한테 달렸다. 최대한 풍요롭고 깊이 있게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색스 박사는 평소 좋아했던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을 떠올렸다. 65살에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흄은 1776년 4월의 어느 날, 하루 만에 짧은 자서전을 썼다. 제목은 ‘나의 인생’(My Own Life). 색스 박사의 기고문도 같은 제목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순간보다 삶에서 더 초연해지기는 어렵다”는 흄의 말을 인용하며, 지난 며칠간 인생을 한발 떨어져 조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삶의 끝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반대로 나는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그 시간에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하고, 더 많이 쓰고, 힘이 닿는다면 여행도 하고, 이해와 통찰력을 한 단계 높이게 되기를 희망한다.” 색스 박사는 “나와 내 일, 친구들에게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뉴스를 보지 않을 것이며 정치와 지구 온난화 논쟁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중동 문제와 지구 온난화, 불평등의 심화를 걱정하지만 이제는 내 일이 아니라 후세들의 문제라고 한걸음 물러섰다.


색스 박사는 죽음이 두렵지만, 사랑하고 또 사랑받았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썼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지각력 있는 존재였으며,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특혜와 모험이었다”고 글을 맺었다. 색스 박사는 다양한 신경장애를 앓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로 널리 알려졌다. 임상 사례도 소설처럼 엮어내는 이 신경학 전문의를 두고 <뉴욕 타임스>는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불렀다. 또 파킨슨병 환자 치료기를 담은 <소생>은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에서는 자신이 병상에서 경험한 환자의 병원 생활을 신랄하게 담았으며, 이밖에도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영국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색스 박사는 옥스퍼드대학을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 의료센터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뉴욕대학 의과대학원에서 신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배너

포토뉴스


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발행인 칼럼

더보기
[칼럼] 상조단체 상조협회 이야기
조직이란 소속된 구성원들의 친목과 함께 공동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란 점이 핵심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상조산업계도 2021년을 기점으로 비영리 공인 단체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전국적인 단일조직은 아니지만 어쨋든 공식 '사단법인'이란 점에서 의미있는 발전이다. 한국상조산업협회는 설립 허가를 받은 후 박헌준 회장 이름으로 “공식적인 허가 단체로 거듭난 협회는 회원사와 더불어 장례문화발전과 상조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기자는 관련 기사에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희망사항을 곁들였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상조산업의 문제점은 원래의 본향이었던 상부상조, 아름다운 품앗이의 핵심, 장례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의례서비스의 근본을 떠나 소위 결합상품 내지는 의례와 거리가 먼 라이프서비스로 주업태를 변경시켜 가며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조고객의 대부분이 미래 장례를 목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면 상조산업 발전과 장례문화 발전이 동일한 의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자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상조산업협회'가 설립목적으로 명시한 "상조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

해외 CEO 칼럼 & 인터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