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번화가 하라주쿠(原宿)가 젊은이들의 거리라면 스가모(巢鴨)는 노인들의 거리다. 스가모역 인근 지조도오리(地藏通) 상점가는 철저하게 노인의 수요에 맞춰져 있다. 스가모에는 하라주쿠처럼 최신 유행 패션은 없지만 내복 가게, 카스텔라 상점, 약국 등 고령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과 편의시설이 가득하다. 어르신들을 배려해 가격표는 큼지막하고 거리 곳곳에 벤치와 쉼터가 있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일부러 느리게 작동시킨다. 이 노인 전용 상점가는 매출이 수년째 오르고 있어 노인 복지를 연구하는 유럽 학자들이 논문을 쓰려고 자주 찾는다. 노인들만의 공간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서울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주변이 떠오르지만 이들 공원은 소일거리가 없는 노인들이 그저 시간을 때우는 쉼터 성격이 짙다. 서울시는 2012년 스가모 거리를 모델로 삼아 탑골·종묘공원 일대 환경을 개선하는 설계 용역을 발주했으나 아직 스가모 거리처럼 연간 900만명이 찾는 명소로는 발돋움하지 못했다.
한·일 양국의 고령자들을 위한 사회환경 조성은 이처럼 다르다. 연금 등 고령자들의 삶의 질도 천양지차다. 연금제도가 성숙된 일본에선 65세 이상 고령자의 공적연금 수급률(2012년 기준)이 96.4%에 달하고 1인당 월평균 수령액은 160만원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는 공적연금 수급률(2012년 기준)이 34.8%, 지난해 1인당 월평균 수령액은 36만원에 불과했다. 일본 노인들은 든든한 공적·사적연금소득으로 노후를 보내고 있지만 노후소득 보장 체계가 미흡한 한국의 노인 중 상당수는 여전히 은퇴 이후에도 일을 해서 생활비를 대고 있다. 일본 고령자 평균 소득의 74%가 연금소득인 반면 우리나라 고령자 생활비의 53.1%는 근로·사업소득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본 고령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28.7%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41.6%에 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은 단순노무직이나 농림어업 위주여서 양질의 일자리 개발이 절실하다.
보험연구원 류건식 고령화연구실장과 김동겸 선임연구원은 13일 발표한 ‘한국과 일본 노인 삶의 질과 노인 복지에 관한 소고’에서 우리나라 노인들의 공적연금 수급률을 높이는 등 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소일거리가 없는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한국형 스가모 거리 조성을 제안했다. ‘고령화사회’ 선배 격인 일본이 노인 복지 측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앞서 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각종 지표를 보면 양국 간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국제 노인인권 단체인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이 지난해 91개국의 노인 복지 수준을 평가한 결과 일본은 100점 만점에 83.1점으로 종합 10위(아시아·중동권 가운데 1위)에 오른 반면 한국은 39.9점으로 67위에 그쳤다. 우리나라는 특히 세부 항목 중 소득 분야에서 8.7점으로 90위에 머물렀다. 소득 부문 점수가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꼴찌인 아프가니스탄(2.1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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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고령자 공적연금 수급률, 日 3분의1…정부대책 시급"
국내 65세 이상 고령자의 공적연금 수급률이 일본(96.4%)의 약 3분의 1 수준인 34.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고령자의 연금수급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금 가입 사각지대에 놓인 임시직 일용직의 국민연금 가입률을 높이기 위한 정부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은 13일 ‘한국과 일본 노인 삶의 질과 노인복지에 관한 소고’ 보고서를 통해 “연금제도가 어느정도 성숙된 일본의 경우와 달리 우리나라는 수급률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40~50대 미래 국민연금 수급자 계층에 대한 지원을 높여 국민연금 수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10월 기준 국민연금 가입률은 상용근로자가 97%인 반면, 임시·일용근로자는 17.1%에 불과했다. 특히 자영업 중심인 농림어업부문의 가입률은 16%로 더 낮았다. 류 실장은 “저소득층 등에 대한 연금보험 가입을 지원하고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 정부는 별다른 지원책이 없다”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연금 수급률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1988년에 도입돼 납입기간이 짧기 때문에 납입 기간을 연장하고, 수급 개시 기간을 연기해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은퇴 후 소득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큰 차이를 보였다. 2012년 일본 고령자의 주요 소득에서 가장 크게 차지하는 부분이 연금소득(74%)인 반면, 우리나라는 근로소득(53.1%)이 가장 높았다. 국내 고령자의 소득에서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소득 대비 15.8%(퇴직급여 포함)에 그쳤다. 국내 65세 이상 고령자의 경제활동참가율(남성기준)은 41.6%로 일본의 28.7%에 비해 13%포인트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노인인권기구(HAI)가 발표한 ‘2013년 노인 삶 지표(Global AgeWatch Index)’에 따르면 91개 조사대상국 중 소득보장 부문에서 한국의 순위가 최하위권인 90위, 일본은 27위로 분석됐다. 건강상태와 고용수준, 사회환경 부문을 고려한 종합순위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67위, 10위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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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카이 세대 한꺼번에 고령층 편입되자… 日 노인복지 대폭 축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5년부터 1953년 사이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단카이 세대·團塊世代)가 한꺼번에 고령층에 편입되면서 일본 정부가 노인 복지 혜택을 크게 줄이고 있다. 일본 국회는 18일 정부가 제출한 의료간병종합추진법을 통과시켰다. 핵심은 ‘부자 노인이 사회보장의 혜택을 누리려면 자기 돈을 더 내라’는 것이다. 먼저 돈 있는 노인들의 자기부담비율을 인상했다. 노인 시설에서 목욕을 하거나 체조를 하는 ‘데이 서비스’를 주 3회 받을 때 내야 하는 비용은 지금까지 일률적으로 한 달에 1만 엔(약 10만 원)이었다. 하지만 2015년 8월부터 연간 개인 수입이 280만 엔 이상이면 2만 엔을 내야 한다. 전체 고령자의 약 20%로 추정되는 고수입 고령자에 대해 각종 요양 및 간병 시설의 자기부담비율을 10%에서 20%로 올린 것이다.
예금도 부자와 가난한 노인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노인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만들어진 노인보건시설을 이용할 때 개인 기준 1000만 엔이 넘는 예금을 갖고 있으면 국가 보조가 줄어든다. 보건시설의 식사비가 월 2만 엔에서 4만2000엔으로, 독실 이용료는 월 4만 엔에서 6만 엔으로 오른다. 항상 간병이 필요한 사람이 이용하는 특별양호노인시설에는 장애를 갖고 있거나 치매에 걸린 고령자를 빼고는 입소하기가 어려워진다. 일본 정부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장애가 가벼운 고령자는 마을 내 자원봉사자나 비영리법인(NPO)의 도움을 받도록 했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이번 제도 개정으로 2015∼2017년에 연간 1430억 엔의 국가 보조금이 절감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고령자 지원에 들어가는 국가 보조금은 현재 약 10조 엔에서 2025년에는 약 20조 엔으로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단카이 세대 650만 명이 만 75세 이상이 되는 2025년에는 인구의 5분의 1이 75세 이상이 되고 이들을 부양하는 15∼64세 인구는 지금보다 13%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는 보조를 추가 감축하는 방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17일 국회 답변에서 “사회보장 재원 기반의 안정성을 생각하면 자조(自助)정신 없이 유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인을 위한 사회보험제도를 이용자의 경제력에 맞춰 개정하는 데 양해를 구하면서 추가 부담이 생길 수 있음을 예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