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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한인 공동묘지에 얽힌 초기이민자들의 애환

한인이 미국으로 이민간 것은 언제·어디일까? 하와이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을 위해 떠난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이 미국 첫 한인 이민자의 무덤을 찾아 추모했다. (사)건국이념보급회(회장 인보길)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가 후원하는 하외이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 행사에 참석한 18명의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24일(현지시간) 김효선 사무총장 인솔로 하외이 빅아일랜드 힐로에 위치한 알라에 한인공동묘지를 찾았다. 알라에 한인공동묘지는 1939년 처음 만들어졌고 한인들의 무덤은 156개가 있다. 1998년 대한민국 정부는 하와이 빅아일랜드 힐로 알라에 한인공동묘지에 한인이민조상기념비를 만들었다.



이날 한인공동묘지를 찾은 한 대학생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이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왔는지 늘 궁금했는데 하와이에 최초로 이민을 온 한인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난 뒤 그 의문이 풀렸다"며 "미국 한인동포의 뿌리가 대한제국 시기에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왔던 이민자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됐다"고 말했다. 1902년 12월 대한제국의 한인 102명이 인천항(당시 제물포항)을 출발해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한인의 첫 미국 이민자는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였다. 미국은 하외이에 거주하며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던 자국민들이 요청으로 한인들의 노동력을 요구했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의 비율은 당시 일본인이 60%이상 차지했었다. 노동자들의 파업을 막고 일본인 노동자의 지나친 파업을 경계할 목적으로 한인들의 이민을 요구한 것.


1887년 조선과 미국의 통상수호조약으로 미국으로 이민은 가능했지만 타향으로 떠나겠다는 한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첫 하와이 이민자들은 그 두려움을 종교로 해소했다. 기독교 탄압에 힘들어하던 당시 인천 내리교회 신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하와이 이민을 적극적으로 검토했다. 최초 미국 하와이 이민자102명 중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였다. 1902년부터 1904년까지 7천여명의 한인들이 하와이 호놀룰루의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이민했고 이들이 정착해 미국 내 한인 사회를 최초로 형성했다. 하와이에 정착한 한인들이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1905년부터 한인들의 사회가 형성됐다.


하와이 1세대 이민자들은 학교와 교회를 지어 자립적인 생활 공간을 형성했다. 1906년 처음 생긴 한인기숙학교가 이민 한인들의 교육을 위해 세워진 첫 학교였다. 한인기숙학교는 1912년 하와이에 입국한 이승만 박사가 1913년 이 학교의 첫 한인 교장이 되면서 남자학교에서 남녀공학으로 학제를 변경하고 이름을 한인중앙학원으로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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