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서도 “우리 일이 아니라”=취재팀은 정부 부처들을 상대로 문제점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대책은 없는지 물었다. 예상 외로 정부 당국자들은 상조업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감을 잡고 있는 눈치였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소비자가 안심할 만한 장치가 없는 게 사실이지만 관할 부처가 없다보니 관리·감독이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이 문제에 대해 손을 놓고 있음을 시인했다. 장례 분야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우리는 국민의 보건과 건강을 책임지는 곳”이라며 “상조 문제의 핵심이 소비자 피해인 만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조 관련 피해가 주로 계약 해지, 회비 납입 등 소비자 보호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공정위가 할부거래법을 반영해 관할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다만 복지부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달 초 공정위에 공문을 보내 일본에서처럼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로 규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일본을 빼곤 할부거래법이 소비자신용 쪽으로 발전하는 게 세계적 추세”라며 “상조 서비스는 소비자 신용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장례산업을 관장하는 복지부에서 맡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금융감독 당국, “수사권이 없어서”=다른 유관 부처들과 마찬가지로 금융감독기관도 ‘우리 일이 아니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보험업계를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제도권 금융기관 감독에도 바쁘다”는 반응이었다. 금감원 관계자는 “상조업은 법의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하는 유사보험 형태로 볼 수 있지만, 법적으로 금감원의 감독 대상이 아니다”며 “상조회사를 규제할 법이 사실상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상조보증의 경우 보험업법 위반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지만, 금감원에 수사권이 주어져 있지 않으니 문제가 있다면 경찰 등 수사기관이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위 관계자도 ‘관련 법도, 소관 부처도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오히려 “수사기관이 맡아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비제도권인 상조업까지 관리하려면) 인력과 기구를 그만큼 확충해야 한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는 다만 “문제가 심각하다면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국민을 보호할 필요가 있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국회도 한몫, 업계 제도화 요구 묵살=국회도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면키 힘들다. 상조업계는 국회에 수차례 상조업 관련 법률 제정의 필요성을 진정했지만 아무런 구체적인 답변을 얻지 못했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상조연합회중앙회(현 한국상조연합회)는 2002년 4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조업체 난립으로 소비자 피해가 예상된다’며 관련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진정서를 냈다. 국회는 이에 “입법 필요성을 검토하는 한편 공정한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진정 처리 결과 문서를 회신했지만, 지금까지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국회 관계자는 “그런 진정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데 우리가 그런 걸 일일이 다 검토하기엔 국회 자체 일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한편 업계는 1999년부터 최근까지 5∼6번 법 제정 진정을 넣었지만 그때마다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상조연합회 관계자는 “99년 국회의장과 국무총리실에 직접 찾아가 공문을 제출했는데, 그 자리에서 ‘해당 사항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 |
우리나라 상조업은 50년 역사의 일본 상조회에서 따왔다. 그러나 우리의 모방은 상조업계의 서비스 제공이나 판매 방식과 같은 ‘형식’에 그쳤다. 소비자가 맡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보증 시스템이나 회사 설립의 법적 규정 등 알맹이가 빠져 있다. 일본 상조회는 회사 설립에서 자금 운용, 소비자 약관, 결산까지 정부 규제를 받는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2005년 11월 발표한 상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에는 1999년 기준으로 348개 상조회가 영업 중이다. 이들 회사는 ‘할부판매법’에 따라 경제산업상의 허가를 받아 세워졌다. 상조업이 할부거래법 적용을 받지 않는 우리와 달리, 일본 정부는 상조 상품이 ‘돈을 미리 내고 서비스를 나중에 받는다’는 점에서 상조업을 ‘선불식 할부판매’로 규정하고 있다. 설립 허가를 신청하려면 연간 판매액과 자본금 출자액 요건 등을 충족해야 한다. 연간 판매액은 1000만엔 이상이고, 자본금 출자액은 영업점 수에 따라 단계별로 다르다. ‘영업보증금 공탁 제도’ 와 ‘선수금 보전 조치’도 ‘소비자 안전장치’가 전무한 우리가 눈여겨볼 만한 점이다. 영업을 허가 받은 상조회사는 우선 본사 소재지 공탁소에 영업보증금을 맡긴다. 본사는 10만엔, 영업소(대리점)는 5만엔이다. 상조회사는 또 매년 2회(3월 말과 9월 말) 가입자로부터 받은 회비의 절반이 영업보증금을 초과하는지를 살펴, 그 초과분을 경제산업성에서 지정하는 금융기관에 내야 한다. 법무국과 경제산업상이 지정하는 보증회사, 은행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소비자 약관 역시 규제 대상이다. 약관이 할부판매법 시행규칙에 규정된 기준에 맞아야 설립 허가를 받을 수 있다. 1978년 이후 각 회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표준약관은 ▲상조회 시스템 설명 및 계약서 작성 ▲계약 철회권(쿨링오프) 제도 ▲해약수속 장소 기재 ▲해약 반환금 60일 이내 지급 등을 담고 있다. * |
전문가들은 일부 상조업체의 경영 부실이 심각하고 소비자 피해도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상조 자체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상조회사의 ‘토털’ 장례 서비스야말로 핵가족화와 고령화 추세 속에 살고 있는 소비자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상조회사가 장례물품을 다량으로 구매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통해 저렴한 서비스가 가능한 점도 양성화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로 꼽혔다. 권대우 한양대 법학과 교수는 “상조업은 바쁜 현대인들의 각종 가족 이벤트를 대행함으로써 가족복지 측면에서 발전 가능성이 있다”며 “잘 정착시키면 가족을 중시하는 동양권은 물론이고 가족 문화가 발달한 이탈리아 터키 등 지중해 유럽까지 수출할 수 있는 미래산업”이라고 말했다. ◆제도권 연착륙 위해 입법화 필요=양성화의 첫걸음은 상조업을 규제할 법령을 마련하는 데 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입법화 방안은 세 갈래다. 먼저, 보건복지부의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상조업 규정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상조업이 장례 서비스를 주축으로 하는 만큼 기존 장례식장 규제를 규정하는 장사법에 포함시키자는 얘기다. 그러나 상조 서비스는 장례에 국한되지 않을뿐더러 상조업계와 경쟁관계에 있는 장례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걸림돌’이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할부거래법’ 개정도 대안으로 꼽힌다. 일본이 상조업을 ‘선불식 할부거래’로 규정해 ‘할부거래법’을 적용하는 방식과 같다. 이 경우 회사의 허가신청 요건과 영업허가 기준은 물론, 보증 시스템까지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상조업 용역 보고서를 작성한 권대우 교수나 연내 입법화를 추진 중인 조중래 한국상조연합회 회장이 대표적이다. 장례는 물론 결혼, 돌잔치 같은 가족 이벤트를 대행할 상조업의 장래성을 감안할 때, 별도의 법 제정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설립허가제 및 보증 시스템 구축=입법의 핵심 내용이 소비자의 회비를 ‘안전하게’ 보전할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주로 일본의 보증 시스템을 ‘본보기’로 삼았다. 전문가들은 영업보증금을 국가가 보증하는 기관에 맡기는 공탁금제와 상조회사들이 연합해 일정 금액을 자체 적립하는 공제제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상조업계의 재정 상황을 감안할 때 ‘단계적 도입’이라는 정책적 배려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설립 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정명근 한국상조연합회 사무총장은 “허가제로 가되, 기존 업체는 요건을 갖출 때까지 유예기간을 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권 교수는 “업계의 자율 규제 능력만 갖춰진다면 신고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소비자 피해 막을 표준약관 제정돼야=불공정 약관 실태를 바로잡는 표준약관 제정도 시급하다.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소비자 피해 조사에서도 ‘과다한 해약 환불률’이 가장 많았다. 공정위는 지난 8월 보람상조개발, 현대상조, 조흥상조, 동남상조, 한라상조, 고려라이프상조서비스 등 7개 사 약관을 심사하고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공정위가 전국 300개 안팎의 상조회사를 대상으로 약관을 심사하기엔 물리적 어려움이 크다. 또 공정위의 권고 사항이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한계도 뚜렷해 표준약관 제정이 더욱 절실하다. 황진자 소보원 연구원은 “약관 제정 시 약관의 교부 시점, 청약철회 인정, 실효·부활 조건의 적정성, 양도 시 수수료의 적정성, 중도해지 요건 및 위약금의 적정성, 회비 보증 등의 내용이 포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
● "상조업이 뭡니까” ● 취재팀이 소비자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정부 고위 당국자에게 상조업의 문제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는 기자의 설명을 듣자 그제서야 “아 들어본 것 같네요”라며 “민간에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고위 간부뿐 아니라 실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부처의 서기관은 “그런 거 잘 모른다” “다른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전화를 사무관에게 돌리기도 했다. 취재팀은 이처럼 상조문제에 그나마 감을 잡고 있는 이들을 찾기조차 힘들었다. 한 정부 관계자는 “계도 문제가 많지만 정부가 개입하지는 않는다”며 “결국 상조회사도 계처럼 운영되는 것인데 법까지 만들어 규제해야 하느냐”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200만명 안팎의 회원이 가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그에 맞춰 서민 피해도 늘어가고 있지만 정부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고 있었다. 규제할 법이 없기 때문에 관리·감독 대상이 아니라는 정부 당국자의 주장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상조업이 시작된 지 20년이 넘었고, 최근 2∼3년 사이 업체 난립으로 올 1∼10월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피해건수만 389건에 달하는데도 정부가 모른 척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안전장치가 마련된다면 상조업이 유망한 서비스 업종이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정부와 국회는 더 늦기 전에 관련법 제정 등을 통해 상조업 양성화에 나서야 한다. 상조문제를 방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민 피해는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