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1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종합뉴스

박찬호의 선택

 

1990년대 후반, IMF 구제 금융 사태로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힘차게 공을 던지며 국민에게 희망을 주던 야구 선수가 있었다. 5년간 75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국민을 위로한 그는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40) 선수. 국내 복귀 때도 박 선수의 국민을 위한 사랑은 계속됐다. 계약금 6억과 구단에 백지 위임한 연봉 2,400만 원까지 모두 기부를 한 것이다. 현재도 재단을 설립하여 나눔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박찬호 선수. 그를 만났다. 사실 처음 요청을 했을 때 박찬호 선수는 인터뷰를 망설여 했다. 자신의 기부 등 나눔 활동이 부각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것. ‘선행은 최대한 남몰래’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 박 선수의 마음이 움직인 것은 ‘선행의 롤모델이 되어 달라’는 기자의 부탁 때문이었다. 그렇게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미국에 처음 넘어갔을 때 적응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어요. 그때마다 국내의 팬들과 미국의 교포들이 마치 가족과 같이 응원을 해주어서 미국 생활을 견딜 수 있었어요. 이러한 응원 덕에 미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고요. 이에 저 역시 저를 응원해준 동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고민하던 중에 재단을 설립하여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찬호 재단은 1997년 설립됐다. 매년 유소년 야구 꿈나무와 소년 소녀 가장 약 20여 명의 아이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하지만 박 선수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힘쓰는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이들과의 소통이다. “장학금을 통해 금전적인 지원을 하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장학금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밥도 먹고 대화의 시간도 갖고, 강의도 하며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려고 하고 있어요.”  박 선수의 이러한 지원은 많은 아이가 사회에 나가 제 몫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걸출한 프로야구 선수들이 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박 선수는 “장학금을 받고 성공한 것이 아닌, 성공한 사람들 덕분에 자신이 준 장학금이 두드러지는 것일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박찬호 선수는 재단 외에도 개인적인 기부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만원의 기적 프로그램. 1일 1만 원씩 1년 365만 원씩 1만 명이 모여 어린이 재활 병원을 건립한다는 취지의 이번 행사는 박 선수의 오랜 친구인 가수 션의 추천으로 시작했다. “처음에 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이야기했어요.”

 

박 선수의 이러한 기부 소식은 김태균, 류현진 등 후배 선수들의 참여로 이어지기도 했다. “후배들이 동참을 해줘서 고마웠고 더 힘이 되었어요. 이렇게 선행이 다른 사람들 통해서 넓게 퍼질 수 있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밝게 웃는 그에게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박 선수는 자신이 이렇게 기부를 생활화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본 자연스러운 기부 문화 덕분이라고 이야기했다. 기부 문화가 비교적 활성화된 미국에서 소속 팀 자체에서도 기부를 자주 하며 아이들과 함께 야구 클리닉을 하는 시간도 가졌다고 했다. “미국에 있으면서 기부 활동이나 사회 환원 활동을 하는 것을 자주 보았어요. 이러한 기부 활동을 보고, 제가 참여하면서 점차 기부 문화가 익숙해지고 어느덧 습관이 되었어요. 나쁜 행동이 습관으로 될 수 있지만 좋은 일 역시 습관이 될 수 있어요.” 박 선수는 기부에서 습관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이러한 기부 활동을 보면서 나중에 능력이 생기면 많은 기부를 하고 싶다는 소망을 했다는 박 선수. 그는 “지금 능력이 생겼고, 그 소망을 실천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부로는 1997년 한국에 큰 홍수가 났을 때를 꼽았다. “미국에 있던 중 한국에 큰 홍수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외국에 있으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고 하잖아요. 저도 외국에 있다 보니 고국의 소식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져서 어떻게 도와줄 수 없을까 하고 고민을 하다 매니저와 상의를 했어요. 그리고 통장에 잔액을 물어보니 2억 원이 있다고 해서 그 중의 절반을 기부하기로 했어요.” 당시 자신의 전 재산의 절반인 1억 원을 기부하면서 박 선수는 좋은 일에 참여했다는 뿌듯함을 느꼈고 이는 돈보다 더 큰 즐거움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를 통해 기부가 자신에게 치유됨을 알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한 행동이 결국 자신에게 더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 “기부는 결국에는 자신도 위하는 것이에요. 기부하면 자신의 영혼이 치유를 받는 느낌이죠. 기부하면 사회가 건강해지고,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무엇보다 자신도 치유를 받을 기회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기부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 표현을 통해 자기가 만족을 하고, 자기가 성장할 기회가 될 수 있거든요.” 박 선수는 치유와 성장을 기부의 최고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바람도 전했다. ‘롤모델이 되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대한 답변이기도 했다. 박찬호 선수는 우선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선은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후배들이 참여를 통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운동선수가 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것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요. (많은 후배가) 알차게 살아간다는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부담은 갖지 말라고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남들이 기부한다고 해서 압박을 느끼고 의무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느꼈을 때 해야 진정한 기부니까요. 남들이 한다고 해서 하는 유행성 기부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부를 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본인도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박찬호 선수의 지론이다. 

 

앞으로도 박찬호 선수의 나눔 활동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제 은퇴했으니, 본격적으로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 야구에 필요한 것들을 공부도 하고, 재단을 통해서 많은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더욱더 활발한 활동을 할 것이란 이야기. “기부는 (야구 이외의) 또 다른 선택(길)입니다.” 마지막으로 박찬호 선수는 기부가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소중한 일이라고 말했다. 야구를 선택해 선수 생활에 온 힘을 다했듯 앞으로 마음을 전하고 사랑을 나누는 일에 온 정성을 쏟을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작년을 끝으로 은퇴하여 더는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박찬호 선수의 모습은 볼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오른팔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야구공이 아닌 희망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배너

포토뉴스


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발행인 칼럼

더보기
[칼럼] 상조단체 상조협회 이야기
조직이란 소속된 구성원들의 친목과 함께 공동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란 점이 핵심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상조산업계도 2021년을 기점으로 비영리 공인 단체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전국적인 단일조직은 아니지만 어쨋든 공식 '사단법인'이란 점에서 의미있는 발전이다. 한국상조산업협회는 설립 허가를 받은 후 박헌준 회장 이름으로 “공식적인 허가 단체로 거듭난 협회는 회원사와 더불어 장례문화발전과 상조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기자는 관련 기사에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희망사항을 곁들였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상조산업의 문제점은 원래의 본향이었던 상부상조, 아름다운 품앗이의 핵심, 장례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의례서비스의 근본을 떠나 소위 결합상품 내지는 의례와 거리가 먼 라이프서비스로 주업태를 변경시켜 가며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조고객의 대부분이 미래 장례를 목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면 상조산업 발전과 장례문화 발전이 동일한 의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자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상조산업협회'가 설립목적으로 명시한 "상조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

해외 CEO 칼럼 & 인터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