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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나누고 아름답게 떠나련다

아름다운재단, 이별학교 내년에는 더 자주

 
13일 서울 종로의 한 조그만 강의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른’ 20여명이 크레파스를 쥐고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붉은 튤립과 노란 해바라기, 고향마을을 그리는 이도 있고 가족 모습을 스케치북에 담는 사람들도 있다. 겉으로만 보면 영락없는 어른들의 미술시간이다. 다들 웃고 즐거워했다. 하지만 이 수업의 주제는 무거웠다. 과목명도 미술이 아니라 인생이었다. 이들이 그리는 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기쁘거나, 때로는 슬펐던 자신들의 삶의 궤적이었다.

아름다운 재단이 13일 서울 정동 배재빌딩에서 마련한 ‘아름다운 이별학교’에 참가한 시민들이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고 있다.김정근기자

아름다운재단이 개설한 ‘아름다운 이별학교’의 첫날 수업은 이렇게 흘러갔다. 이날 입학식을 갖고 문을 연 이 학교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을 가르친다. 모으고 채우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떠나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잘 사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은 높다. 하지만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학생들은 앞으로 4주간 매주 한차례씩 비우고, 나누고, 남기고, 떠나는 연습을 하게 된다. 학생들이 모두 나이 지긋한 노년층인 이유다.

“글쎄요, 언젠가는 누구나 흙으로 돌아가게 되잖아요. 불편해하고 머뭇거리기보다 남은 기간을 의미있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웰빙’만큼이나 중요한 ‘웰다잉’을 준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는 정진숙씨(61·여)는 죽음이란 과정은 그리 어렵고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정씨는 수업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의연했다.

이성남씨(60·여)도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이씨는 얼마 전 병환으로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동안 깊은 상실감에 빠져 우울증에 걸렸다. 이씨는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었는데 이곳에서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좀더 올바르게 이해하는 좋은 기회를 발견할 것 같다”며 수업 출석 이유를 밝혔다.

오는 20일 두번째 수업에는 ‘이별’을 주제로 죽음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는 수업이 준비돼있다. 이날 수업에서 학생들은 평소에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고마움과 미안함을 편지에 담에 친구와 가족들에게 보내는 시간을 갖는다. 세번째 수업인 ‘나눔수업’에서는 ‘세상을 변화시킨 아름다운 유산들’이라는 주제로 사망보험금을 기부하고 세상을 떠난 30대 주부의 사연 등 나눔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한 사례들이 소개된다.

마지막 수업인 ‘유언수업’에서는 현직 회계사와 변호사를 초청, 세금과 유언 등 사망에 따른 법적인 절차를 배워보고 직접 유언장을 써보는 시간도 마련돼 있다. 인생을 정리하는 심적, 법적 절차를 실행해 보는 것이다.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여섯인 김진협씨는 요즘 작은 고민이 하나 생겼다. ‘어차피 인생에서 죽음이 오리란 건 분명한 사실인데, 어떤 죽음이 멋지고 아름다울까.’ 28년간 아이비엠에 근무하다 8년 전 퇴직한 김씨는 이미 시신기증 서약까지 마쳤다. 나름대로 홀가분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더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김씨는 “건강하게 살면서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자식에게 유산 안 남기고 이 세상을 뜨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며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는 평균수명이 늘고 출산은 줄면서 급속히 고령사회로 가고 있지만, 아직 노년의 삶이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는 편이다. 허겁지겁 살면서 정작 중요한 가족과는 원망의 정만 쌓다가, 미처 자신의 삶을 정리할 차분한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 우리 문화에 대한 반성이 이번 ‘이별학교’의 취지다.

4주 동안 매주 월요일 진행되는 ‘이별학교’의 이날 주제는 참가자들이 삶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한 ‘인생 수업’이다. 프리랜서 방송작가 주은경씨의 진행에 따라 서로 소개하는 시간이 먼저 마련됐다. 주로 50~70대 장노년층인 참가자 40여명은 다섯 모둠으로 나눠 앉아 자신의 삶에서 좋았거나 슬펐던 일을 그림으로 그리고 서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 여성 참가자는 가장 슬펐던 일을 묘사하는 그림에 머리를 땋아내린 한 여자아이의 얼굴을 그린 뒤 “아이를 먼저 잃었는데, 그게 인생에서 가장 슬펐다”며 울먹였다. 대개 가장 슬펐던 일로는 가족이나 친한 사람의 죽음을, 기뻤던 일로는 결혼 혹은 출산을 들었다.

이렇게 차분히 인생을 돌아본 뒤 2주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죽음에 대한 수업을 한다. 유산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킨 사례들을 찾아보면서 생전에 쌓은 부를 사회에 기증하는 기쁨과 의미도 알아보고, 유언은 언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참이다.

이날 참가자 가운데는 언뜻 보기에 ‘젊은이’로 보이는 이들도 적잖았다. 올해 마흔일곱인 공성림씨는 “예전엔 죽음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됐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며 “이미 산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진 내 나이에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나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최연소 참가자인 권오봉(29)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권씨는 “태어난 데는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땐 순서가 없지 않으냐”며 “죽음을 잘 준비해야 나중에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날 첫 수업에 앞서 인사말을 한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총괄이사는 “변호사 생활을 할 때 보니, 연세 들어 병원에 실려간 뒤엔 자신의 삶을 잘 정리하고 재산을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감사하기가 쉽지 않더라. 현명함과 지혜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 돌아가시게 되는 걸 많이 봤다”며 죽음에 대한 준비를 역설했다. 아름다운재단은 내년부터 한 해 서너 차례 지방에서도 학교를 열 계획이다.

삶의 마침표인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이를 통해 남은 삶에 아름다운 느낌표를 찍는 일, ‘웰빙’ 못지않게 중요한 ‘웰다잉’이 우리 사회에 또 하나 화두를 던지고 있다. 문의 (02)76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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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발행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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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조단체 상조협회 이야기
조직이란 소속된 구성원들의 친목과 함께 공동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란 점이 핵심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상조산업계도 2021년을 기점으로 비영리 공인 단체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전국적인 단일조직은 아니지만 어쨋든 공식 '사단법인'이란 점에서 의미있는 발전이다. 한국상조산업협회는 설립 허가를 받은 후 박헌준 회장 이름으로 “공식적인 허가 단체로 거듭난 협회는 회원사와 더불어 장례문화발전과 상조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기자는 관련 기사에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희망사항을 곁들였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상조산업의 문제점은 원래의 본향이었던 상부상조, 아름다운 품앗이의 핵심, 장례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의례서비스의 근본을 떠나 소위 결합상품 내지는 의례와 거리가 먼 라이프서비스로 주업태를 변경시켜 가며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조고객의 대부분이 미래 장례를 목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면 상조산업 발전과 장례문화 발전이 동일한 의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자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상조산업협회'가 설립목적으로 명시한 "상조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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